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화합과 미래를 위한 투표

미래를 위한 실존적 결단의 날
'자유·공정·통합' 시대적 과제
후보자 문제의식이 선택 기준

분열과 대치 지속 땐 국가 실패
공정·번영 넘어 국민 상처 치유
대통합 이룰 후보 뽑는 선거 돼야

김인영 한림대 정치행정학과 교수
결단의 날이다. 선거란 유권자가 ‘총탄이 아닌 투표(not bullet, but ballot)’로 과거 권력을 심판하고 미래 권력을 선택하는 행위다. 그래서 5년에 한 번 오는 대선 투표일은 미래를 위한 실존적 결단의 날이다.

장 자크 루소는 투표를 통한 시민권 행사를 자유인과 노예의 관점에서 봤다. “국민은 오직 투표일만 자유로울 뿐이다. 투표일이 지나면 곧 노예로 되기가 쉽다”는 명언을 남겼다. 인간이 자신의 손으로 만든 사회제도와 문화에 의해 자유로웠던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 속박된 노예 상태에 빠졌으므로 ‘자연으로 돌아가 인간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속뜻이 있다.그러면 어떤 후보에게 투표해야 하는가. 개개인이 생각하는 관점이 다르고, 다름이 틀림을 의미하지 않기에 대통령에 대한 다양한 자격 조건이 가능하다. 대체로 동의하는 대통령이 될 자격 기준은 신뢰, 청렴, 일자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 명민한 판단력, 화합 능력 등이 있겠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우선 해결해야 할 시대적 과제를 자유, 공정, 통합이라고 규정한다면 기준은 보다 명확해진다.

그렇다면 이재명, 윤석열 후보는 자유와 공정이라는 시대 과제를 어떻게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그 정도는 알고 투표장에 갈 필요가 있다. 공약을 검토할 수 있지만 원래 공약이란 대선캠프의 작품이므로 후보 개인의 생각을 파악하기에 적절치 않다. 대신 감명 깊게 읽었다는 책을 통해 후보자의 문제의식을 추정할 수 있겠다. 책의 문제의식과 해결 방식에 공감할 때 ‘감명 깊음’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이재명 후보는 감명 깊게 읽은 책으로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을 들었다. 미국 사회의 문제점으로 능력주의(meritocracy)를 다룬 책이다. 개인이 열심히 노력해 이룬 대가를 향유하게 하는 것이 국가가 만드는 시스템의 목적인데, 그것만으로는 공정을 달성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능력주의는 학력주의로 변질되고, 좋은 직장 얻기와 사회적 평가의 준거가 학력으로 귀결돼 학위를 갖지 못한 이들이 소외된다는 것이다.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계층 이동의 장벽을 허물고 누구도 가난이나 편견 때문에 성공할 기회를 빼앗기지 않는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 정치의 역할이 된다. 이 후보는 자기와 같은 비주류 출신의 성공이 일반화되는 공정 사회를 만드는 일을 정치적 과업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윤석열 후보는 대런 애스모글루와 제임스 로빈슨의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를 감명 깊었던 책으로 꼽는다. 저자들은 ‘번영으로 이끄는 국가’의 특징을 ‘포용적 정치·경제 제도’의 존재 여부에서 찾는다. 사유재산권을 보장하고, 공정한 경쟁의 장을 마련하며, 신기술과 기능에 대한 투자를 장려하는 ‘포용적 경제제도’가 있는 경우 번영했다고 베네치아와 대영제국을 사례로 설명한다. 반면 ‘실패한 국가’는 소수가 다수로부터 자원을 착취하기 위해 제도를 고안하고, 사유재산권을 보장해 주지 못하거나, 경제활동에 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하지 못하는 ‘착취적 경제제도’를 가진 국가로 규정한다. 식민지 콩고의 지배자는 농업 발전에 필요한 쟁기를 보급하지 않았고, 합스부르크 황제와 러시아 차르는 산업 발전을 촉진할 철도 보급을 가로막았으며, 북한의 지도자는 개혁개방을 통한 경제 성장을 막고 쇄국 속의 자력갱생에 몰두했다. 윤석열식 생각의 키워드는 ‘성공한 국가’, ‘포용적 제도’, ‘공정한 경쟁’임을 엿볼 수 있다.

언론은 최악의 비호감 선거라고 규정한다. 하지만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번처럼 선거 과정에서의 격렬한 진영 대결 때문에 대선 이후가 걱정되는 선거는 없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사전투표율 36.9%의 과열은 결코 간단치 않다. 진영 대결이 과열돼 미움과 증오로 번졌고, 세력 대치로 나라가 두 동강 나는 모습이다.

투표 결과 나라가 둘로 쪼개져 대치가 일상화하며 국가 실패로 이어질 수도 있고, 반대로 국가가 대통합해 선진국으로 나아갈 수도 있기 때문에, 이번 대선은 공정과 번영을 넘어 국민의 상처를 치유하고 대통합을 이룰 후보를 뽑는 선거가 돼야 한다. 애초에 유권자 입맛에 꼭 맞는 후보란 없다. ‘누구를 지지한다’고 언급하기조차 부끄러운 비호감 선거지만 차악을 선택하는 행위가 투표다. 미움과 증오를 치유하고 국민 대통합을 이뤄낼 후보를 뽑는 민주 시민의 실존적 결단만이 나라를 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