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태형의 현장노트]참신한 무대와 정교한 음악의 조화…자네티는 빛났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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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필 자네티 지휘 '피가로의 결혼'
현대적 미니멀리즘 무대 연출
뛰어난 연기, 희극적 재미 살려
하프시코드 연주, 극과 찰떡궁합
'콘서트 오페라' 타이틀 무색하게
모든 극적 요소 갖춘 '극 오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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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경기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열린 '경기필하모닉 콘서트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공연 현장입니다. 인상적인 첫 장면 이후 전개된 무대는 공연 제목에 붙은 '콘서트 오페라'와는 딴판입니다. 무대와 의상, 연기, 조명 등 모든 극적 요소가 완벽하게 갖춰진, 그것도 보기 드물게 완성도가 높은 '극 오페라'가 펼쳐쳤습니다. 단출한 미니멀리즘 무대 연출이 일품입니다. 오페라 연출가 장서문의 솜씨입니다. 여기에 다양한 연극적 기법을 가미해 오페라 부파의 최고봉인 '피가로의 결혼'의 희극적 재미를 풍부하게 살립니다. 무대를 오르내리는 사각 틀을 활용한 공간 분할과 동선 구성, 이를 통해 디테일을 하나하나 살려내는 세심한 연출이 돋보입니다. 1막에서 무대 뒷 편 사각 틀 뒤 바질리오가 횡으로 움직이며 수잔나와 케루비노의 얘기를 엿듣는 장면이 나옵니다. 캐릭터의 야비한 성격을 알려주는 듯 합니다. 2막에선 백작부인 로지나 방에서 수잔나와 케루비노, 로지나, 알마비바 백작, 피가로, 바질리오가 얽히며 한바탕 소동이 벌어집니다. 사각 틀은 방문과 창문, 옷장문 역할을 하며 공간을 효율적으로 나눕니다. 등장인물들이 가상의 사각 틀 방문을 빈번하게 드나들 때 문이 열고닫히는 효과음을 하프시코드가 내는 게 절묘합니다. 얼핏 놓칠 수 있는 디테일한 요소입니다.
3막 피가로가 마르첼리나와 바르톨로의 아들이라는 게 밝혀지는 장면에서 부르는 6중창에서 같은 편인 백작과 판사를 한 사각틀에 넣는 것도 재밌습니다. 제가 가장 감탄한 대목은 마지막 4막입니다. 피가로와 수잔나, 백작과 백작부인, 여기에 케루비나까지 얽혀 오해와 반전이 중첩되는 복잡한 장면으로, 동선 처리와 공간 구성이 잘 되지 않으면 무대에서 벌어지는 상황이 뭐가 뭔지 모를 때가 많은데요. 이를 사각틀 배치를 통해 깔끔하고 효율적으로 보여줍니다. 연극의 이른바 '무대약속'을 활용해 관객들이 상상력으로 빈 공간을 넉넉하게 채울 수 있도록 합니다.
주역들과 코러스 등 출연진의 퍼포먼스도 뛰어났습니다. 연출가가 요구했을 법한 깨알같은 희극적 재미와 극 전반에 흐르는 성적인 자극과 긴장감을 잘 살려냈습니다 특히 성적인 호기심과 에너지로 넘치는 천방지축 10대 케루비노 역을 맡은 메조소프라노 김정미가 돋보입니다. 연출가는 원작인 보마르세의 3부작(세비야의 이발사, 피가로의 결혼, 죄지은 어머니)을 꿰뚫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극중 케루비노와 백작부인 사이 묘한 기류가 감지되는데요. 달려드는 케루비노를 대하는 백작부인의 눈빛과 표정, 태도가 특히 그렇습니다. '피가로의 결혼' 후속작인 '죄지은 어머니'로 이어지는 두 사람의 관계까지 염두에 둔 연출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무엇보다 아쉬운 점은 '콘서트 오페라'라는 타이틀입니다. 제가 이번 공연 현장을 찾은 것은 자네티가 2019년 10월 서울시오페라단과 함께한 '돈 조반니' 연주를 인상 깊게 들어 '피가로의 결혼'은 어떨지 궁금해서였습니다. 이렇게 참신하고 독특한 무대 연출은 전혀 기대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횡재'한 기분이지만 콘서트 오페라라는 이유로 공연을 찾지 않은 분들에겐 안타까운 일입니다. 콘서트 오페라라고 하면 베를린 필하모닉이 이번 시즌에 선보인 차이코프스키의 '이올레타'나 '마제타'처럼 오케스트라가 무대에 서고 성악가들이 그 앞에서 연기를 곁들여 노래하는 콘서트 형식의 공연을 떠올립니다. 오페라 애호가들 중에는 불완전한 형식의 콘서트 오페라를 선호하지 않은 분들이 많습니다.
예전에도 이런 경험이 있었습니다. 2020년 10월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국립오페라단이 베토벤의 '피델리오'를 공연했습니다. 콘서트 오페라라는 타이틀을 붙였지만 제가 본 공연은 뛰어난 드로잉 아트와 결합된 '극 오페라'였습니다. 이번 '피가로의 결혼'은 더 완벽한, 모든 극 요소를 갖춘 오페라 공연입니다. 관객들이 공연 콘셉트에 대한 혼란을 겪지 않도록 클래식 공연계는 '콘서트 오페라'의 개념을 보다 명확하게 규정하고, 신중하게 사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송태형 문화선임기자/사진=경기필하모닉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