음울한 탐정 '더 배트맨'…고뇌하는 인간의 모습 담아

개봉 첫날 19만 동원
배트맨이 전지전능한 히어로가 아니라 음울하고 고뇌에 가득 찬 인간이자 탐정으로 돌아왔다. 지난 1일 개봉한 영화 ‘더 배트맨’(사진)은 히어로물의 고전인 배트맨의 틀을 벗어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배트맨은 트라우마에 사로잡힌 채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고, 작품 전체엔 디스토피아적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혹성탈출’을 만든 맷 리브스 감독이 연출하고 ‘트와일라잇’ ‘테넷’ 등에 출연한 로버트 패틴슨이 새롭게 주인공을 맡은 이 영화는 개봉 첫날 관객 19만 명을 동원했다. 올해 개봉한 영화 중 개봉일 최다 관객을 기록했다.배트맨은 1939년 DC 코믹스를 통해 처음 나온 이후 80년 동안 여러 차례 영화 등으로 만들어졌다. 작품들 속 배트맨의 모습은 대체로 비슷했다. 사람을 구하고 도움을 주는 선한 특성만이 부각돼왔다.

하지만 이번 영화에선 어둠이 가득한 ‘인간 브루스 웨인’에 초점을 맞춘다. 그는 트라우마에 괴로워하고, 때론 폭주하며 사회부적응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내가 그림자 속에 숨은 것 같지만 내가 바로 그림자다” “나는 복수다” 등의 대사는 기존 히어로들과의 확연한 차이를 보여준다.

영화는 이런 그가 선인지 악인지 끊임없이 스스로 질문하며 성장하는 모습을 담았다. 2019년 영화 ‘조커’에서 조커가 악당이 되는 과정을 보여준 것과 비슷하다. 리브스 감독은 “배트맨은 전통적인 슈퍼히어로지만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한 인물이자 자신의 인생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인물이라는 게 흥미로웠다”고 말했다.작품은 히어로로서의 활약보다 탐정으로서의 모습을 부각한다. 사건은 고담시 시장 선거를 앞두고 재선에 도전한 현 시장이 살해당하면서 시작된다. 배트맨은 악당 리들러(폴 다노 분)가 남긴 단서들을 토대로 추적에 나선다. 러닝타임이 3시간에 달하지만 그의 행보를 따라가다 보면 지루함을 느낄 틈이 없다. 하지만 추리물에 가깝기 때문에 기존 히어로물의 유쾌한 스토리와 시원한 타격감을 즐기는 관객이라면 다소 실망할 수도 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