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지키자"…친러 오데사 주민도 결사항전

무차별 폭격에 반러감정 폭발

러 점령 임박하자 "항복안할 것"
모래주머니·화염병 만들며 저항

민간인 대피 약속한 지역서도
러, 산부인과·어린이병원 폭격
“우리는 히틀러(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비유)에게 오데사를 넘겨줄 수 없다. 그 누구에게도 항복하지 않을 것이다.”

흑해 연안에 있는 우크라이나 제3의 도시 오데사. 8일(현지시간) 이곳은 러시아군에 맞서 싸우려는 평범한 시민들의 결기로 가득 찼다. 친러시아 성향이 우세한 지역이지만 시민들은 ‘도시는 내가 지킨다’는 항전 의지로 똘똘 뭉쳤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이날 “숲에서, 바다에서, 거리에서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외쳤다.

하나 된 우크라이나인

오데사는 인구 100만 명이 거주하는 우크라이나 최대 항구 도시다. 인근 도시인 헤르손은 러시아군에 장악된 상태지만 오데사에선 교전이 본격화하지 않았다. 하지만 러시아의 다음 타깃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오데사 시민들은 전쟁 태세에 돌입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이곳 주민들은 러시아군의 탱크 진입을 저지하기 위해 해안가에서 모래를 퍼와 주요 길목마다 주머니를 쌓고 있다. 문을 닫은 식당에선 군인과 지역방위군을 위한 음식이 제공되고 있다. 총 대신 악기를 든 시민들도 있다. 음악으로 오데사 주민들의 사기를 북돋기 위해서다. 갈리나 지서 오데사 필하모닉 감독은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이라면서도 푸틴에게 오데사를 절대로 빼앗기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날 오데사의 오페라 발레 극장 앞에서는 우크라이나 군악대가 연주하는 ‘걱정하지 말고 행복해지자(don’t worry, be happy)’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오데사는 우크라이나 안에서도 러시아에 우호적인 지역으로 꼽힌다. 시장이 친러 성향인 빅토르 야누코비치 전 대통령이 이끄는 정당 소속인 데다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주민도 많다. 하지만 러시아군이 민간인 목숨까지 위협하자 시장도 반러 노선으로 갈아탔다. 타라스 세메뉴크 우크라이나 정치 분석가는 “어떤 당에 속해 있는지,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며 “우크라이나를 지키고 적을 죽이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 모두가 단결하고 있다”고 평가했다.수도 키이우(키예프) 시민들도 도시를 요새화하며 방어 태세를 갖추고 있다. CNN은 “이들은 화염병을 만들고 군대를 위해 돈을 모으고 있다”며 “러시아군을 혼란스럽게 하기 위해 심지어 교통 표지판 위에 페인트를 덧칠하고 있다”고 전했다.

젤렌스키 “계속 싸운다”

이날 키이우에서 동쪽으로 350㎞ 떨어진 수미 지역에선 개전 13일 만에 처음으로 인도적 차원의 민간인 대피가 이뤄졌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교전 지역에서 2만3000명 이상이 대피했다고 밝혔다.당초 러시아는 이날 키이우 체르니히우 하르키우 마리우폴 등에서 안전 통로를 통해 민간인을 대피시키기로 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마리우폴 시의회는 러시아군이 산부인과와 어린이병원 등 의료시설을 공습했다고 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어린이들이 잔해 아래 있다”며 “잔혹행위”라고 비판했다. 러시아는 민간인에 대한 공격을 부인했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총공격을 펼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윌리엄 번스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하원 정보위원회에 출석해 “(우크라이나의 완강한 저항에) 푸틴이 단단히 화가 난 것 같다”며 “그는 민간인 사상자를 고려하지 않고 더 세게 공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물러서지 않고 있다. 그는 이날 영국 하원에서 화상 연설을 통해 “우리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우크라이나를 지키기 위해 계속 싸울 것”이라고 했다. 또 영국 출신 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명대사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를 인용하며 “우리는 살기로 했다”고 강조했다.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