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소득주도 성장 견인하는 日 기업

정영효 도쿄 특파원
일본에서 대학을 졸업한 정규직 남성이 평생 받는 급여는 퇴직금을 포함해 2억9100만엔(약 30억3775만원)이다. 최근 일본 정부의 경제정책은 온통 이 생애 임금을 3%(1000만엔) 늘리는 데 맞춰져 있다. 미국과 함께 중국을 견제할 목적으로 제정하는 경제안보법을 제외하면 새로 추진하는 정책 대부분이 임금 인상용이란 평가가 많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올봄 노사 임금협상(춘투)을 앞두고 기업 측에 임금을 3% 이상 올려줄 것을 당부했다. 임금을 많이 올리는 기업에는 법인세를 깎아주고 안 올리는 기업은 공공사업 입찰에서 떨어뜨리는 정책도 내놨다.

정부, 기업에 임금 인상 압박

임금과 관계없어 보이는 정책도 뜯어보면 급여를 올리는 게 목적이다. 최근 일본 정부는 상장사의 분기보고서 제출 의무를 없애려고 했다. 기업이 눈앞의 이익에 급급하다 보니 임금 인상에 소극적이라는 이유에서다.

하청업체 개혁도 불합리한 제도를 개선하기보다 하청이 재하청으로 이어져 임금을 하락시키는 구조를 바꾸는 것이 핵심이다. 총리가 공개적으로 기업의 자사주 매입 규제라는 사회주의적 정책까지 거론했다. 주주 환원에 쓸 돈이 있으면 임금을 올리라는 것이다.

기시다 내각이 임금 인상에 목을 매는 건 간판 정책인 ‘성장과 분배가 선순환하는 새로운 자본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다.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소득을 늘리면 소비가 증가해 일본을 ‘잃어버린 30년’의 장기 침체에서 탈출시킬 수 있다는 구상이다.정부 주도의 경제정책이 대개 그렇듯 성과는 지지부진하다. 일본 경영인의 70%는 “올해 임금 인상률 3%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분기보고서 폐지도 없던 일이 됐고, 자사주 매입 규제 발언 이후 주가는 폭락했다.

전문가들은 “노동생산성이 높아져야 기업이 임금을 올릴 여지가 생기는데 임금을 인상하면 생산성은 어떻게든 향상될 것이라는 기시다 내각의 기본 인식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한국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의도와 달리 고용 자체를 줄이는 역효과를 낸 선례를 일본 정부가 반면교사로 삼지 못한 것이다.

소득 증가는 기업이 이끌어

‘일본판 소득주도성장’을 현실화하는 쪽은 민간 기업들이다. 화학기업 다이셀은 올해부터 보수의 일부를 자사주로 주는 주식보수제도를 도입했다. 생활용품 대기업 유니참은 작년 정사원 3200명에게 자사주를 줬다. 전자 대기업 오므론은 오는 4월부터 해외 사원까지 포함한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한 주식보수제도를 시행한다. 일본 2위 금융그룹인 미쓰이스미토모금융그룹 계열 미쓰이스미토모신탁은행도 모든 직원을 대상으로 주식보수제도를 도입할 계획이다.직원들은 회사로부터 받은 자사주를 일정 기간 또는 퇴직할 때까지 팔지 못한다. 회사가 성장해 주가가 오를수록 생애 임금도 불어나는 구조다. 현금으로 받는 것보다 세제 면에서도 유리하다. 보수 일부를 양도 제한 및 성과연동형 주식으로 지급함으로써 회사의 성장과 임직원의 자산 증식이란 이해관계를 일치시켰다는 평가다.

카카오그룹처럼 계열사가 상장하자마자 경영진이 주식매수선택권(스톡옵션)을 행사해 소액투자자에게 피해를 끼치는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가 일어날 가능성도 낮다.

노무 전문가에 따르면 한국 기업도 노사합의에 따라 정관에 규정하면 주식보수제도를 도입할 수 있다. 일본 못지않게 노동생산성이 낮은 한국 기업들도 일본 기업의 소주성 전략을 참고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