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했으므로 행복하였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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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CMO Insight“사랑하는 것은
광고에서 채굴한 행복 메시지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한국광고학회 제24대 회장)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누구나 한번쯤은 청마(靑馬) 유치환(1908-1967) 시인의 <행복>이란 시를 읽어봤으리라. 소셜미디어로 소통하는 일이 일상화되지 않던 시절에는 연인끼리 이 시를 편지지에 예쁘게 써서 주고받던 기억도 남아있을 터.그만큼 널리 알려진 시인데도 처음부터 시를 발표하려고 창작한 것은 아니었다. 청마 시인이 시조시인 정운(丁芸) 이영도(李永道, 1916-1976) 여사에게 보낸 편지의 하나였다.
누군가에게 편지 쓰는 마음은 씨 쓰는 마음과 같을 테니 문학 장르가 뭐 그리 대수겠는가. 사모하는 마음이 전해지면 그만이지, 시 편지면 어떻고 편지 시면 어떠랴.
어쨌든 이 시와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이 시가 어떻게 세상에 나오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문학인들 외에는 잘 모르는 듯하다.그 내용을 조금 소개하며 행복의 가치를 살펴보면 어떨까 싶다. 편지 모음집이 출판된 직후에 나온 광고를 먼저 살펴보자.
유치환의 편지 모음집인 『사랑했으므로 행복하였네라』를 발행한 중앙출판공사의 광고 ‘행복’ 편(1967)에서는 책 제목을 헤드라인으로 썼다.
책 제목 자체를 그대로 광고 헤드라인으로 쓰는 출판계의 관행을 그대로 따랐다. 제목이 헤드라인이 되니까 책을 소개하는 핵심은 헤드라인 앞에서 헤드라인을 읽도록 유도하는 오버라인(over line)이 서적 광고 카피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이다지 지애(至愛, 극진히 사랑함)하고 이다지 열모(熱慕, 뜨겁게 사모함)한 노스탤지어의 시인(詩人) 청마(靑馬)의 만리장서(萬里長書)!”
오버라인에서는 극진히 사랑하고 뜨겁게 사모하는 마음이 만리장성을 쌓을 만큼 엄청나게 많다는 의미를 전달했다.
출판사의 편집자가 썼을 법한 카피인데, 중국의 만리장성(萬里長城)을 암시하며 ‘만리장서’로 표현한 비유 감각이 탁월하다. 바디카피는 이렇다.“20년(年)토록 긴 세월(歲月)을 청마(靑馬) 유치환(柳致環) 씨가 규수시인(閨秀詩人) 이영도 여사에게 하루같이 보낸 사랑의 편지(便紙)들. 구원(久遠, 멀고 오래됨)한 목숨의 명인(鳴咽, 흐느낌)이 성결(聖潔, 거룩하고 깨끗함)한 5천여운(千餘運)의 글발이 당신의 가슴에 그리움의 비를 내릴 것이다.”
4·6판 크기의 금박 제본에 370쪽이며 값은 400원이라는 기본 정보를 알리며, 독서계를 석권해 단연 베스트셀러로 떠올랐다고 소개했다. 광고 카피에서 말한 ‘그리움의 비’가 독자들에게 내렸던 것일까? 이근배 시인의 회고에 의하면 편지 모음집이 나오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한다. 1967년 봄, 교통사고로 갑자기 청마 시인이 타계하자, 박성룡 시인이 청마와 정운의 사랑 이야기를 소환하고 두 사람 사이에 오간 편지가 수백 통이 넘는다는 내용을 <주간한국>에 소개했다.
그러자 여러 출판사에서 그 편지들을 엮어 책을 내고 싶다며 이영도 여사에게 연락했지만, 여사는 그 편지들은 공개할 성격이 아니며 책을 낸다는 것은 더더욱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거절했다.
그러자 여러 여성잡지에서 청마 시인이 제자들과 주고받은 편지를 소개하며 마치 청마의 여성 관계가 복잡하다는 듯이 가짜 뉴스를 이어나갔다. 전형적인 황색 저널리즘이었다.
이를 보다 못한 정운은 잡다한 소문을 잠재우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판단해, 대형 출판사들을 물리치고 신생 출판사였던 중앙출판공사에서 편집장으로 일하던 이근배 시인을 불렀다고 한다.
그래서 이 시인은 최계락 시인과 함께 부산시 동래구에 있던 정운의 집으로 찾아가 편지 다발들을 추렸고 그 중에서 “뼈를 추리고 살을 발라내“ 책을 출판했다고 한다(이근배. “문단수첩: 사랑했으므로 행복하였네라.” 동아일보, 1991. 2. 8).
책이 출판되자마자 베스트셀러로 떠올랐는데, 영원히 묻힐 뻔한 명시가 가짜 뉴스 때문에 새 생명을 얻은 격이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그 사랑의 자취는 지금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으로 남아있다. 통영중앙우체국 앞에는 시 전문을 새겨 넣은 ‘행복’ 조각상이 오래전부터 설치돼 있다.
광고인의 눈으로 보면 이 조각상은 통영을 사랑의 도시로 알리는 옥외광고의 성격을 띤다. 통영 중앙시장에서 서쪽으로 가면 통영중앙우체국이 나오는데, 이곳부터 충무교회까지의 거리를 청마 시인의 호를 따 ‘청마거리’로 명명했다.
통영여중의 국어 교사로 부임한 청마는 같은 학교에서 가사(가정) 과목을 가르치던 정운을 본 순간 첫눈에 반해버렸다.
정운은 1945년 10월에 5년제 통영여자중학교에 부임해 1953년 5월까지 가사교사로 근무했다. 작곡가 윤이상(尹伊桑)도 그 학교에서 음악교사로 일하고 있었으니, 훗날 한국을 빛낼 예술가들이 집합했던 셈이다.
당시에 청마는 38살의 유부남이었고, 시조시인 이호우의 동생인 29살의 이영도는 남편을 여의고 혼자서 딸을 키우고 있었다.
정운은 단호히 거절했지만 청마는 정운을 계속 흠모한 나머지, 1947년부터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연서(戀書)를 써서 통영중앙우체국에서 부쳤다.
청마의 편지 공세에 정운은 겉으로는 아닌 체 하며 자신을 다잡았지만 내면은 뜨겁게 흔들렸다고 한다. 청마의 제안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은 정운은 3년여를 망설이다, 마침내 마음이 흔들려 둘만의 정신적 사랑이 시작됐다.
청마의 편지쓰기는 20여 년 동안 계속됐는데 6·25 전에 불타버린 것을 제외하고도 5,000여 통에 이른다. 이들의 플라토닉 러브는 요즘 세태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지만, 통영중앙우체국 앞의 ‘행복’ 조각상은 너무 쉽게 만났다가 갑작스레 헤어지는 요즘의 플라스틱 사랑을 꾸짖는 것 같다.
앞으로도 청마거리에 있는 행복 조각상은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를 소환하며 사람들의 가슴에 깊은 울림을 남길 것이다. 누군가 사랑할 대상이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사랑할 대상이 없는 사람이 가장 불행한 사람이 아닐까?
흔히들 사랑받고 있는 것 같아 기쁘다고 말하지만 착각일 뿐이다. 사랑을 주는 사람이 사랑을 받는 사람보다 행복하기에 그렇다.
사랑을 줄 때 더 행복하다는 사실을 나이 먹을수록 더 느끼게 된다. 그래서 청마는 시의 첫줄을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로 시작하지 않았을까 싶다.
상대방이 냉랭하게 대하며 변박을 주더라도, 뜨거움이 전혀 식지 않고 뭐라도 해주고 싶은 그런 마음이 진정한 사랑이다.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했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이와 같은 <행복>의 마지막 구절을 읽은 정운은 <탑(塔)>이란 시조를 써서 이렇게 화답했다. “너는 저만치 가고/ 나는 여기 섰는데// 손 한 번 흔들지 못한 채/ 돌아선 하늘과 땅// 애모(愛慕)는/ 사리(舍利)로 맺혀/ 푸른 돌로 굳어라.”
두 사람은 20여 년 동안 정신적인 사랑을 나누며 살았다. 죽음만이 그들을 갈라놓았는데, 그들은 내내 사랑 속에서 행복했다.20년을 넘어 50~60년을 가는 사랑도 있으리라. 자기 곁에 평생을 사랑할 상대가 있는 분들은 누구보다 행복한 인생을 살아간다고 할 수 있다.
두근두근 떨리는 심장을 평생토록 지니며 살아왔고, 앞으로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살아갈 테니까. 서로 사랑하라, 그것이 행복으로 가는 첩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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