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실 제한하려다 원금 넘게 날린 위너스자산운용, 왜? [파생시장의 기억(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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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CFO Insight]2020년 3월초, 증권가에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한 사모 자산운용사가 2월말 옵션 거래 과정에서 고객들의 돈을 모두 잃고 큰 궁지에 몰렸다는 이야기였다. 소문은 빠르게 사실로 드러났다. 위너스자산운용이라는 중소형 사모 운용사였다. 고객들이 맡긴 돈은 300억원 규모 일임형 계좌와 200억원 규모 사모펀드, 총 500억원어치였다. 그런데 옵션 거래 손실이 835억원에 달한다는 보도가 이어졌다(주1).
'액티브한' 로스 컷 추구
유동성 부족 구간에서 가격 급변동
손절하려다 손실 더 키워
운용사는 고객들을 직접 모아오지 않는다. 고객과의 접점은 판매사인 KB투자증권이 맡고 있었다. 해당 상품들은 콜옵션과 풋옵션을 함께 매도하는 양매도 전략으로 수익을 추구하되 기초지수의 흐름에 따라 콜옵션 및 풋옵션 매수를 병행해 손실 폭을 제한할 것이라고 고객들에게 안내한 것으로 알려졌다. 손실 폭은 투자 금액의 10% 안쪽에 머무를 것이라고 안심시켰다(주2). 그런데 막상 운용결과는 ‘최대 10% 손실제한’은 고사하고 투자 원금, 아니 그 이상을 몽땅 날린 셈이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이 책임은 누가 져야할까. 운용사일까, 판매사일까, 아니면 돈이 운용된 일임형 계좌의 주인인 고객이 직접 이 돈을 물어내야 할까? 법적 공방이 아직 진행 중이기 때문에 책임 소재를 단정지어 말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일단 이 상품의 구조가 어떠했는지를 살펴보고 실제 운용이 어떻게 되었는지, 어떤 부분에서 사고가 났는지를 짐작해 볼 수는 있다.
◆패시브 양매도 vs 액티브 양매도
위너스자산운용 측 변호사는 사고가 터진 후 언론에 해당 상품을 양매도 상품으로 설명했다(주 3). 익숙한 이름이 하나 어른거린다. 2018년 한국투자증권에서 선보여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양매도 ETN’이다. 이후 다른 증권사들도 경쟁적으로 양매도 ETN 판매 대열에 합류하며 2018년 이 상품은 8000억원어치가 넘게 팔렸다(주4).양매도 ETN이란 무엇인가? 매도하는 옵션의 만기, 행사가격, 수량을 미리 결정해서 양매도 전략지수를 산출하고 여기에 맞춰 근월물 KOSPI200 콜옵션과 풋옵션을 매도하는 패시브(passive) 상품이다. 위너스자산운용의 상품은 운용자산이 KOSPI200 옵션이냐, Nikkei225 옵션이냐가 다르지만 아주 기본적인 구조는 양매도 ETN과 비슷한 꼴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KB증권은 위너스 자산의 운용전략은 풋옵션과 콜옵션의 양매도가 아니라, 과도한 풋옵션매도 포지션(풋옵션매도 95%, 풋옵션매수 5%의 put ratio)으로, 비대칭으로 기울어진 방식이었다고 알려왔다.)하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었다. 패시브가 아니라 운용사가 재량에 따라 매도하는 옵션의 수량과 행사가를 결정하는 액티브(active) 상품이라는 점이었다. 8000억원어치가 넘게 팔린 양매도 ETN에서는 3년이 훌쩍 넘게 사고가 없었는데 불과 500억원어치가 팔린 위너스자산운용 상품에서 대형 사고가 발생한 근본적인 차이다.
위너스자산운용의 상품은 액티브 운용을 보완하기 위하여 ‘10% 손실제한(로스 컷)’ 규정을 내세웠다. 그리고 이날 코로나19 영향으로 일본 시장이 급락하면서 손실이 커졌고, 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반대매매가 일어났다. 위너스자산운용 측은 당시 “KB증권이 별도 통보 없이 반대매매를 단행했고, 정규장이 아니라 거래가 없는 야간 장에서 반대매매를 독단적으로 진행해 고객 피해가 커졌다”고 주장(주1)했다. 이와 관련해 KB증권은 "반대매매는 10% 손실제한 조건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고 약관상 반대매매 요건(장중위험도가 일정비율 초과, 이날의 경우에는 예수금 80% 손실)이 충족되어 이뤄진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손실 제한하려다 신용불량자가 된 A씨
양측의 입장은 다르지만 이날 시장의 변동폭이 갑자기 커지면서 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당초 목표했던 손실제한은 고사하고 훨씬 더 큰 손실로 이날 거래가 끝났다는 것은 분명하다. 파생상품 투자 과정의 리스크를 보여주는 한 대목이다.금융위기 무렵, 이번 사태와 비슷한 사건을 목격한 적이 있다. 평범한 의사였다가 옵션 반대매매에 휘말려 졸지에 신용불량자가 된 A씨의 사례다. 그는 2009년 2월 B증권사 임원 소개로 선물옵션투자 전문가 C씨를 만나 목돈을 맡기기로 결정했다. B증권의 손실 제한(loss cut) 시스템을 활용하면 손실을 제한할 수 있다는 설명에 혹했다. 1억5000만원을 투자하되 최소 5000만원은 보전할 수 있도록 하는 로스 컷 시스템을 설정했다(주5).
운용 초기에는 수익이 잘 났다. 그러나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금융위기 여파로 시장이 출렁이면서 순식간에 모든 포지션에서 반대매매가 일어났다. 약속한 대로 5000만원을 지키기 위해 거래가 시행됐다. 이 거래는 놀랍게도, 8억3000만원 손실을 기록했다. 5000만원을 지키려다 그 18배를 잃은 것이다. 믿고 돈을 맡긴 것이 전부였던 A씨를 더욱 궁지에 몰아넣은 것은 B증권사였다. B증권사는 A씨의 모든 재산에 보전조치를 취하고 원금을 초과한 손실 금액에 대하여 손실상환 약정서를 작성하게 했다. 양측은 법정 공방을 벌였지만 A씨는 결국 신용불량자가 되어 모두와 연락을 끊고 도망자로 살고 있다.◆유동성 고려하지 않은 로스컷의 무서움
위너스자산운용의 사례와 A씨의 사례에는 공통점이 있다. 손실을 제한하려는 과정에서 오히려 지키려던 것보다 훨씬 큰 손실을 입었다는 점이다. A씨 사례에서는 ‘유동성’이 문제였다. 로스 컷을 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시장 가격이 미리 정해 놓은 특정 수준에 도달했을 때 그 가격에 모두 청산할 수 있을 때에만 로스 컷이 계획대로 이루어질 수 있다. 그 가격에 청산이 이뤄지느냐 여부는 받아주는 상대방이 있어야 하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유동성이 있는 시장이다. 로스 컷의 생명은 반대편에서 사 줄 사람, 즉 유동성이다.
A씨 사례에서는 유동성이 부족한 “내가격 옵션과 등가격 옵션들”에 대하여 “가격과 관계없이 무조건 팔겠다는 시장가 주문”으로 “일시에” 로스컷을 실행한 것이 화근이었다(아래 박스 참조). 가격이 하락하는 상황에서 무조건 팔아야 하는 세력이 나타나면 매수세력은 도망가기 마련이다. 코로나 팬데믹 당시 금융위원회에서 증권사들에게 신용융자를 받아 매수한 주식에 대하여 반대매매를 자제해 달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도 코로나 사태로 유동성이 말라 버린 시장에서 하락이 하락을 부르는 사태를 우려한 상황이다(주6).
결과적으로 도망가는 가격에 체결이 이루어지면서 B증권은 A씨 계좌에 큰 손실을 발생시켰다. 8억 3000만원의 손실 중 대부분은 내가격/등가격 옵션의 반대매매 과정에서 발생하였으며, 유동성이 풍부한 외가격 옵션과 선물의 반대매매 과정에서는 발생한 손실이 겨우 1000만원에 그쳤다.
[ 옵션시장의 유동성 ] 1. 장초반에는 유동성이 낮다 대부분의 시장들이 마찬가지이지만 옵션 시도 장초반에는 유동성이 없기 마련이다. 2013년 한맥투자증권은 장초반에 소위 ‘팻핑거’ 주문실수가 발생하면 KOSPI200 옵션시장에서 460억원 손실을 입고 파산했다(주7). 2. 외가격 옵션의 유동성은 높지만, 내가격 옵션의 유동성은 낮다 콜옵션의 경우 기초자산의 현재가격이 행사가격보다 높으면 내가격(In-the-money) 옵션, 낮으면 외가격(Out-of-the-money) 옵션이라 한다. 반대로 풋옵션은 기초자산의 현재가격이 행사가격보다 낮으면 내가격 옵션, 높으면 외가격 옵션이다. 즉, 내재가치가 있으면 내가격 옵션이다. 기초자산 가격이 행사가격 근처에 있으면 등가격 옵션이다. 외가격 옵션은 가격이 절대적으로 싸고, 레버리지 효과가 매우 높기 때문에 참여자들이 많고, 유동성이 풍부하다. 반면, 내가격 옵션은 가격이 비싸고, 레버리지 효과가 낮기 때문에 기관투자자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참여자들이 많지 않고, 유동성이 부족하다. 등가격 옵션은 그 중간 정도로 적은 수량은 바로 거래할 수 있지만, 많은 수량을 거래하고자 한다면 분할매매 해야 한다. 3. 근월물 옵션의 유동성은 풍부하지만 원월물 옵션의 유동성은 낮다 옵션 만기에 따른 유동성도 차이가 크다. 당연히 만기가 가까운 근월물 옵션이 투자자들의 관심이 제일 높고, 상대적으로 가격이 싸기 때문에 유동성이 풍부하다. 만기가 멀어질수록 가격이 비싸고, 유동성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