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솔제지, 친환경 소재로 새로운 100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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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CMO Insight 「케이스스터디」종이는 처음 발명된 이래 지난 2000여년 동안 인류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었다. 때로는 정보전달과 기록을 위한 매개체, 때로는 학습 교재가 됐다. 뿐만 아니라 포장재 화장지 기저귀 생리대 등 종이는 다양한 형태로 일상 생활 속 깊숙이 파고들어 인류의 일상을 윤택하게 했다.
재활용 가능 포장재 ‘프로테고’
수용성 코팅액 사용 종이용기 ‘테라바스’
친환경 가상 전시관으로 비대면 소통
이런 종이가 최근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변신에 나서고 있다. 전통적인 쓰임새에 머물지 않고 변화하는 생활 패턴에 맞게 영토를 대폭 확대해 나가고 있다. 정보기술(IT) 융복합 및 산업화를 실현하는 기능성 특수종이로 거듭나는 한편 식품, 화장품, 의료·전기·전자부품을 비롯한 첨단산업의 핵심 소재로서 가능성도 높여 나가고 있다. 국내 1위 종합제지회사 한솔제지는 이 같은 종이의 변신 및 혁신을 선도하며 종이의 미래 100년을 그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는 평가다. 한솔제지는 1965년 새한제지를 인수해 설립한 삼성그룹의 전주제지가 그 모체다.
1968년 10월 이병철 선대회장의 ‘종이 소재를 통한 국민문화 창달과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한다’는 의지를 담아 첫 제품을 선보인 이래 1979년 업계 최초로 기술연구소를 설립하는 등 국내 제지 기술 향상을 이끌어왔다.
상황 1 인쇄용지 시장 정체
도전 1 사업 포트폴리오 다각화
한솔제지는 인쇄용지를 주된 성장 동력으로 삼아 시장 지배력을 확대하고 몸집을 불려나갔다. 그런 한솔제지에 전환점이 찾아온 건 2010년께다. 정보통신기술(ICT)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대중의 생활패턴이 변함에 따라 제지업계 트렌드 재편이 불가피해졌다. 종이의 주된 역할이었던 정보의 기록과 전달 기능을 스마트폰, 태블릿PC 등 디지털 기기가 대신하면서 인쇄용지와 신문용지 등 전통적인 제지시장이 본격 축소되기 시작한 영향이다. 한국제지연합회에 따르면 국내 인쇄용지 시장 규모는 2012년 320만t에서 2020년 232만t으로 약 30% 감소했다.
산업용지와 특수지 등이 새롭게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디지털 중심 환경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면서 온라인 쇼핑 등이 활성화됨에 따라 택배상자 등 포장재로 활용되는 산업용지 수요가 증가세에 돌입했다. 스마트폰의 빠른 보급은 쇼핑의 시·공간 제약을 없애며 온라인 쇼핑 트렌드를 더욱 가속화시켰다. 한솔제지 관계자는 “택배 수요가 늘어나면서 택배상자는 물론 라벨 용지 수요도 크게 증가하는 등 제지 시장이 변곡점을 맞았다”고 돌아봤다.
한솔제지가 영수증과 라벨 등에 주로 사용되는 감열지 시장 성장성을 내다보고 2013년 대대적인 투자에 나선 배경이다. 장항공장과 신탄진공장에 각각 230억원, 500억원을 투자해 국내에서 처음으로 인쇄용지와 감열지를 모두 생산할 수 있는 ‘스윙 생산 체제’를 구축했다.
인쇄용지와 감열지 등 수급 상황에 따라 지종을 유연하게 선택해 생산하는 게 가능해지면서 신규 수요 흡수는 물론 기존 수요 감소에도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다.2020년에 대전공장 생산라인 개조에 323억원을 투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국내 백판지 1위 기업으로서 생산성을 높이는 것은 물론 당시 경쟁사 철수로 생긴 백판지 물량 공백을 빨아들이며 선두 기업으로서 시장 지배력을 더욱 공고히 했다.
상황 2 미래성장 동력 필요
도전 2 고부가가치 친환경 사업
한솔제지는 국내 제지업계에서 사업 포트폴리오가 가장 안정적인 기업으로 평가받는다. 인쇄용지, 산업용지, 특수지, 감열지 등으로 다각화된 가운데 스윙 생산 체제도 갖췄기 때문이다. 이런 경쟁력을 한층 강화하기 위해 최근에는 친환경 소재 개발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한솔제지 관계자는 “20세기 기적의 소재인 플라스틱의 장점은 유지하되 재활용성과 생분해성을 높인 친환경 대체제가 새로운 먹거리로 부상했다”고 전했다.
프로테고와 테라바스가 대표적이다. 프로테고는 산소·수분·냄새를 차단하는 고차단성 종이 포장재로서 식품, 의약품, 화장품, 생활용품 등의 포장재로 사용되는 플라스틱 필름이나 알루미늄 포일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종이류 분리배출을 통해 재활용이 가능하고 90%이상 생분해되는 게 강점이다. 미국 식품의약품안전처(FDA), 독일 연방위해평가원(BfR), 중국의 식품안정성(GB) 및 글로벌 재활용 UL 인증을 거쳐 안전성과 제품력을 인정받았다는 평가다.
테라바스는 플라스틱 계열 PE(폴리에틸렌) 코팅 대신 자체 개발한 수용성 코팅액을 사용한 종이용기다. 내수성과 내열성이 뛰어나 용기·컵·빨대 등 적용처를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대형 프랜차이즈, 패스트푸드, 편의점 등 식품 유통업계를 중심으로 다양한 공동 개발이 진행 중이다.
신소재 나노셀룰로오스도 빼놓을 수 없다. 나노셀룰로오스는 나무 등 식물에서 추출한 셀룰로오스 섬유를 나노미터(㎚, 1㎚=10억분의 1m) 크기로 쪼갠 천연 나노 소재다. 무게는 철의 5분의 1에 불과하지만 강도는 다섯 배 이상이다.
강철보다 단단하면서도 외부 작용에 따른 변화가 자유롭다. 한솔제지는 나노셀룰로오스 브랜드 ‘듀라클’을 앞세워 미용, 의료, 스포츠, 자동차, 화학 등 다양한 시장 개척에 힘을 쏟고 있다.
상황 3 B2B 시장의 한계
도전 3 소비자에게 한발 더
제지는 전통적으로 B2B(기업대기업) 사업으로 분류된다. 제지업체들의 마케팅 활동이 대형 대리점이나 실수요 업체 중심이었던 까닭이다. 한솔제지는 소비자에게 직접 다가가는 노력을 통해 B2C(기업대개인) 기업으로 변신도 꾀하고 있다. 제지업계 최초로 ‘라인프렌즈’ 캐릭터를 제품 포장에 활용한 복사용지 ‘한솔카피프리미엄’을 내놓은 게 좋은 예다. 제지업계 캐릭터 마케팅의 서막으로서 대중에게 한솔 브랜드를 알리는 데 적잖이 기여했다는 평가다.
팬시용지 제품의 패밀리 브랜드인 ‘인스퍼’도 마찬가지다. 인스퍼는 ‘좋은 영감을 주는 종이’라는 의미로 디자이너의 아이디어 시작에서부터 작품 완성까지 도움을 주는 브랜드가 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지난해엔 친환경 가상 전시관(www.hansolexhibition.com)도 열었다. 코로나19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로 소비자와 대면 소통이 제한됨에 따라 비대면 소통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이다.
테라바스, 프로테고, 듀라클 등 혁신적인 신제품을 온라인으로 체험할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도록을 후원하는 등 문화 마케팅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한솔제지 관계자는 “소비자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노력을 인정 받으며 2020~2021년 글로벌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인증업체인 에코바디스(EcoVadis)로부터 골드 등급을 획득하고 국내에선 한국능률협회로부터 19년 연속 제지부문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으로 선정될 수 있었다”며 “앞으로도 차별화된 경쟁력을 앞세워 고객과 함께 지속 성장하는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겠다”고 강조했다.
■ 마케터를 위한 포인트
한솔제지는 1968년 처음 종이 생산을 시작한 이래 전 세계 120개 나라에 생산 제품의 절반 이상을 수출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미국, 일본, 유럽뿐 아니라 모리셔스, 사이프러스 등 세계 곳곳에서 57년 업력의 한솔제지 종이를 만날 수 있다.시장 변화를 선제적으로 예측하고 변화에 맞게 사업 포트폴리오를 변신시키며 지속 가능한 기업으로 도약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다. 국내에서 유일한 종합제지회사로서 경쟁력을 한층 강화하는 한편 나노셀룰로오스 같은 신소재 시장 개척을 주도하며 친환경 소재기업으로 또 한 차례 변화를 모색한다는 각오다.
한솔제지 관계자는 “제지업계는 일반적으로 업종 내 한 분야에 치중된 사업구조를 가진 경우가 많다”며 “상호보완적인 다각화된 사업구조가 뒷받침된 강한 체력이 한솔제지만의 차별화된 강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선제적인 투자를 통해 성장 동력을 꾸준히 확충해 지속 성장할 수 있는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나겠다”고 강조했다.
김병근 기자
■ 전문가 코멘트
□ 천성용 단국대 교수
패키지(package)의 기본적 목표는 제품을 포장하거나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제품 간 품질 차이가 줄어들고 경쟁이 심화되면서 많은 기업들이 제품 패키지를 차별화의 수단으로 활용한다.
좋은 패키지는 무엇보다 소비자의 주목을 끌기에 유리하다. 슈퍼마켓 선반에 위치한 수많은 제품 중에서 ‘눈에 띄는 패키지’만으로 소비자의 발길을 멈추게 할 수 있다. 패키지가 소비자의 선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Best & Last Chance”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또한 최근 온라인 배송이 급증하면서 택배 상자와 같은 패키지가 일종의 미디어로 활용되기도 한다. 마치 기업이 TV 광고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처럼 택배 상자 역시 움직이는 광고판이 된다. 택배 상자의 독특한 디자인과 라벨, 문구가 브랜드 포지셔닝을 강화하는 좋은 도구가 된다.
최근에는 패키지를 환경 이슈와 결합하여 새로운 차별화의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푸마는 운동화 포장 박스 생산에 필요한 나무, 전기, 물을 절약하기 위해 “Clever Little Bag” 캠페인을 계획하였고, 이를 통해 경쟁사와 차별화를 시도한 적이 있다. 푸마가 단지 멋진 운동화를 만드는 것뿐만이 아니라 패키지를 통해 얼마나 지구와 환경을 생각하는 기업인지 강조한 것이다.
최근 온라인 쇼핑, 배달, 테이크아웃 등이 활성화되면서 각종 소재 및 포장 관련 제품에 대한 친환경 수요 역시 증가하고 있다. 종이 역시 마찬가지이다. 만약 기업의 생산 과정에서 종이를 더 절약하거나, 지구의 환경 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 종이 소재가 활용된다면 이 역시 좋은 차별화 수단이 될 수 있다.
한솔제지는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예상하고 선제적인 대응을 시도하였다. 영수증과 라벨 등에 주로 사용되는 감열지 시장 성장성을 내다보고 대대적인 투자에 나섰고, 프로테고와 테라바스 등 친환경 소재 개발에도 힘썼다. 국내 주요 프랜차이즈 업체에 “한솔제지에서 생산한 비스페놀A Free(프리)” 문구가 적힌 친환경 영수증을 공급하거나, 커피전문점에 친환경 종이컵을 제공하는 것 역시 인상적이다.
다만, 이 같은 노력을 최종 소비자에게 더욱 적극적으로 알리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지난 CMO인사이트에서 소개된 LG화학의 ‘렛제로 캠페인’ 사례처럼 B2B기업이지만 B2C 고객에게 적극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할 필요가 있다. 한솔제지의 친환경성이 더 확실히 인식된다면 더 많은 최종 소비자들이 한솔제지의 소재가 사용된 제품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이를 통해 많은 B2B 기업들이 한솔제지를 스스로 찾게 만드는 선순환을 기대할 수 있다.
□ 최현자 서울대 교수
코로나19는 많은 사람들이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실감하게 만들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탓에 배달음식 수요가 폭증하면서 플라스틱 등 배달음식 관련 쓰레기를 직접 눈으로 자주 확인했다. 이렇게 많은 쓰레기를 어떻게 감당할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친환경 이슈는 코로나19 이전부터 제기됐지만 팬데믹을 겪으면서 더 주목받게 됐다. 이런 흐름 탓에 친환경 슬로건을 내세우는 기업들이 많아졌다. 조금 과장하자면 친환경을 외치지 않는 기업이 없을 정도다.
모두가 친환경을 주장하는 ‘착한 기업’을 표방하다 보니 그들 중에서 어떤 기업이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지가 관심이다. 예전에는 환경을 생각하는 윤리적 기업인지 여부가 소비자 선택을 가르는 기준이었다. 하지만 많은 기업들이 저마다 윤리적 기업임을 주장하는 상황에서는 다른 기준이 필요하다.
친환경에 대한 ‘진정성’과 친환경을 위한 ‘능력’을 구분해야 한다는 연구들이 등장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한편으로는 어느 기업이 겉으로만 친환경을 외치는 게 아니라 진정성을 가졌는지를 눈여겨 보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기업이 친환경을 위한 능력이 있는지를 따진다는 것이다.
친환경 세탁세제로 소비자의 구매의도를 분석한 최근 연구에 따르면, 친환경 ‘능력’이 소비자의 평가를 가르는 주요한 변수로 나타났다. 이 연구에서 소비자들은 친환경에 기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여부를 구매 선택의 최우선 기준으로 삼았다.
케이스스터디 기사처럼 한솔제지는 친환경 소재 개발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프로테고와 테라바스 같은 소재가 그 결과물이다. B2B 기업의 특성상 이런 결과물이 소비자들에게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하지만 친환경 소재를 만들어내는 ‘능력’은 자연스럽게 소비자들의 좋은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이 회사가 만든 친환경 가상 전시관 등이 그 시기를 앞당길 수 있다.
친환경이 대세인 시대다. 기업은 ‘진정성’에 더해 ‘능력’을 갖추는데 집중해야 한다. 그 능력을 반드시 자체적으로 개발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소비재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기업이 한솔제지 같은 기업의 친환경 소재를 적극적으로 사용한다면 그것도 소비자들에게 어필하는 ‘능력’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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