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금 주기 싫어 9년 전 실수 배상하라는 사장 [곽용희의 인사노무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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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자들이 직장에서 업무 중 실수를 저지르는 경우는 종종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그 실수가 회사에 실질적이거나 금전적인 피해로 연결되는 경우 사안이 심각해 진다. 특히 금융권이나 돈을 만지는 업무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이 경우 회사에서 손해배상 소송을 운운하거나 직원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경우 참고할만한 법원 판결이 최근 나왔다.
졸지에 해고된 B는 퇴직금을 요구했다. B의 월급은 100만원 정도라 13년 가까이 일했어도 퇴직금은 894만원 수준이었다. 갑자기 해고 당한 탓에 받아야 할 1개월치 해고예고수당 100만원을 합해도 1000만원이 안 됐다.
하지만 회사 대표는 이마저도 지급을 거절하고 되레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9년 전 B가 교통법규를 위반해 교통사고를 내 차량을 폐차했으므로, 차량가액 1500만원을 보상하라는 소송이다. B씨 측은 "고의나 중대한 과실이 아닌 흔한 사고였으며, 해당 차량은 이미 차령 제한 규정에 따른 11년을 넘어 운송 업무에 사용할 수 없었다"고 항변했다.법원은 B씨의 손을 들어줬다. 최 판사는 "A사는 묵시적으로 B에 대한 책임을 면제해 준 것"이라며 "그렇지 않더라도 손해배상 청구를 하는 것은 신의칙상 허용되지 않는다"라고 판시했다. 무려 9년 동안 권리 행사를 하지 않다가 분쟁이 발생하자 손해배상을 청구한 점, B에게 사고에 대해 큰 과실이 없던 점, 사고를 입은 차량이 규정 차령을 넘어선 점 등을 고려해 재판부가 B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보인다.
강민호 법률구조공단 변호사는 “근로자가 업무수행 중 사용자에게 피해를 줄 경우, 신의칙에 근거해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할 수 있다는 법리가 다시 한번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원칙적으로 직원이 불법행위로 손해를 끼치거나(민법 750조), 직무를 제대로 하지 않는 채무불이행을 한 경우(민법 390조)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하다. 직원이 외부 고객에게 직접 잘못을 저질렀다면 회사가 해당 금액을 손해배상 해준 후 직원에게 '구상권'을 청구할 수 있다.
다만 직원의 업무는 기본적으로 회사가 정한 절차에 따라 진행한다. 업무 범위 안에서 일을 하다 실수를 했다면, 누가 봐도 명백한 고의이거나 중대한 과실이 아닌한 직원이 손해를 전부 부담하는 일은 거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손해배상 규모도 상당 부분 제한될 여지가 크다. 물론 이런 업무 범위를 벗어난 횡령이나 배임 등 범죄에 해당한다면 제한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직원이 자신의 업무를 상사와 상의하는 등 결재시스템을 갖출 필요가 있는 것도 이런 점 때문이다.
대법원도 “근로자의 업무내용과 근로조건 및 근무태도 등 제반 사정에 비춰 손해의 공평한 분담이라는 견지에서 신의칙상 상당하다고 인정되는 한도 내에서만 손해배상 청구나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다”라고 본다(2016다271226 판결).
심지어 과실이 중대해도 배상금을 상당 부분 줄일 수 있다. 업무가 이뤄진 배경이나 정황, 근로자의 업무량, 근로조건, 회사의 통제 시스템 구축 등을 고려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증권사 직원이 파생상품 종목을 잘못 입력하는 주문 실수로 269억원의 손해를 끼쳤다가 3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를 당한 사건에서, 하급심 판결(2011가합14572)은 직원의 과실을 인정하면서도 "회사가 위험관리 통제체계를 구축하지 않았다"며 직원 책임을 50%까지 감축한 사례가 있다. 다만 이 직원에 대한 해고는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돈을 만지는 업무의 경우 직원이 업무 발생 시 손해배상 전액을 부담한다는 계약서나 각서를 작성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는 효력이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판례는 직원이 불법행위로 사용자가 입은 손해 전부를 변제한다는 각서를 썼다해도 "그와 같은 각서 때문에 공평의 견지에서 신의칙상 상당하다고 인정되는 한도를 넘는 부분에 대한 손해배상까지 해야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판시한 바 있다.
그렇다면 인사담당자 입장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업무 처리 과정에서 담당, 검토, 결재라인을 정하거나 확인시스템을 구축해 해당 직원의 업무처리를 이중삼중 확인하는 게 필요하다. 회사 입장에서는 업무상 과실을 보상해 주는 보험에 가입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그 외에 만약 손해가 발생했다는 이유로 직원의 임금에서 임의로 월급을 공제(상계)하는 경우에는 임금체불 등의 책임을 지게 될 수 있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퇴직금 달라고? 9년 전에 사고낸 거 손해배상 해"
직원에게 돈을 빌린 사업주가 돈을 갚으라는 요구를 받자 직원을 해고하고, 퇴직금도 주기 싫어서 9년 전 직원의 실수를 들먹이며 손해배상하라는 소송을 냈지만 법원에서 패소판결을 받았다. 12일 법률구조공단에 따르면 전주지방법원 단독 최형철 판사는 최근 운송업체 A사가 퇴직한 직원 B를 상대로 청구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기각했다.B는 12년 넘게 운송업체 A사에서 통근버스 기사로 근무해오다가 2021년 해고됐다. 그 배경엔 금전 문제가 있었다. B는 2014년 회사 대표에 2500만원을 연 12%의 이자로 빌려줬지만, 회사가 갚지 않자 법원에 재산명시신청을 했고 이것이 사장의 심기를 거스른 것이다.졸지에 해고된 B는 퇴직금을 요구했다. B의 월급은 100만원 정도라 13년 가까이 일했어도 퇴직금은 894만원 수준이었다. 갑자기 해고 당한 탓에 받아야 할 1개월치 해고예고수당 100만원을 합해도 1000만원이 안 됐다.
하지만 회사 대표는 이마저도 지급을 거절하고 되레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9년 전 B가 교통법규를 위반해 교통사고를 내 차량을 폐차했으므로, 차량가액 1500만원을 보상하라는 소송이다. B씨 측은 "고의나 중대한 과실이 아닌 흔한 사고였으며, 해당 차량은 이미 차령 제한 규정에 따른 11년을 넘어 운송 업무에 사용할 수 없었다"고 항변했다.법원은 B씨의 손을 들어줬다. 최 판사는 "A사는 묵시적으로 B에 대한 책임을 면제해 준 것"이라며 "그렇지 않더라도 손해배상 청구를 하는 것은 신의칙상 허용되지 않는다"라고 판시했다. 무려 9년 동안 권리 행사를 하지 않다가 분쟁이 발생하자 손해배상을 청구한 점, B에게 사고에 대해 큰 과실이 없던 점, 사고를 입은 차량이 규정 차령을 넘어선 점 등을 고려해 재판부가 B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보인다.
강민호 법률구조공단 변호사는 “근로자가 업무수행 중 사용자에게 피해를 줄 경우, 신의칙에 근거해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할 수 있다는 법리가 다시 한번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직원 실수, 어디까지 손해배상 책임 물을 수 있을까
이 외에도 돈을 만지는 업무에서 익숙지 않은 직원이 실수를 저지르는 일도 종종 있다. 특히 업무상 프로세스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영세기업일수록 이런 일이 잦다.이 경우 회사는 어디까지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을까.원칙적으로 직원이 불법행위로 손해를 끼치거나(민법 750조), 직무를 제대로 하지 않는 채무불이행을 한 경우(민법 390조)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하다. 직원이 외부 고객에게 직접 잘못을 저질렀다면 회사가 해당 금액을 손해배상 해준 후 직원에게 '구상권'을 청구할 수 있다.
다만 직원의 업무는 기본적으로 회사가 정한 절차에 따라 진행한다. 업무 범위 안에서 일을 하다 실수를 했다면, 누가 봐도 명백한 고의이거나 중대한 과실이 아닌한 직원이 손해를 전부 부담하는 일은 거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손해배상 규모도 상당 부분 제한될 여지가 크다. 물론 이런 업무 범위를 벗어난 횡령이나 배임 등 범죄에 해당한다면 제한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직원이 자신의 업무를 상사와 상의하는 등 결재시스템을 갖출 필요가 있는 것도 이런 점 때문이다.
대법원도 “근로자의 업무내용과 근로조건 및 근무태도 등 제반 사정에 비춰 손해의 공평한 분담이라는 견지에서 신의칙상 상당하다고 인정되는 한도 내에서만 손해배상 청구나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다”라고 본다(2016다271226 판결).
심지어 과실이 중대해도 배상금을 상당 부분 줄일 수 있다. 업무가 이뤄진 배경이나 정황, 근로자의 업무량, 근로조건, 회사의 통제 시스템 구축 등을 고려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증권사 직원이 파생상품 종목을 잘못 입력하는 주문 실수로 269억원의 손해를 끼쳤다가 3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를 당한 사건에서, 하급심 판결(2011가합14572)은 직원의 과실을 인정하면서도 "회사가 위험관리 통제체계를 구축하지 않았다"며 직원 책임을 50%까지 감축한 사례가 있다. 다만 이 직원에 대한 해고는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돈을 만지는 업무의 경우 직원이 업무 발생 시 손해배상 전액을 부담한다는 계약서나 각서를 작성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는 효력이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판례는 직원이 불법행위로 사용자가 입은 손해 전부를 변제한다는 각서를 썼다해도 "그와 같은 각서 때문에 공평의 견지에서 신의칙상 상당하다고 인정되는 한도를 넘는 부분에 대한 손해배상까지 해야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판시한 바 있다.
그렇다면 인사담당자 입장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업무 처리 과정에서 담당, 검토, 결재라인을 정하거나 확인시스템을 구축해 해당 직원의 업무처리를 이중삼중 확인하는 게 필요하다. 회사 입장에서는 업무상 과실을 보상해 주는 보험에 가입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그 외에 만약 손해가 발생했다는 이유로 직원의 임금에서 임의로 월급을 공제(상계)하는 경우에는 임금체불 등의 책임을 지게 될 수 있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