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반등 기다리는 투자자들, 시장은 여전히 롤러코스터

8일(현지시간) 뉴욕 증시는 전쟁 관련 뉴스가 나올 때마다 헤드라인에 따라 위로, 아래로 방향을 바꾸며 롤러코스터처럼 요동쳤습니다. 하루 이틀이 아닙니다. 투자자가 전쟁 포로가 된 상황이라는 자조 섞인 말까지 나올 정도입니다.

오전 9시 30분 개장 즈음에 영국이 러시아 원유 수입을 단계적으로 금지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미국에서도 조 바이든 대통령이 오전 10시 45분 수입 금지 조치를 발표한다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기자회견을 연 바이든 대통령은 "푸틴의 전쟁에 돈을 대지 않을 것"이라며 원유와 가스, 석탄의 수입을 즉시 금지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많은 유럽 동맹국들은 아직 러시아 에너지를 전면 수입 금지 할 처지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뉴스는 시장에는 별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습니다. 이미 알려진 소식이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8%대 상승하던 국제 유가는 3%대로 오름폭을 줄였습니다. 월가 관계자는 "바이든 대통령의 말을 들으면 이날 미국과 영국의 러시아 에너지 수입 금지 이후에는 더 나올 제재는 없을 것 같다. 이런 측면에서 투자자들이 '뉴스에 팔아라'라는 격언대로 행동한 것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날 브렌트유와 서부텍사스원유 모두 4%가량 올라 각각 배럴당 128달러와 124달러 선에 거래를 마쳤습니다.
약보합권에 머물던 주가는 오전 11시 45분께 급등하기 시작했습니다. S&P500 지수는 30분 동안 70포인트 튀었습니다. AFP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러시아가 요구한 나토 가입을 포기하고 크림반도와 돈바스 등 영토 문제에 대해 협상 의사가 있음을 내비쳤다는 뉴스를 내보낸 겁니다. 사실 이 뉴스는 전날 ABC 방송이 보도한 젤렌스키 대통령 인터뷰 내용에 기반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전날 밤 조용했던 미 증시는 휴전 가능성에 흥분했습니다. CNBC의 밥 바사니 평론가는 "어제 뉴스에 시장이 크게 움직이는 걸 보면 시장은 극적으로 과매도된 상태이고, 반등할 이유를 찾고 있는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습니다.
오후 1시 20분께 상승세는 꺾어졌고 오후 2시께 시장은 다시 마이너스로 되돌아가기도 했습니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서방 제재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러시아산 일부 제품과 원료의 해외 반출과 반입을 올해 12월 31일까지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내용의 대통령령에 서명했다는 뉴스가 나온 탓입니다. 투자자들은 놀랐습니다. 다만 대통령령에 구체적인 제품과 목록은 달려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 사이 다우 지수는 800포인트를 오갔습니다. 그리고 시장은 오락가락하다가 결국 내림세로 거래를 마쳤습니다. 다우는 0.56%, S&P500은 0.72% 내렸고 나스닥은 0.28% 떨어졌습니다.
이날 주식뿐 아니라 유가도, 채권도 이런 소식들에 함께 요동쳤습니다.

미 국채 10년물 채권 금리는 이날 새벽 1.7%대 후반에 머물다 꾸준히 상승해 전날보다 9.4bp나 오른 1.866%에 마감됐습니다. 월가 관계자는 "지난 1일과 4일 연 1.73% 수준에서 쌍바닥이 형성되자, 채권 트레이더들이 금리가 오를 것으로 보고 매도에 나섰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다른 월가 관계자는 "이제는 투자자 관심이 전쟁 공포보다는 미 중앙은행(Fed)의 금리 인상으로 이동하는 듯하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번 전쟁으로 각국이 군비 증강에 나서고 있어 국채가 더 많이 쏟아져 나올 수 있다. 이는 장기적 금리 상승 요인"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미국의 1월 무역적자가 897억 달러로 역대 최대에 달했다는 발표, 3년물 국채 입찰 결과가 그다지 좋지 않았던 것도 국채 금리 상승에 영향을 줬습니다.
월가에서는 주가가 바닥을 찾고 반등할 것이라는 주장이 조금씩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① 미국, 올해 경기 침체는 없다

이날 S&P500 지수는 4200선 근처에서 머물다 4170,70에서 마감했습니다. 이는 지난 2월 24일 저점(4114.65)보다 약간 더 높습니다. 또 조금 더 떨어지면 고점(4818.62)에서 15% 하락(4095)하는 곳에 멀지 않습니다. 골드만삭스는 "1950년 이후 S&P500 지수가 10% 이상 조정을 받았을 때 향후 12개월 내 경기 침체가 없었다면 20% 이상 떨어진 적은 드물었다"라고 밝혔습니다. 즉 이번에 침체가 아니라면 15% 수준에서 반등을 기대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사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범으로 경기 침체 위험이 증가했지만, 월가에서는 침체 가능성을 크게 보고 있지는 않습니다. 전날 CNBC 설문에 응한 이코노미스트들은 2022년 미국의 경제성장률을 3.2%로 봤습니다. 2월보다는 0.3%포인트 줄었지만, 여전히 장기 추세보다는 훨씬 높습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지난 7일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6%에서 3.3%로 하향 조정하면서 "미국은 최근 몇 년 동안 에너지 충격에 덜 민감해졌다. 에너지에 지출된 소득의 몫은 1980년대 3% 중반에서 2021년에는 2.1%로 낮아졌다"라고 밝혔습니다. 또 "셰일 혁명으로 미국은 2019년 에너지 순수출국으로 전환해 ‘에너지 자립’을 이뤘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에너지 자립을 이루면 유가가 폭등해도 국내 자금이 산유국으로 빠져나가지 않고 국내에 남아 돌게 됩니다. 이는 이론적으로 기업들의 자본 투자와 지출을 지원하게 됩니다.
캐피털이코노믹스도 "미국 소비자는 잉여 저축을 써서 단기적으로 유가 상승에 따른 타격을 완화할 수 있으므로 소비 회복을 심각하게 위협하려면 유가가 여기에서 훨씬 더 상승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혔습니다. 실제 이날 월스트리트저널(WSJ) 설문 조사에서 미국인 응답자의 79%가 유가가 오르더라도 러시아 에너지 수입을 막아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여유가 있다는 뜻입니다.
LPL리서치의 라이언 디트릭 수석 전략가는 "올해 들어 S&P500 지수가 13% 넘게 하락하면서 투자자들이 매우 불안해하고 있지만, 이는 중간선거가 있는 해에는 매우 통상적인 현상"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중간선거가 있는 해에 S&P500 조정의 평균 하락 폭은 17.1%"라면서 "좋은 뉴스는 다음 해에는 주가 상승률이 평균 30%를 넘는다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② 밸류에이션이 충분히 낮아졌다

팩트셋에 따르면 S&P500 지수의 밸류에이션은 이제 역사적 추세 수준으로 되돌아 왔습니다. 추세의 상단에 있기는 하지만 낮은 금리를 감안하면 충분히 싸졌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월가 관계자는 "최근 조정을 거치면서 가장 희망적인 건 S&P500 지수의 주가수익비율(P/E)이 19배 수준으로 낮아졌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날 '가치평가의 석학'으로 불리는 뉴욕대의 애스워스 다모다란 교수는 CNBC 인터뷰에서 최근 메가 캡 기술주 폭락은 투자자들에게 매력적 가격 수준을 제공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다모다란 교수는 페이스북의 모회사 메타, 애플, 알파벳,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를 지목했습니다. 그는 "이들은 훌륭한 기업이다. 부채가 거의 없고, 막대한 현금 잔고, 견고한 가격 결정력을 갖고 있으며 현금 지급기 같은 곳들이다. 이들 회사에 대한 질문은 항상 '(사야 할지가 아니고) 어느 정도 주가에서 사야 하나'라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메타는 올해 들어 40% 넘게 하락했고,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 등도 15% 넘게 내렸습니다. 다모다란 교수는 "단기적으로 통증이 없을 것이라는 의미는 아니다"라면서도 "장기적으로 보면 내 포트폴리오에 어떤 소비재 회사보다도 이들 주식을 보유하고 싶다"라고 말했습니다.

③ 변동성 지수 낮아지는 시점

변동성지수 VIX는 지속해서 30대에 머물고 있습니다. 전날 36.45에 마감했으며 이날 한때 37.52까지 치솟아 52주 최고(38.94)에 육박하기도 했습니다. 이날 전날보다 1.32포인트(3.62%) 하락한 35.13에 마감됐습니다.

데이터트랙리서치는 1990년 이후 VIX가 36 이상으로 마감된 경우, S&P500 지수의 이후 12개월 동안 상승확률은 96%에 달하며, 평균 수익률은 30.1%에 달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높은 VIX는 매력적 진입 지점이 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지금 투자 환경이 위험하지 않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올해 들어 저가매수를 노리고 주식을 사서 보유한 투자자는 평균 10% 이상 손실을 보았습니다.
전쟁도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날 미 중앙정보국(CIA)의 윌리엄 번스 국장은 하원 정보위원회 증언에서 향후 수 주 내로 우크라이나가 매우 험악한 상황에 부닥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유가 상승세는 언제 그칠지 모릅니다. 브렌트유는 이날 배럴당 133달러까지 치솟기도 했습니다. 미국과 영국만 제재에 나서고 유럽은 러시아 에너지 수입을 금지하지 않는다고 해도, 실제 수입할 수 있는 길은 막히고 있습니다. 셸은 이날 러시아산 원유와 천연가스 등의 구매를 중단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지난주 러시아 원유를 구매했다가 각국의 공분을 산 데 따른 조치입니다.
골드만삭스는 이날 보고서를 내고 올해 브렌트유 전망치를 배럴당 135달러로 높였습니다. 기존 98달러에서 대폭 상향 조정한 것이다. 골드만삭스는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제재는 잠재적으로 대량의 글로벌 석유 공급 감소를 부르고 이는 글로벌 에너지 지도를 다시 그릴 수 있다고 믿는다"라고 밝혔습니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러시아는 3월 원유 수출분의 절반 이상이 판매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이 지속한다면 국제 원유 시장에 하루 300만 배럴 공급 감소를 의미하며, 이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아랍의 석유 금수(1973), 이란 혁명(1978), 이란-이라크 전쟁(1980), 이라크-쿠웨이트 전쟁(1990) 이후 다섯 번째로 큰 규모의 공급 차질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골드만삭스는 "향후 몇 달간의 유가는 더 많은 러시아 에너지를 소화하려는 중국의 의지, 핵심적인 OPEC 회원국들의 증산, 이란 및 베네수엘라의 석유 제재에 대한 해제 가능성, 각국의 전략 비축유 방출 등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봐야 한다"며 "세계 정치가 주도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들 조치가 러시아 수출의 상당한 감소를 상쇄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세계 석유 시장에는 완충 장치가 없어지므로 여전히 높은 유가를 통한 수요 파괴가 필요하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골드만삭스는 미국 셰일의 경우 자본 투자가 지연되고 있으며, 새로운 유정을 시추하고 원유를 생산하는 데 몇 개월이 소요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크고 즉각적인 공급 충격에 대한 적절한 대안은 아니라고 경고했습니다.
골드만삭스는 "이런 지정학적 갈등과 석유 부족이 어떻게 해결될지에 대한 불확실성은 전례가 없다"라며 세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습니다. 러시아 에너지가 하루 50만 배럴 제한적 차질을 빚으면 2분기 유가가 배럴당 115달러(45% 확률)가 되고, 서방의 제재로 200만 배럴이 줄어들면 배럴당 145달러(40% 확률), 러시아가 자체적으로 수출을 봉쇄하는 등 심각한 공급 제약이 생겨 400만 배럴 이상이 감소할 경우 175달러(15% 확률)까지 치솟을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골드만삭스는 여전히 심화하고 있는 군사적 갈등과 서방의 제재 강화, 러시아의 고립 증가를 고려할 때 기본 시나리오는 하루 160만 배럴 공급이 감소하는 것이라며, 2022년 브렌트유 전망치는 기존 100달러에서 135달러로, 2023년은 기존 105달러에서 115달러로 높였습니다. 불확실성이 경기를 위협하고 있지만, 미 중앙은행(Fed)은 오는 16일 기준금리를 25bp 올릴 것입니다. 과거 같으면 완화적 통화정책을 시행하거나 조심스럽게 지켜봐야 할 때이겠지만, 지금은 인플레이션이 너무 높습니다. 데이터트랙리서치는 “1990년 이후 Fed는 미국 증시의 변동성이 높은 상태에서 긴축 주기를 시작한 적이 없다"라며 "에너지 가격 상승 속에서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금리를 인상할 수 있지만, 전례 없는 영역에 있게 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