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들이 투자했다가 8000억 날린 건물 뭐길래? [강영연의 뉴욕부동산 이야기]
입력
수정
지난 1월 26일 뉴욕 맨해튼의 한 건물이 채권자에게 넘어갔습니다. 돈을 갚지 못해서 은행에 건물을 뺏기는 것. 안타까운 일지만 특별한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 건물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한국 금융사들이 대규모로 투자한 건물이기 때문입니다.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 있는 '20 타임스 스퀘어' 얘깁니다.
저금리 시대, 대체투자 시장은 호황을 누렸습니다. 2019년 한국의 대체투자 펀드 설정액은 160조원을 넘어섰습니다. 당시 주식형 펀드의 두 배에 달했습니다. 대체투자는 전통적 투자 상품인 주식과 채권을 제외한 나머지 자산에 투자하는 것을 뜻합니다. 주로 부동산, 항공기, 선박, 인프라 등이 투자 수단입니다.예·적금 금리는 연 2~3%에 머물고, 채권 수익률은 낮고, 주식은 불안하다고 느낀 투자자들은 대체투자로 눈을 돌렸습니다. 대체투자 상품은 연 4~7%대 수익을 추구하는 중위험·중수익 상품이 많은데, 이 때문에 변동성을 싫어하는 자산가나 기관투자자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특히 부동산에 관한 관심이 컸습니다. 한국 금융사들은 국내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해외로 눈을 돌렸습니다. 그때 눈에 띈 것이 바로 20 타임스 스퀘어 건물입니다. 지하 2층부터 지상 42층의 화려한 이 건물은 우리가 아는 바로 그 타임스퀘어 한복판에 있습니다. 언제나 관광객들이 모여드는 곳입니다. 맨해튼 안에서도 금싸라기 땅이라고 할 수 있죠. 1층에는 허쉬 초콜릿 매장이 있었고 39층에는 메리어트의 최상위 호텔 브랜드인 '에디션'이 입점해있습니다.
이 건물을 개발한 곳은 메이필드 디벨롭먼트라는 부동산 개발 업체입니다. 돈은 프랑스계 나티시스 은행이 댔습니다. 나티시스는 공사대금 13억3000만 달러(약 1조6019억 원)를 빌려줬습니다. 모든 위험을 부담하진 않았습니다. 나티시스는 해당 채권을 위험성에 따라 다섯 개 단계로 재판매(셀다운)를 했습니다. 선순위 대출인 A, B 노트, 그리고 중순위인 메자닌 1, 2, 후순위 메자닌 이렇게 다섯 단계입니다. 밑으로 갈수록 위험도는 높아지는 대신 수익률도 높아집니다.이때 한국 기관투자자들이 몰렸습니다. 약 6억 달러 이상을 인수했습니다. 선순위에는 한국계 은행들이 참여했습니다. 더 높은 수익을 원하는 투자자들은 중순위 메자닌에 몰렸습니다. 메자닌이란 채권과 주식의 중간 위험 단계에 있는 전환사채(CB)와 신주인수권부사채(BW)에 투자하는 상품을 말합니다. 건물 1층과 2층 사이에 있는 라운지 공간을 의미하는 이탈리아어인데 증시에서는 주식으로 바꾸거나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가 붙은 채권을 의미합니다. 사업이 잘된다면 메자닌은 채권보다 높은 수익을 안정적으로 올릴 수 있어 매력적입니다. 투자 당시 선순위 5~6%, 중순위 8% 이상의 수익이 기대됐습니다.하지만 세상만사가 어디 마음대로 되나요. 메이필드 디벨롭먼트는 임차인인 메리어트 호텔의 추가 보완공사 요구로 공사비를 추가로 사용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호텔 준공이 지연되고 공사비 계좌 잔액 등이 문제가 됐습니다. 애초 입주하기로 했던 NFL(미국프로풋볼) 체험매장이 계약을 취소하면서 1~2층 공실도 장기화했습니다.
결국 2019년 10월 초 나티시스는 기한이익상실(EOD·Events of Default) 선언을 합니다. 이때부터 중순위 메자닌 투자자들의 이자 지급이 중단됩니다. EOD가 선언되면 은행은 개발사에 바로 돈을 갚으라고 요구하게 됩니다. 투자자들은 초기 계약대로 투자 관련 수익을 받지 못합니다.이후 참으로 지지부진한 과정이 이어집니다. 건물을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투자자들은 돈을 떼이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에 밤잠을 못 이루는 시간이었습니다. 기관투자자들은 대손충당금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2020년 4월에는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메리어트 호텔이 영업정지를 하면서 건물을 처분하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이 또 한 번 커졌습니다. 당시 맨해튼 부동산 시대는 끝났다는 얘기가 공공연했고, 자칫하면 이자는커녕 원금에 다 날릴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메리어트는 남았습니다. 하지만 금융권 안팎에서는 비판이 커졌습니다. 기관투자자들이 충분한 리스크(위험) 검토 없이 덮어놓고 해외 부동산에 투자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부동산 개발사가 토지 소유권 없이 지상권만 가진 상태에서 건물을 짓고, 건설 자금도 대출로 조달했는데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해외 부동산 투자로 유명한 일부 국내 증권사가 초기 검토 단계에서 투자를 철회한 것도 다시금 회자했습니다.
이 건물이 지난달에 팔렸습니다. 나티시스는 채권자들로 구성된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하고, 이 회사에서 건물을 샀습니다. 얼마에 샀을까요. 사실 이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미 채권을 다 가지고 있었고, 채권이 지분으로 바뀐 셈이니까요. 다만 이 SPC에는 선순위 채권자들만 참여했습니다. 메자닌 투자자들은 피해가 불가피해진 겁니다.나티시스는 앞으로 건물을 운영을 정상화한 후 다시 매각에 나설 계획입니다. 최소 1년 이상은 소요될 전망입니다. 1층이 허쉬 초콜릿 매장이 있고, 전광판 광고 수익도 나고 있고, 메리어트 호텔도 들어와 있으니 나쁜 상황만은 아닙니다. 최근 뉴욕 부동산 가격이 다시 오르고 있는 것도 다행입니다.
하지만 메자닌에 투자한 한국 기관투자자들의 손해는 불가피할 전망입니다. 개별 계약에 따라 다르다지만 기본적으로 선순위 투자자들이 원금과 이자를 모두 받은 후에도 돈이 남으면 메자닌 투자자들도 돈을 돌려받을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기관투자자들이 대손충당금은 다 쌓았다지만 손해를 본 것은 사실이고 실패한 투자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분석이 필요해 보입니다.
뉴욕=강영연 특파원 yykang@hankyung.com
저금리 시대, 대체투자 시장은 호황을 누렸습니다. 2019년 한국의 대체투자 펀드 설정액은 160조원을 넘어섰습니다. 당시 주식형 펀드의 두 배에 달했습니다. 대체투자는 전통적 투자 상품인 주식과 채권을 제외한 나머지 자산에 투자하는 것을 뜻합니다. 주로 부동산, 항공기, 선박, 인프라 등이 투자 수단입니다.예·적금 금리는 연 2~3%에 머물고, 채권 수익률은 낮고, 주식은 불안하다고 느낀 투자자들은 대체투자로 눈을 돌렸습니다. 대체투자 상품은 연 4~7%대 수익을 추구하는 중위험·중수익 상품이 많은데, 이 때문에 변동성을 싫어하는 자산가나 기관투자자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특히 부동산에 관한 관심이 컸습니다. 한국 금융사들은 국내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해외로 눈을 돌렸습니다. 그때 눈에 띈 것이 바로 20 타임스 스퀘어 건물입니다. 지하 2층부터 지상 42층의 화려한 이 건물은 우리가 아는 바로 그 타임스퀘어 한복판에 있습니다. 언제나 관광객들이 모여드는 곳입니다. 맨해튼 안에서도 금싸라기 땅이라고 할 수 있죠. 1층에는 허쉬 초콜릿 매장이 있었고 39층에는 메리어트의 최상위 호텔 브랜드인 '에디션'이 입점해있습니다.
이 건물을 개발한 곳은 메이필드 디벨롭먼트라는 부동산 개발 업체입니다. 돈은 프랑스계 나티시스 은행이 댔습니다. 나티시스는 공사대금 13억3000만 달러(약 1조6019억 원)를 빌려줬습니다. 모든 위험을 부담하진 않았습니다. 나티시스는 해당 채권을 위험성에 따라 다섯 개 단계로 재판매(셀다운)를 했습니다. 선순위 대출인 A, B 노트, 그리고 중순위인 메자닌 1, 2, 후순위 메자닌 이렇게 다섯 단계입니다. 밑으로 갈수록 위험도는 높아지는 대신 수익률도 높아집니다.이때 한국 기관투자자들이 몰렸습니다. 약 6억 달러 이상을 인수했습니다. 선순위에는 한국계 은행들이 참여했습니다. 더 높은 수익을 원하는 투자자들은 중순위 메자닌에 몰렸습니다. 메자닌이란 채권과 주식의 중간 위험 단계에 있는 전환사채(CB)와 신주인수권부사채(BW)에 투자하는 상품을 말합니다. 건물 1층과 2층 사이에 있는 라운지 공간을 의미하는 이탈리아어인데 증시에서는 주식으로 바꾸거나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가 붙은 채권을 의미합니다. 사업이 잘된다면 메자닌은 채권보다 높은 수익을 안정적으로 올릴 수 있어 매력적입니다. 투자 당시 선순위 5~6%, 중순위 8% 이상의 수익이 기대됐습니다.하지만 세상만사가 어디 마음대로 되나요. 메이필드 디벨롭먼트는 임차인인 메리어트 호텔의 추가 보완공사 요구로 공사비를 추가로 사용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호텔 준공이 지연되고 공사비 계좌 잔액 등이 문제가 됐습니다. 애초 입주하기로 했던 NFL(미국프로풋볼) 체험매장이 계약을 취소하면서 1~2층 공실도 장기화했습니다.
결국 2019년 10월 초 나티시스는 기한이익상실(EOD·Events of Default) 선언을 합니다. 이때부터 중순위 메자닌 투자자들의 이자 지급이 중단됩니다. EOD가 선언되면 은행은 개발사에 바로 돈을 갚으라고 요구하게 됩니다. 투자자들은 초기 계약대로 투자 관련 수익을 받지 못합니다.이후 참으로 지지부진한 과정이 이어집니다. 건물을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투자자들은 돈을 떼이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에 밤잠을 못 이루는 시간이었습니다. 기관투자자들은 대손충당금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2020년 4월에는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메리어트 호텔이 영업정지를 하면서 건물을 처분하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이 또 한 번 커졌습니다. 당시 맨해튼 부동산 시대는 끝났다는 얘기가 공공연했고, 자칫하면 이자는커녕 원금에 다 날릴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메리어트는 남았습니다. 하지만 금융권 안팎에서는 비판이 커졌습니다. 기관투자자들이 충분한 리스크(위험) 검토 없이 덮어놓고 해외 부동산에 투자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부동산 개발사가 토지 소유권 없이 지상권만 가진 상태에서 건물을 짓고, 건설 자금도 대출로 조달했는데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해외 부동산 투자로 유명한 일부 국내 증권사가 초기 검토 단계에서 투자를 철회한 것도 다시금 회자했습니다.
이 건물이 지난달에 팔렸습니다. 나티시스는 채권자들로 구성된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하고, 이 회사에서 건물을 샀습니다. 얼마에 샀을까요. 사실 이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미 채권을 다 가지고 있었고, 채권이 지분으로 바뀐 셈이니까요. 다만 이 SPC에는 선순위 채권자들만 참여했습니다. 메자닌 투자자들은 피해가 불가피해진 겁니다.나티시스는 앞으로 건물을 운영을 정상화한 후 다시 매각에 나설 계획입니다. 최소 1년 이상은 소요될 전망입니다. 1층이 허쉬 초콜릿 매장이 있고, 전광판 광고 수익도 나고 있고, 메리어트 호텔도 들어와 있으니 나쁜 상황만은 아닙니다. 최근 뉴욕 부동산 가격이 다시 오르고 있는 것도 다행입니다.
하지만 메자닌에 투자한 한국 기관투자자들의 손해는 불가피할 전망입니다. 개별 계약에 따라 다르다지만 기본적으로 선순위 투자자들이 원금과 이자를 모두 받은 후에도 돈이 남으면 메자닌 투자자들도 돈을 돌려받을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기관투자자들이 대손충당금은 다 쌓았다지만 손해를 본 것은 사실이고 실패한 투자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분석이 필요해 보입니다.
뉴욕=강영연 특파원 yy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