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신뢰사회로 가기 위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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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훈수 삼일회계법인 대표회계사에게 겨울은 ‘죽음의 계절’로 불린다. 기업 규모가 커지면서 세계 곳곳에 해외법인을 가진 대기업이 부쩍 늘었고 수천억원 규모 기업은 셀 수도 없이 많다. 이런 기업의 한 해 실적을 꼼꼼히 결산하고 감사보고서를 내다 보면 회계사는 결산 시즌에 야근이 잦다. 밤 12시가 넘어가면 우리 회사 건물 1층에는 회계사가 귀가를 위해 예약한 택시가 줄지어 기다리는 진풍경이 펼쳐지곤 한다. 이런 이유로 회계사는 봄을 기다린다.
회계사는 ‘자본주의의 파수꾼’으로 불린다. 현대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재무제표는 금융 거래, 채권의 발행과 인수, 주식 투자 등 모든 경제 활동의 기초가 된다. 기업이 내놓는 재무제표가 잘못 작성되거나 기업 입맛에 맞게 왜곡(분식)될 경우 시장 전체의 신뢰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 기업의 규모가 커지고 글로벌화하면서 회계 역시 갈수록 복잡다단해지고 있다. 고도의 전문성을 갖춘 ‘공인 회계사’가 시장과 투자자를 대신해 기업의 재무제표를 철저하게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그런 측면에서 외부감사인의 공정성과 독립성 강화는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한 토대라고 할 수 있다.2017년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개정으로 과거 고질적인 문제였던 외부감사인의 낮은 독립성, 기업의 회계 처리 능력 및 책임 의식 부족, 회계 부정에 대한 미온적 처벌 등을 근본적으로 해소할 획기적인 제도가 도입됐다. 외부감사인의 주기적 지정제, 표준감사시간제도, 내부회계관리제도 등이 그것이다.
빡빡해진 감사, 비용 증가 등을 들어 기업은 적잖은 불편과 불만을 호소하고 있으나 최근 한국의 회계 투명성은 급속히 개선되고 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한국의 회계 투명성은 2017년 64개 국가 중 꼴찌(63위)에서 2021년 37위로 올라섰다. 회계 부문 경쟁력이 4년 만에 20단계 이상 상승한 유일한 국가다.
모든 제도 개혁에는 저항이 뒤따른다. 제도 정착 과정에서 기존 관행이나 질서와의 마찰도 불가피하다. 세심하고 빈틈없는 후속 절차를 통해 제도 안착에 힘써야 하는 이유다. 새로운 제도가 감사 현장에서 충실히 이행되고 있는지 살피고 기업과 감사인의 애로 사항을 균형감 있게 청취·보완해 나가야 한다. 감독당국 역시 재무제표 모니터링 및 신속 정정 등 사전 예방 지도를 확대하는 대신 중대한 회계 부정은 철저하게 밝혀내고 엄중하게 처벌함으로써 회계 감독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최근 상장기업의 암호화폐 직접 발행 등 이전에 없던 새로운 자본 흐름이 출현하고 있다. 하지만 회계 처리 방침은 아직 정해지지 않아 재무제표 작성자인 기업, 감사를 실시해야 하는 회계법인, 투자자 등 시장 참가자 모두가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오늘 선거로 탄생할 새 정부에도 회계산업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산업 흐름과 경제 환경에 따른 신속한 대응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