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영화=흥행' 공식 깨지나…평단 호평에도 관객 잇단 외면

스필버그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이어 '시라노'도 성적 부진
"20·30 관객에 신선함 못 줘…OST 히트 실패도 한 요인"
유명 감독이 연출한 뮤지컬 영화들이 평단의 찬사를 받고도 흥행에는 실패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뮤지컬 영화는 '사운드 오브 뮤직' 등 고전을 비롯해 '맘마미아!', '시카고', '레미제라블', '라라랜드'까지 수많은 히트작이 탄생하면서 어느 정도 흥행이 보장된 포맷으로 통했지만, 최근에는 이런 흐름이 한풀 꺾이는 모습이다.

지난달 23일 한국에서 전 세계 최초로 개봉한 '시라노'는 3일 기준 세계적으로 약 28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제작비로 들어간 3천만 달러에 훨씬 못 미치는 수치다. 개봉 첫 주 북미 수익은 200만∼500만 달러로 예상됐으나 140만 달러에 그쳤다.

국내에서도 누적 관객 수 1만8천여 명으로 이날 박스오피스 18위에 머물렀다.

'시라노'는 '오만과 편견', '어톤먼트', '안나 카레니나' 등을 선보인 조 라이트 감독의 작품으로 동명의 뮤지컬이 원작이다. 아름다운 귀족 여성을 사랑하는 왜소증 환자 시라노가 연서를 대필하게 되며 겪는 이야기를 그렸다.

골든글로브, 아카데미 등 굵직한 영화 시상식에서 후보에 오르며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흥행의 귀재'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도 최근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로 쓴맛을 봤다. 스필버그 감독이 영화계에 입문한 뒤 처음 내놓은 뮤지컬 영화로, 푸에르토리코 이민자와 유럽 출신 하층 백인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담았다.

아카데미 작품상에 노미네이트되고 평론가들로부터 만점 세례를 받으면서 흥행 여부에 관심이 쏠렸으나 성적은 처참했다.

손익분기점인 3억 달러의 3분의 1도 안 되는 약 7천300만 달러를 거둬들였다.

국내에서는 약 12만 명의 관객을 모으는 데 만족해야 했다.

이 밖에도 지난해 개봉한 '인 더 하이츠'(존 추 감독), '디어 에반 핸슨'(스티븐 크보스키)을 비롯해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오른 '코다'(션 헤이더)까지 대부분의 뮤지컬 영화가 기대 이하의 흥행 성적표를 받았다.

이런 부진은 최근 나온 뮤지컬 영화들이 극장의 주 이용층인 20·30 세대를 끌어들일 요소가 부족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자극적인 소재나 히어로물에 익숙한 젊은 세대에게는 이미 원작을 통해 잘 알려진 스토리나 메시지가 다소 식상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시라노'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같은 지고지순한 사랑 이야기는 젊은 세대가 공감하기 어렵고 올드하게 다가갈 수 있다"며 "또 최근 나온 뮤지컬 영화 대부분이 스타 배우가 없다는 치명적 약점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뮤지컬 영화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OST(오리지널 사운드트랙)가 히트하지 못했다는 점도 또 다른 요인으로 꼽힌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위대한 쇼맨'처럼 처음에는 흥행을 못 하다가도 OST가 대박을 낸 뒤 관객몰이를 하는 경우도 있다"며 "그러나 최근작 중에서는 이렇다 할 만큼 화제가 되거나 음원 차트에서 성적을 낸 영화가 거의 없다"고 짚었다.

일례로 음원이 미국 빌보드 차트 정상을 차지할 만큼 히트한 애니메이션 '엔칸토'는 디즈니 전작인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보다 2배에 가까운 약 2억4천6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기존 히트곡으로 OST를 채워 넣은 '씽2게더'는 제작비의 4배가 넘는 3억2천500만 달러를 벌기도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