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기업들의 엇갈린 보이콧 행보

UC버클리는 1970~1980년대 미국 학생운동의 본산이었다. 버클리의 ‘행동주의’ 전통이 국제적 명성을 얻게 된 사건이 1985년 아파르트헤이트(극단적 흑백분리 차별정책)에 반대한 투자 철회 운동이다.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압박하기 위해 “남아공과 이해관계를 가진 기업에 투자한 돈을 회수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대학당국은 이에 못 이겨 남아공 관련 투자금액 30억달러를 회수했다. 이후 월가 큰손들의 투자 회수로 이어져 1990년대 남아공이 인종차별 정책을 포기하는 기폭제가 됐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2주째를 맞아 글로벌 기업들의 러시아 철수가 계속되고 있다. 애플, 나이키, 인텔, GM, 이케아 등에 이어 보이콧 참여를 주저하던 맥도날드도 동참했다. ‘맥도날드를 그냥 지나쳐라’라는 불매운동에 위기감을 느껴 8일(현지시간)부터 러시아 내 850개 매장의 영업을 중단했다. 미국 문화의 상징인 맥도날드가 옛 소련 말기인 1990년 1월 모스크바에 첫 매장을 열었을 때 하루에만 3만 명 넘게 몰려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번 폐점 전날에는 마지막으로 햄버거를 맛보기 위해 32년 전 모습을 재연하듯 수백m의 줄이 생겼다.글로벌 기업들이 앞다퉈 러시아 제재에 동참하는 와중에 거꾸로 보이콧 참여를 거부하는 곳도 있다. 일본 유니클로의 야나이 다다시 회장은 “러시아 사람들도 우리와 똑같이 살 권리가 있다”며 잔류를 선언했다. 경쟁 업체인 스페인 자라, 스웨덴 H&M이 러시아 내 전 매장을 폐쇄한 것과는 상반된 행보다. 유니클로는 2019년 자라와 H&M이 중국의 위구르족 탄압을 규탄하며 신장산 면화 사용을 중단했을 때도 보이콧에 동참하지 않아 국제 인권단체들로부터 지탄받았다.

글로벌 기업들의 ‘러시아 엑소더스’가 푸틴에게 얼마나 압박을 가할지는 미지수다. 러시아 시장에서 발을 뺐다가 재진입이 어려워질 우려도 있다. 그런데도 기업들이 대(對)러시아 제재에 적극 동참하는 것은 과거와 달라진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서다. 기업이 이윤 추구와 함께 사회·윤리적 책임도 소홀히 해선 안 된다는 ‘ESG 경영’ 압력이 거세다. 공정과 정의에 민감한 글로벌 MZ세대에겐 더욱 그렇다. 러시아 시장만 생각하다간 자칫 글로벌 시장을 잃을지도 모른다. 이래저래 기업 경영이 고차원 방정식이 돼가고 있다.

윤성민 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