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놀랄 만큼 강한 2월 고용, 시장이 꼼짝 않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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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푸틴 발 핵 공포미국 시간 3일 밤, 우크라이나 현지 시간으로는 4일 새벽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자포리자 원전 단지를 공격해 일부 건물에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유럽에서 가장 규모가 이 원전이 폭발한다면, 체르노빌 사태 때보다 피해가 10배 더 클 것이라고 밝히면서 핵 공포가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결국, 러시아군은 밤사이 원전을 장악했습니다. 다행히 원자로 1호기 격실이 일부 훼손됐으나 다행히 안전에는 이상이 없으며, 방사능 수준은 정상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발표됐습니다.
유럽연합(EU)의 조셉 보렐 외교·안보 대표는 이에 대해 “유럽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전략핵 사령부에 경계 태세 강화를 지시하는 등 핵 위협 수주를 높이고 있습니다. 미국 내 최고 러시아 전문가로 백악관 국가안보위원회(NSC)에서 오래 근무한 피오나 힐은 최근 폴리티코와의 인터뷰에서 푸틴의 핵 사용 가능성에 대해 "그렇다, 그는 쓸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미국 금융시장도 충격을 받았습니다. 전날 연 1.845%로 마감했던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강화되면서 한때 연 1.699%까지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1.73% 수준에 거래를 마쳤습니다. 2년물도 떨어졌지만 10년물보다는 덜 떨어지면서 스프레드(금리 차이)는 25bp까지 줄어들었습니다. 올 초만 해도 77bp에 달했었지요. 바이탈 날리지는 "2년/10년물 국채 스프레드는 향후 1~2주 이내에 쉽게 역전될 수 있다. 특히 3월 16일 Fed는 단기 금리를 올린다"라고 예상했습니다. 바이탈 날리지의 애덤 크리사펄리 설립자는 "많은 사람이 이 신호를 무시하지만, 수익률 곡선 역전은 여전히 글로벌 성장에 대한 매우 부정적 징조"라고 밝혔습니다.
BCA리서치는 "푸틴은 우크라이나 정권 교체를 목표로 삼고 있고, 이게 이뤄지지 않으면 패배로 여길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런 목표 달성을 위한 계속된 러시아군의 투입은 러시아 경제를 파탄시키고 국내적 불만을 누적시킬 것"이라면서 "푸틴이 만약 자신에게 미래가 없다고 결론을 내리면 핵을 사용할 위험이 있다"라고 추정했습니다.
BCA리서치는 "궁극적으로 제3차 세계 대전을 피한다고 하더라도 시장은 팬데믹 초기에 겪었던 것과 같은 기겁할만한 순간을 경험할 수 있다"라면서 "핵전쟁에 대한 구글 검색은 이미 급증하고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다만 BCA리서치는 "핵전쟁 위험에도 불구하고, 향후 12개월 동안 주식에 대해 건설적 시각을 유지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말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크게 신경 쓰이더라도) 순전히 재무적 관점에서 보면 실존적 위험은 대체로 무시하는 게 좋다"라고 권고입니다.
② 정말 완벽한 2월 고용
이날 오전 8시 30분, 중요한 경제 지표인 미 노동부의 2월 고용보고서가 발표됐습니다. 신규 일자리가 67만8000개나 증가했고, 실업률은 3.8%까지 떨어졌습니다. 여러모로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보고서였습니다. 하지만 시장 반응은 시원치 않았습니다. 월가 관계자는 "러시아의 침공이 없었고, 제롬 파월 의장이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25bp(1bp=0.01%포인트) 금리를 올린다고 투명하게 밝히지 않았더라면 시장이 크게 움직였을 수도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고용보고서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오미크론 확산세가 꺾이자 레저·접객업에서 17만9000개나 일자리가 늘었고, 전문사무서비스업(9만5000개 증가)과 보건의료업(6만4000개)에서도 고용이 급증했습니다.
▲실업률, 노동참여율 등 모두 개선=실업률은 3.8%로 전월(4.0%)보다 개선됐고 시장 예상(3.9%)도 밑돌았습니다. 파월 의장이 주시하는 경제활동 참가율도 62.3%로 올라 팬데믹 이후 최고로 올라섰습니다. 물론 아직 팬데믹 직전보다는 1.1%포인트 낮습니다. 손성원 로욜라메리마운트대 교수는 “정부의 재정부양 자금 살포에 따른 초과 저축액이 줄어들자 사람들이 다시 직장으로 복귀하고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이 보고서는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습니다. 먼저 이 수치의 기반이 된 설문조사가 지난 2월 둘째 주에 실시되는 바람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에 따른 부정적 영향(유가 상승 등)이 거의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라스무센은 "전쟁에 따른 에너지 및 원자재 가격 폭등, 그로 인한 명백한 경제적 위험을 고려할 때 고용이 이렇게 강력한 속도로 계속될 것으로 보기 어렵다"라고 밝혔습니다. 또 시간당 임금 상승률이 낮아졌다는 것만으로 높은 물가에 대한 걱정을 접을 때는 아니란 시각이 많습니다. 게다가 파월 의장이 지난 3일 "노동시장은 매우 뜨겁다. 3월에 25bp 인상을 지지한다"라고 이미 결론을 내버렸지요.
골드만삭스는 "2월 시간당 임금은 작년 1월 이후 가장 느린 월별 임금 상승세를 보인다"라면서도 "우리는 Fed가 3월 회의에서 첫 인상을 시작으로 올해 일곱 차례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계속 예상한다"라고 밝혔습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노동시장의 모멘텀은 대단하며, 고용수요가 공급을 계속 초과할 것으로 예상한다. 러시아의 침공이 불확실성을 더했지만 우리는 여전히 Fed가 올해 25bp씩 일곱 번 금리를 올릴 것으로 본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Fed 내의 어떤 슈퍼비둘기라도 그들이 인플레이션에 크게 뒤처져 있다는 걸 이해하기 시작했을 것으로 생각한다"라고 덧붙였습니다. 블랙록의 제프리 로젠버그는 블룸버그TV 인터뷰에서 "시장의 초점은 고용에 있지 않다"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그는 "시장은 지금 러시아의 침공, 그에 따른 부정적 공급 충격과 글로벌 성장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고 있다. 또 Fed는 인플레이션과 금리 인상의 필요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사실 공급망 혼란도 조금씩 개선되고 있었습니다. 뉴욕연방은행이 집계하는 글로벌 공급망 압력지수는 여전히 높지만, 정점을 지나서 완화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러시아의 침공으로 다시 악화할 수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러시아에 대한 각국의 제재로 하늘과 바닷길이 막혔고, 에너지 원자재 수급에 커다란 차질이 생기고 있습니다.
③ 유가 충격→식량 충격
이는 유가 등 원자재 가격을 기록적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7.4% 오른 배럴당 115.68달러에 거래를 마쳤습니다. 2008년 9월 이후 가장 높은 기록입니다. 주간 상승 폭은 26.3%에 달합니다. 브렌트유도 6.9% 상승한 118.10달러에 거래됐습니다.
전날 이란 핵 협상이 마무리 단계라는 보도에 힘입어 배럴당 110달러 아래로 내려갔던 유가는 러시아산 에너지 제제 가능성에 다시 치솟았습니다.
러시아는 하루 1000만 배럴 이상을 생산해 500만 배럴을 수출해온 나라입니다. 이란이 핵 합의를 통해 국제 원유 시장에 복귀해도 하루 최대 150만~200만 배럴이 더 나올 것이란 추정되기 때문에 글로벌 원유 수급은 더욱 빡빡해집니다.
유가도 걱정이지만 밀 등 식량 부족 사태가 더 우려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밀은 시카고상품거래소에서 이번 주 40% 치솟아 14년 내 최고가 기록을 세웠습니다. 세계 밀 수출의 29%를 차지하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두 나라가 전쟁에 휘말린 탓입니다. 옥수수도 10년 최고치에 근접했습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