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침공 1주] 유가급등·공급망 차질에 국내 기업 피해 가시화

전쟁 장기화땐 전산업에 영향…대러 수출 비중 높은 자동차 등 직격탄
美 러 수출통제 FDPR 예외대상에 韓 포함될까…휴대전화-車 등은 제외
정부, 美와 적극 협의…산업부-중기부-코트라 등 전방위 지원체계 가동
산업팀 =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가 3일로 일주일째로 접어들면서 국내 기업들도 전쟁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다.국제사회의 대(對) 러시아 제재와 지정학적 리스크 고조에 따른 에너지 가격 급등 및 공급망 불안으로 인한 부품 수급난 등의 여파로 생산에 차질을 빚는 등 기업들의 피해가 점차 가시화되는 모습이다.

자동차, 항공, 철강, 화학, 조선, 건설 등 전 업종에서 원가 상승 부담 등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기업들은 전쟁이 장기화되면 수출 등 산업 활동 전반에 상당한 타격을 받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 유가 및 원자잿값 급등에 직격탄
3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기업들은 당장의 피해로 유가 등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인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러시아는 주요 원유 생산국이면서 세계 1위의 천연가스 수출국이다.

2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4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전날보다 배럴당 7%(7.19달러) 급등한 110.60달러에 거래를 마쳤다.이는 2011년 5월 이후 11년 만에 최고 수준이다.

국내 수입 원유의 기준이 되는 두바이유는 1일까지 90달러대였으나 2일 11.34달러 급등하며 배럴당 110.05달러를 찍었다.

유가 급등은 전 업종에 걸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원유와 직결되는 정유업계는 단기적인 유가 상승으로 재고 이익이 늘어날 수 있지만, 고유가 장기화는 오히려 수요 위축을 낳는 악재로 작용한다.

특히 러시아산 원유 수급에 차질이 생기면 대체 수급처를 찾아야 한다.

미국과 유럽국가 등 서방이 러시아산 에너지에 대한 직접 제재는 꺼리고 있는 데다 국내 정유업계의 러시아산 원유 비중은 5% 남짓으로 미미해 당장 직접적 영향은 없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그러나 유럽 등의 일부 정유업체가 에너지 제재 가능성에 대비해 러시아산 원유 구매를 중단하거나 대폭 줄이고 있어 국내 업체들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반도체·배터리 업계에서도 원자재 수급 불안정성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현재 네온(Ne), 크립톤(Kr) 등 반도체용 희귀가스 재고를 확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지난해 국내 희귀가스 수입량 가운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립톤이 48%(우크라이나 31%·러시아 17%), 네온이 28%(우크라이나 23%·러시아 5%) 수준이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현재 3개월분 정도의 재고를 확보해 놓고 있으며, 공급선 다변화를 통해 추가로 재고를 확보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배터리 업계는 주요 광물을 중국, 호주, 남미 등에서 장기 계약으로 수급해 직접적인 영향은 없지만, 중장기적으로 영향권에 들 수 있다.

최근 글로벌 원자재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 데다 이번 전쟁이 원자재 가격 상승을 더욱 부추기고 있어서다.

한국자원정보서비스에 따르면 대표적인 배터리 원자재 광물인 니켈의 톤(t)당 가격은 이날 기준 2만7천달러로 전날보다 약 6.09%, 전주 평균보다는 6.91% 상승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서는 46.04%나 올랐다.
◇ 자동차·조선·항공업계도 비상
자동차와 조선, 항공 등 모빌리티 업계도 대러시아 제재 영향권에 들었다.

특히 완성차 업체와 함께 러시아 수출이 주력인 부품업체들은 직격탄을 맞고 있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의 대러 수출 중 자동차 관련 비중은 40.6%(승용차 25.5%·자동차 부품 15.1%)에 달한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에서 매년 23만대를 생산 중인 현대차·기아는 전쟁 여파로 현지 내수시장이 위축될 경우 그 타격을 고스란히 떠안을 가능성이 크다.

현지 현대차 공장에 납품하는 국내 부품업체들에까지 피해가 확산할 수 있다.

현대차·기아는 지난해 러시아에서만 38만대의 차량을 판매하는 등 현지 업체인 아브토바즈에 이어 내수시장 점유율 2위(23%)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 등은 이번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러시아 현지의 내수 판매가 약 29%까지 줄어들 것으로 추정했다.

러시아 에너지업체들과 장기 건조계약을 맺은 조선업체들도 대책 마련에 고심 중이다.
조선업체들은 주로 헤비테일(선수금을 적게 받고 인도 대금을 많이 받는 형태의 계약) 방식으로 장기 건조계약을 맺기 때문에 대러시아 금융제재가 장기화하는 최악의 경우 나머지 대금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빅3' 조선업체인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이 2020년 말 이후 러시아 선주로부터 LNG 운반선 총 7척을 수주하고, 삼성중공업은 현지 즈베즈다 조선소와 장기 설비공급계약도 맺는 등 국내 조선업체와 러시아와의 거래금액은 7조원이 넘는다.

항공업계도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유럽 항공편 운항 때 우크라이나 상공을 비행하지 않아 직접적인 영향은 아직 받지 않고 있다.

현재 대한항공은 매주 목요일(주 1회) 인천~모스크바 여객 노선을 운항 중이다.

다만 러시아가 영공을 폐쇄할 경우 유럽행 항공기의 우회 항로 이용이 불가피하다.

인천에서 카자흐스탄, 터키 상공을 경유해 유럽으로 가는 우회 항로의 경우 기존 항로보다 2시간 30분가량 비행시간이 길어지고, 연료 소비는 20%가량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 美 FDPR 적용 예외 대상에 한국 포함될까…"휴대전화-車 등은 제외"
이런 가운데 미국이 러시아 수출통제를 위해 꺼낸 조치인 해외직접제품규제(FDPR)의 적용 예외 대상에 한국이 포함되지 않아 우리 기업들의 수출 불확실성이 더욱 커진 상황이다.

FDPR은 미국 밖의 외국기업이 만든 제품이라도 미국이 통제 대상으로 정한 소프트웨어, 설계를 사용했을 경우 수출을 금지할 수 있도록 한 제재조항이다.

유럽연합(EU) 27개국과 호주, 캐나다, 일본, 뉴질랜드, 영국 등 32개국은 미국에 준하는 독자 제재를 하기로 해 이 규정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지만, 한국 기업은 면제 대상에 포함되지 못했다.

이에 따라 FDPR 적용 대상인 제품을 러시아로 수출하려면 미국 상무부를 거쳐야 한다.

다만 미 상무부는 휴대전화, 자동차, 세탁기 등 소비재는 FDPR 적용의 예외에 해당한다고 밝혀 국내 전자업계와 자동차 업계 등은 일단 한시름을 놓는 분위기다.

현재 우리 정부는 포괄적으로 FDPR 적용 예외 대상으로 인정받기 위해 미국과 협상을 진행 중이다.

국제통상법 전문가인 법무법인 세종 김두식 대표 변호사는 이날 대한상공회의소 주최로 열린 세미나에서 "우리 기업이 피해를 받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제재는 미국의 수출 통제"라며 "이에 따라 한국 정부의 핵심 과제는 미국으로부터 FDPR 적용 예외 국가로 인정받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이 FDPR 예외 국가로 인정받더라도 미국의 제재 수준과 유사하게 수출통제 조치를 해야 하기 때문에 러시아와 거래를 재개할 순 없다"면서도 "하지만 수출 허가권을 미국 산업안보국에서 우리나라로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예측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 정부, 국내 기업 피해 최소화 위해 전방위 지원
정부는 국내 기업의 피해 최소화를 위해 전방위 지원에 나섰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산하 전략물자관리원에 국내 기업 등을 대상으로 취급 제품이 수출통제 품목에 해당하는지를 상담해주는 전담 창구인 '러시아 데스크'를 가동 중이다.

또 코트라는 '무역투자24'와 '우크라이나 비상대책반', 무역협회는 '긴급애로 대책반'과 '공급망 분석센터'를 각각 운영하면서 사안별로 기업 애로를 접수하고 해소를 지원하고 있다.

코트라는 러시아나 우크라이나로 운송 중인 화물을 다른 지역으로 긴급히 보내야 하거나 대체 바이어를 찾는 과정에서 임시 보관할 해외 창고가 필요한 기업을 대상으로 긴급 물류 지원도 실시한다.

무역보험공사는 수출기업의 유동성 애로 해소를 위해 선적 전 수출신용보증의 보증 한도를 감액 없이 기한 연장해주고, 단기수출보험 가입 수출거래의 대금 미회수 발생 시 보험금을 1개월 이내에 신속히 지급하기로 했다.

무역보험공사는 대금 미결제 관련 애로사항 상담과 러시아 제재 관련 대응을 위한 비상계획 TF도 설치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국내 중소기업의 피해 상황을 파악하고 지원하기 위해 전날부터 '우크라이나 사태 중소기업 피해 접수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접수센터는 중기부 지방청, 중소기업중앙회 지역본부,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지역본·지부에 60개가 설치됐다.중기부는 또 대러시아·우크라이나 수출 비중이 큰 중소기업을 '특별관리 대상'으로 분류하고 이들 기업에 최신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