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범의 별 헤는 밤] 별 보기의 즐거움

해발 1100m가 넘는 천문대에 근무하면서 얻는 가장 큰 즐거움은 별을 보는 것이다. 밤에 연구실만 나서도 별을 볼 수 있어서 달이 없는 맑은 날이면 참지 못하고 밖에서 시간을 보내는 날이 많다. 그런데 휴일이 되어 집에 있으면 좀처럼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평소에 늘 밖에서 별을 보다가 집에 오면 그냥 나가기가 싫어진다. 그래도 특별한 경우엔 망설이지 않고 별 보러 나선다.

그믐달이 뜨는 2월의 마지막 날, 하필 월요일이라 게으름 피우는 일요일에 천문대로 향했다. 요즘 금성과 화성이 새벽에 여명과 어우러져 아름답게 빛나고 있는데, 적당한 밝기의 그믐달과 만나면 모두를 사진에 담기 딱 좋다. 달이 너무 밝으면 금성과 화성의 밝기가 어울리기 어렵고, 하루만 지나도 달이 너무 늦게 떠서 하늘이 밝아지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새벽에 뜨는 은하수도 같이 담을 수 있으니, 별을 좋아하는 사람이 이런 날을 놓칠 리가 없다. 그래서인지 밤새 천문대 입구의 주차장에 차량이 들락거렸다.

자주 만나는 행성과 달

주말에 집에서 움직이지 않고 시간을 보내다 천문대로 올라오면 왠지 출근을 일찍 한 것 같아 좀 억울하다. 그래도 주차장에서 별 본다고 고생하는 사람들이나, 전국에서 자리 잡고 밤새울 준비하는 사람들의 소식을 접하면 행복한 고민일 것이다.

그믐달이 뜨는 위치는 계절에 따라 동쪽에서 좌우로 많이 바뀐다. 이 시기엔 포항 시내에서 오른쪽으로 치우쳐 은하수와 가깝게 만난다. 도시 불빛 때문에 은하수가 같이 나올지 기대하기 어려웠지만 의외로 멋진 장면을 담을 수 있었다. 밝게 빛나는 금성만으로도 무척 아름다웠지만 화성과 달이 분위기를 더해줬고, 은하수는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들었다. 그믐달은 1년에 열두 번 뜬다. 그래도 그믐달이 앞으로 2~3일은 보기 좋기 때문에 볼 수 있는 날이 제법 많지만 해가 뜨고 지는 시간을 고려하고, 날씨까지 고려하면 의외로 만날 기회가 많지 않다.

출근길 동쪽 하늘의 금성

달과 행성은 의외로 자주 만난다. 왜 그럴까? 우주는 팽창하고 있고, 그 속의 천체는 처음 만들어질 때 얻은 회전량에 따라 돈다. 별이 생성될 때도 회전한다. 거대한 가스 구름이 중력에 의해 회전하면서 뭉쳐져서 태양과 같은 별이 된다. 그러면 중심에 별을 가진 납작한 원반 형태가 될 것이다. 원반의 일정한 부분에서 다시 중력적 불안정이 생겨서 행성이 만들어진다. 그 행성들이 주변의 물질을 모두 쓸어내 버리면 지금의 태양계처럼 완성된다. 가끔은 초기의 행성과 행성이 부딪혀 부서지기도 하고, 좀 큰 파편은 또 부딪혀 작은 부스러기가 되기도 한다. 반대로 서로 합쳐져서 큰 행성으로 발전하기도 할 것이다. 밤하늘의 별은 대부분 이런 과정을 거칠 것이므로 태양계와 같은 행성계를 가진 구조가 일반적인 모습이다. 어쨌든 이렇게 만들어진 행성은 모두 같은 평면상에 놓이게 되고, 그러다 보니 가끔은 소위 태양이 하늘을 지나는 황도대를 따라 일렬로 쭉 이어진 모습을 보게 된다. 서로의 움직이는 속도가 달라 때로는 많이 모이기도 하고, 뚝 떨어져 보이기도 한다. 달도 지구가 회전하는 방향을 따라 돌기 때문에 결국 황도대와 비슷하게 움직인다. 5도 정도 기울어져 움직이다 보니 가끔 태양과 만나 일식을 이루고, 행성과 만나 행성을 가리는 행성식을 이룬다.

추운 날씨에 별을 보려고 왜 그 고생을 하나 싶은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런데 별을 보는 즐거움은 추위가 막을 수 없다. 친구 가족 중에서 어릴 때 천문대에서 망원경으로 별을 한 번 본 기억을 성인이 된 지금도 이야기하고 있다. 별을 보는 그 자체가 그냥 좋다. 누가 산이 있어서 산에 간다고 했던가? 특별한 이유야 있으랴만, 자연의 조화로움 이상 가는 아름다움이 있을까 싶다. 더불어 밤하늘 천체를 찾아내고, 기록하는 기술이 더해져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좋은 작품을 얻으려 노력하듯 밤하늘의 아름다운 모습을 담아낸다. 더 새로운 모습을 보고 싶고, 더 멋지게 담고 싶은 욕심이 더해져 한밤의 추위를 이겨내고, 본 걸 또 보고 반복하게 된다.

올해는 상반기 동안 새벽에 여러 행성이 서로 가깝게 만나는 경우가 많으니 이른 출근길에 동쪽 하늘을 한 번씩 올려다보며 금성도 반겨보고, 행성과 행성이 서로 다가가고 멀어지는 모습과 마침내 6개 행성이 한 줄로 쭉 이어진 모습까지 즐겨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전영범 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