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룰·징벌적 손배·최악의 상속세율…기업 숨통 죄는 '대못' 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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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을 다시 뛰게 하라 - 기업 규제국내 제조 상장기업 A사의 주주총회 담당 임원 B씨는 이달 들어 밤잠을 제대로 못 자고 있다. 이달 24일 정기 주총에서 임기가 끝나는 감사위원을 새로 선임해야 하는데, 최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규제 때문에 의사 정족수(25%)조차 채우지 못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감사위원회 미설치는 상장폐지 요건 중 하나다. 외국인 지분(3%씩 제한)을 모으면 21%에 달해 ‘공격’까지 우려되는 진퇴양난 상황이다. 한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는 “경영시스템의 근간을 흔드는 규제 때문에 기업들이 갈수록 위축되고 있다”며 “새롭게 출범하는 정부는 기업들이 끊임없이 혁신하고 도전할 수 있도록 제도적 여건을 조성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헤지펀드 먹잇감 되는 '3%룰'
기업 경영권 방어 수단도 없어
중대재해처벌법·집단 공시제…
反기업 규제로 기업가정신 위축
OECD, 법인세율 앞다퉈 인하
한국은 거꾸로 25%로 상향
기업 도전 펼치도록 규제 개혁을
지배구조 흔드는 규제 해소해야
7일 경제계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5년간 반기업 정서에 기댄 규제가 쏟아지면서 기업가정신이 크게 위축됐다. 2020년 4월 회기를 시작한 21대 국회 들어 작년 6월까지 1년여간 발의된 의원 규제 입법은 1만여 건으로, 20대 국회 4년 동안 발의된 법안의 절반에 달한다. 대표적인 규제는 감사위원 분리선임 때 최대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2020년 개정 상법이다.정부·여당은 ‘대주주가 입맛에 맞는 감사위원만 뽑는 것을 막겠다’며 밀어붙였지만, 해외 투기자본의 공격에 속수무책이라는 게 경영계의 우려였다. 기업 경영의 근간을 흔드는 법으로, 해외 입법례를 찾기 힘든 강도 높은 규제다. 최근 국민연금의 대표소송 제기 움직임, 노동이사제 도입 등도 명백한 경영 개입이라는 지적이다.
선진국에서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경영권 방어 수단이 갖춰진 것도 아니다. 미국, 일본, 프랑스, 영국 등은 ‘1주 1의결권’ 원칙의 예외를 인정해 경영권을 지닌 대주주에게 주당 10배 안팎의 의결권을 부여하는 차등(복수)의결권 제도를 도입했다. 적대적 인수합병(M&A)을 막기 위한 자구 수단이다. 유환익 전국경제인연합회 산업본부장은 “차등의결권은 경영권을 보호하고, 나아가 혁신적 창업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필요하다”고 말했다.내부거래 규제, 지주회사 의무지분율, 기업집단 공시제도 등을 대폭 강화한 개정 공정거래법도 기업 경영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개정 법안은 내부거래 규제 대상을 규제 기업이 50% 초과 지분을 보유한 다른 계열사까지 확대해 계열사 간 협력을 제한한다는 게 경제계의 분석이다. 주진열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나치게 엄격한 일감 몰아주기 규제는 기업의 효율적인 경영활동을 가로막는다”고 강조했다.
과도한 기업인 처벌 제도 개선 필요
기업인을 궁지에 빠뜨리는 과도한 처벌 제도도 개선해야 한다는 요구가 크다. 중대 재해가 발생하면 경영책임자를 1년 이상 징역으로 처벌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이 대표적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제 확대나 집단소송제 도입 역시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이형준 한국경영자총협회 고용·사회정책본부장은 “기업의 규제 리스크를 최소화하겠다는 새 정부의 강력한 정책 의지를 체감할 수 있도록 중대재해처벌법의 보완 입법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높은 법인세, 상속세 부담도 기업인을 움츠리게 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듬해 법인세 최고세율을 25.0%로 올렸다. 지난해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21.8%) 대비 3.2%포인트 높은 수준이다. 한 대기업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선진국들은 기업 경쟁력 강화와 해외 자본 유치를 위해 앞다퉈 법인세율을 낮추고 있다”며 “최근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15%) 합의로 세 부담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법인세제 개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세계에서 가장 높은 상속세 최고세율(최대 주주 할증 포함 60%)은 아예 기업 문을 닫게 할 정도로 심각하다는 지적이 많다. 가업 상속을 지원하는 공제제도가 있지만,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기업이 중소기업과 일부 중견기업에 불과하고, 조건도 까다로워 자녀에게 물려주기보다 매각을 고민하는 기업인이 많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