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MWC 2022가 IT강국 한국에 내준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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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유럽 상용화 속도 위협적“‘벌써 이 수준까지 왔나’ 싶더군요. 우리의 네트워크 선두 지위가 위험해질 수 있겠다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혁신 없인 언제든 도태' 일깨워
선한결 IT과학부 기자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지난 3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폐막한 세계 최대 통신기술 전시회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2022’를 둘러본 뒤 한 말이다. 한 통신기업 관계자는 “코로나19 이전까지만 해도 MWC는 5세대(5G) 통신, 스마트폰, 사물인터넷(IoT) 등에서 한국의 기술 우위를 확인하는 자리였지만 이번만큼은 아니었다”며 “기분 좋게 전시에 왔다가 더 빠른 혁신을 해야 한다는 숙제를 받아 가는 느낌”이라고 속내를 털어놨다.정책·경영책임자라면 언제든 가지기 마련인 조바심에서 나온 말이 아니다. 이번 MWC 2022에선 미국·중국·유럽 기업들이 앞다퉈 혁신 사례를 쏟아냈다. 중국 화웨이와 스웨덴 에릭슨은 각각 5G 활용도를 크게 높여주는 네트워크 슬라이싱, 주파수 집성 기술 등을 선보였다. 자율주행이나 원격진료 등 차세대 정보기술(IT)산업에 필수인 기술이다.
글로벌 빅테크들은 5G 특화망 기술을 뽐냈다. 특정 지역·기업 전용 5G 통신망을 뜻하는 5G 특화망은 국내에선 아직 사용 실례가 없다. 반면 미국 델은 기업용 5G 특화망을 인공지능(AI) 로봇과 연동해 운영하는 사례를 전시에 내놨다. 델 관계자는 “이미 미국 내 제조·농업·에너지 기업을 위주로 특화망을 조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퀄컴은 마이크로소프트와 손잡고 기업용 5G 특화망 상품을 선보이겠다고 발표했다.
중국의 IT 신시장 공세도 뚜렷했다. 아직 국내에선 이렇다 할 사업자가 나오지 않은 증강현실(AR) 기기 분야에서 중국발 신제품이 쏟아졌다. 오포는 동종 제품 중 가장 가벼운 30g짜리 ‘에어글라스’를 세계 무대에 공개했다. 화웨이는 5G 모듈과 AR 안경을 장착한 특수 안전모 ‘로키드 X-크래프트’를 내놨다. ZTE와 TCL도 각각 AR 안경을 출품했다. 마땅한 국산 장비를 찾지 못해 외산 기기에 의존하는 국내 업계 실정과 딴판이다. 중국 기업들은 스마트폰 신제품 공개 행사도 잇따라 열었다. 그간 중저가 모델에 주력했던 이들은 삼성전자 등을 추격하기 위해 프리미엄 제품군을 늘리고 있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이다. 2019년 세계 최초로 5G 통신을 도입하며 축포를 터뜨렸다. 하지만 기술 우위는 언제든 바뀔 수 있다. 수십 년 전이라면 전시장을 대거 점령했을 일본 기업들을 이번 MWC 2022에선 찾아보기 힘들어진 것이 그런 예다. ‘혁신 숙제’를 받아든 국내 기업들의 꾸준한 선전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