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천외의 변명·말장난·궤변 [여기는 논설실]

사진=연합뉴스
궤변과 말장난은 일반적으로 비민주적 전제국가의 전유물이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가 공격을 중단해야만 러시아가 군사작전을 중단할 것"이라는 엉뚱한 발언을 늘어놓은 데서도 잘 확인된다.

그런데 지금 한국에서 유치한 말장난과 궤변이 풍년이다. 중안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은 '코로나 확진자들이 직접 투표함에 기표용지를 넣겠다고 난동을 부렸다'고 했다. 선거 부실관리에 항의하는 주권자들의 행동과 요구를 '난동'으로 매도한 것이다. 노정희 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 역시 일파만파인 부실·부정선거 의혹에 책임자로서 마땅히 해야할 사과가 실종이다. 당황스러울 정도의 비상식적 발언은 문재인 정부를 읽는 핵심 코드다. 청와대는 미국의 역외통제(해외직접제품규칙·FDPR) 면제국에 뒤늦게 한국이 포함된 사실을 해명하면서 '바이든 대통령이 한국에 대해 사의를 표했다'고 오히려 자랑했다. 지난달 발표된 32개 면제국리스트에서 한국이 빠진 뒤 이달 1일 국정연설에서 한국을 대러 제재 동참국가로 언급한 점을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나서서 '사의 표시'라며 자랑한 것이다.

미국의 FDPR 규제 발표직전 한국은 "러시아에 대한 독자제재는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를 두고 워싱턴 정가에서 "한국의 소심하고 미온적인 접근은 부끄럽고 어리석은 것"이라는 노골적 불만이 터져나왔다. 결국 제제 불참을 천명한지 나흘 만인 지난달 28일 한국은 러시아에 대한 금융·수출제재에 동참한다는 입장을 냈고, 후속 협상을 통해 FDPR 면제국에 포함됐다. 외교 참사는 뒤늦게 땜질했지만 우방과 자유진영으로부터의 신뢰는 크게 훼손됐다.

북한 미사일 관련 변명과 궤변도 빠질 수 없다. 새해벽두인 1월 5일 북한이 자강도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올해 첫 미사일을 발사했을 때 정부는 '우려한다'는 낮은 수위의 입장문을 냈다. 이후 국회에서 '물러터진 대응'이라는 비판이 나오자 서욱 국방장관은 “미사일 방향이 우리에게 위해를 가한다면 그건 반드시 '도발'로 성격을 정할 것”이라고 했다. 남한 지역이 아닌 동해로 발사한 미사일은 ‘도발’로 보지 않는다는 취지의 기막힌 해명이다. 미사일이 한국을 향한다면 전쟁이다. 전쟁 의지를 가진 무력행사여야 '도발'이라는 것인지 이해하기 힘들다. 북한은 대선을 불과 나흘 앞둔 앞둔 지난 5일 올들어 9번째 미사일을 쏘아올렸다. '도발'로 규정하지 못하는 국방장관의 물러터진 생각이 이런 미사일 세례에 일조했을 것이다.

궤변이라면 여당도 빠지지 않는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후 SNS에 “코미디언 출신 아마추어 대통령이 미숙한 리더십으로 러시아를 자극했다”고 했다. 러시아에 맞서 세계사의 한 페이지를 써내려가고 있다는 찬사가 쏟아지는 외국 지도자에 대한 지독한 편견이다. 대장동 사건의 핵심피의자인 김만배-정영학 녹취록에 나온 '이재명 게이트' 발언에 대해서도 여당은 “입구에서 지킨다는 의미의 게이트"라는 황당한 해석을 내놨다.

모든 궤변은 당황스럽지만 백미는 아마도 문재인 대통령의 탈원전 관련 발언일 것이다. 그는 보름전 뜬금없이 “향후 60여년 동안 원전을 주력 기저전원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했다. 왜곡된 인식을 바탕으로 5년 임기내내 원전 혐오·적대 발언을 쏟아내다 돌변한 것이다.대통령 발언을 변명하던 청와대는 “탈원전을 추진한 적이 없다”고까지 했다. 가동 중인 원전을 한꺼번에 모두 정지시키는 것이 ‘탈원전’이라고도 했다. 이곳이 한국인지 달나라인지 구분하기 어려줄 정도의 말장난이다. 비합리적 인식과 행동이 잇따르는 푸틴을 두고 정신심리학적 문제를 우려하는 시각이 많다. 국정 전반에서 목격되는 비상식적인 장면은 국가의 건강에 대한 우려를 키울수 밖에 없다.

백광엽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