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당선] '우린 어떡하나' 여가부 폐지론이 외면한 소수자들

여가부 예산 80% 청소년·가족정책 할당…기능 위축 우려
전문가 "존치냐 폐지냐 이분법 넘어 발전적 대안 모색해야"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실패했다고 해서 국토부를 폐지하자고 하지는 않잖아요.왜 유독 여가부만 공격 타깃이 돼야 하는 거죠?"
9살 딸을 둔 미혼부 김지환(45)씨는 10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여성가족부 폐지론'에 대해 "여가부가 젠더 갈등을 해결하려 노력하는 부처지, 갈등을 조장하는 부처는 아니다"며 이같이 꼬집었다.

◇ 미혼부·학교밖청소년 등 사회적 소수자 목소리는 뒷전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20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여가부 폐지 공약이 현실화할지를 두고 우려의 목소리도 잇따르고 있다.

이번 대선의 캐스팅보트로 급부상한 '이대남'(20대 남성) 표심을 잡기 위해 '여가부 폐지'라는 공약이 나왔지만, 이런 공약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정책 당사자인 소수자의 목소리는 배제됐다는 것이다.또 여가부가 단순히 여성만을 지원하는 부처는 아니고 여가부 예산의 약 80%가량은 가족과 청소년정책에 사용되는 만큼 가족·청소년정책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싱글 대디'를 지원하는 '아빠의품' 대표인 김씨는 여가부가 한국사회의 소수자와 약자를 보듬는 상징적 부처라고 강조했다.

김씨는 "한부모 가정이나 조손가정 등 우리 사회의 극소수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제도를 개선하려고 움직이는 부처는 여가부밖에 없다"며 "여가부가 비록 제역할을 못 한다고 해서 폐지를 거론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그는 또 "과연 여가부 폐지가 국민의 대다수의 여론인지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며 "몇몇 목소리 큰 사람들의 주장을 국민의 뜻으로 포장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또 다수가 아닌 소수자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학생 임모(20) 씨는 '여가부 폐지'가 대선 정국의 화두로 떠오르면서 내내 답답하고 무기력한 느낌에 빠졌다고 호소했다.학교밖 청소년이었던 임 씨는 "여가부가 지원하는 꿈드림센터에서 검정고시를 위한 교재와 수업을 지원해줬고, 이런 지원이 고졸 학력을 따고 대학에 가는 발판이 됐다"고 말했다.

대입을 준비하려면 입시 정보도 필요했고, 학교밖 청소년에게 소속감을 준다는 점에서도 큰 위로와 버팀목이 됐다는 것이다.

임 씨는 또 "이 밖에도 학교밖 청소년들이 자기 계발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자격증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단순히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는 이유로 청소년들이 사회에서 차별을 겪지 않도록 다양한 도움을 주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어 "학교밖 청소년이 해마다 늘고 있고 더 많은 도움이 필요한 상황인데, 여가부가 없어진다면 아무래도 학교밖 청소년이 더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 전문가들 "여가부 폐지 땐 정책 후퇴 가능성…별도 부처 필요"
여가부가 폐지되면 여성 등 소수자를 위한 정책 자체가 후퇴할 것이란 지적도 있다.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는 "여가부가 폐지되면 현재 여가부가 맡는 다양한 기능을 다른 부처로 넘기는 방안이 유력해 보인다"며 "여가부에서 추진해오던 정책이 다른 부처로 편입될 경우 업무 우선순위가 밀려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권 대표는 또 "만족스럽지는 않다고 해도 여가부가 있음으로 해서 여러 부처의 정책 추진 과정에서 나름 젠더 관점이 반영되는 측면이 있다"며 "각 부처 정책을 점검하고 보완하는 등 컨트롤하는 조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는 다른 부처에서 관장하기 어려운 주요한 젠더 문제들이 많고 이와 관련된 정책을 발굴·시행하는 독립된 행정기구가 여전히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선대본부에서 고문을 맡았던 이수정 경기대 교수는 여가부가 폐지된다고 해서 여가부가 담당해온 업무가 아예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이 교수는 "아직 구체적 내용이 정해지지 않았지만, 윤 당선인의 공약을 보면 여가부를 폐지하는 대신 새로운 부처를 신설한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교수는 "여가부가 추진해온 업무들이 주로 특정 대상자 군에 제한된 서비스"라며 "이런 기능들이 복지부로 넘어갈 경우 복지부의 주요 업무 목표를 구성하긴 어렵다"고 분석했다.

이어 "신설될 부처에는 아동·청소년·양성평등을 포함하는 포괄적 형태의 약자 보호적 서비스를 제공하고 부서가 있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는 "선거전략 차원에서 '여가부 폐지'가 등장하면서 존치냐 폐지냐는 프레임에 갇히게 됐다"며 "이런 식의 프레임에서는 발전적인 방향으로 개편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평했다.

홍 교수는 또 "존치냐 폐지냐를 논하기 전에 과연 성평등 정책을 국가정책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느냐, 만약 여전히 필요하다면 여가부가 이를 추진하기에 적합한 기구인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더 생산적인 논의를 위해 조직 개편의 가능성은 열어두되, 성평등 정책을 무력화하려는 시도와는 거리를 둬야 한다는 것이다.아울러 홍 교수는 "여가부 폐지를 위해서는 정부조직법 개정이 필요한데, 더불어민주당이 다수 의석을 차지한 상황에서 여가부 개편 논의가 원활히 진행될지도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