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초밥집?…"세계서 인스타에 가장 많이 등장" 내건 가게 [정영효의 일본산업 분석]

이자카야 사라지는 日서 뜨는 회전초밥
日 2위 구라스시 하라주쿠점 화제
교외 입점 공식 깨고 속속 도심 진출
소셜 디스턴스 최적화 업태에 차별화 한몫
고사위기 이자카야 전문점의 초밥점 진출도
작년 12월9일 일본의 최신 유행을 선도하는 도쿄 하라주쿠에 ‘세계에서 인스타그램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가게’를 콘셉트로 내건 회전초밥집이 등장했다. 일본 2위 회전초밥 프랜차이즈인 구라스시가 하라주쿠점을 연 것이다.

코로나19 장기화로 극심한 불황을 겪고 있는 일본 외식업계는 구라스시의 확장을 ‘사건’으로 평가했다. 2가지 점에서 기존 회전초밥 체인의 공식을 깼기 때문이다.
첫째는 입지다. 보통 회전초밥집은 임대료가 싸고 주차공간이 넓은 교외에 들어선다. 그런데 구라스시는 도쿄 도심 한복판에 떡 하니 매장을 열었다. 구라스시 뿐 아니라 스시로 등 일본 대형 회전초밥 프랜차이즈들이 잇따라 도심에 매장을 내고 도쿄 중심가로 속속 진출하고 있다.

또 하나는 주고객이다. 일반적으로 회전초밥집은 가족 단위 고객을 타깃으로 삼는다. 구라스시 하라주쿠점은 위치에서 알 수 있듯 젊은 여성을 주고객으로 했다.
지난달 16일 구라스시 본사의 취재허가를 얻어 찾은 하라주쿠점은 언뜻 봐선 초밥집 같지 않았다. 하라주쿠의 명물인 크레페 가게를 더 닮았다. 실제로 구라스시는 하라주쿠점 한정 '크레페 스시(380엔)'를 내놓고 있다. 로봇이 자동으로 크레페를 굽고 까만색과 핑크색 T셔츠 유니폼을 착용한 점원이 고객 앞에서 초밥을 만드는 '크레페 포장마차'를 업계 최초로 도입했다.
구라스시는 '세계에서 인스타그램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가게'를 하라주쿠점의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인테리어는 물론 하라주쿠의 거리를 보면서 식사할 수 있는 카운터나 테라스석도 마련해 '인스타갬성'을 돋게 했다.
고사다 히로유키 구라스시 매니저는 "하라주쿠점은 일본문화 발신의 글로벌 기반점으로서 2021년 12월 오픈했다. 일본의 전통문화와 도쿄의 팝 컬처의 융합이 인테리어 콘셉트다."라고 설명했다.
고사위기를 맞고 있는 일본 외식업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성장하는 영역이 프랜차이즈 회전초밥이다. 일본 프랜차이즈 회전초밥은 스시로(운영사 푸드앤라이프컴퍼니즈)와 구라스시, 하마스시(규동 체인 스키야 등을 보유한 젠쇼홀딩스 계열), 갓파스시(운영사 갓파크리에이트) 등 4개 회사가 '빅4'를 형성하고 있다. 모두 도쿄증시 상장사다.
업계 1위 스시로의 매출은 2020년 2049억엔(약 2조1474억원), 2021년 2408억엔으로 2년 연속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올해는 3000억엔을 넘을 전망이다. 2020년 65억엔이었던 순이익도 두배 이상 늘었다.
2위 구라스시의 매출도 2020년 1358억엔, 2021년 1476억엔으로 최고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2020년 적자였지만 올해는 29억엔의 순이익을 올릴 전망이다. 하마스시, 갓파스시까지 포함해 4대 프랜차이츠 초밥 모두 코로나19 이전보다 주가가 크게 올랐다.
세계 최초의 회전초밥집은 1958년 오사카에 문을 연 겐로쿠스시(元禄寿司)다. 기업형 회전초밥은 갓파스시가 1979년 나가노현에서 처음 시작했다. ‘1접시 전부 100엔’ 마케팅으로 일본 전역에서 인기를 끌었다.
에도시대에 저렴한 패스트푸드로 시작된 초밥(니기리스시)이 지금은 1인분에 4만엔(약 42만원)이 넘는 곳이 있을 정도로 고급 일본 음식문화를 상징하는 존재가 됐다. 그런 초밥 2관(2점)이 놓인 1접시가 100엔, 우리돈으로 1000원이 조금 넘는다는 건 엄청난 파격이었다.

일본 물가가 얼마나 안올랐는지 1979년 1접시 100엔으로 시작한 가격이 아직도 참치, 연어, 계란말이 같은 인기 메뉴는 100엔(소비세 포함 110엔)을 유지하고 있다. 임대료가 비싼 도심 점포도 120엔(소비세 포함 132엔)으로 10엔 더 비쌀 뿐이다.
일본에서 100엔인 초밥이 해외에서는 훨씬 비싸진다. 한국은 160엔(1700원), 미국은 360엔(3.15달러), 중국은 267엔(15위안)이다. 해외의 수익성이 더 높다보니 회전초밥 프랜차이즈들은 해외 진출에 적극적이다.

구라스시는 미국 25곳, 대만 29곳등 54곳의 해외점포를 가지고 있다. 미국과 대만 현지법인 모두 현지 증시에 별도로 상장했다. 스시로와 갓파스시는 한국에도 체인점이 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 시대에 회전초밥집이 더 잘 되는 이유를 ‘초밥은 초밥집에서만 먹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초밥이 일본의 대표음식이지만 일본인도 집에서 만들어 먹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백화점과 슈퍼마켓에 다양한 포장 초밥을 팔지만 일본인들에게 초밥은 초밥집에서 사먹는 음식이라는 이미지가 뿌리깊다는 설명이다.
따로따로 앉아서 한 접시씩 나오는 요리를 바로바로 먹는 업태가 ‘사회적 거리두기(소셜 디스턴스)’의 시대에 들어맞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회전초밥집이 코로나의 직격탄을 피할 수 있었던 이유가 소셜 디스턴스에 최적화된 업태 때문만은 아니다. 4대 프랜차이즈 모두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차별화에 목숨을 건다. 스시로는 집적회로(IC)칩을 초밥 접시에 심어 빅데이터 분석을 한다. 구라스시는 우동과 라면, 닭튀김, 디저트 등 초밥 이외의 메뉴가 다양하다.
어린 자녀가 있는 가족 단위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다. 요괴워치, 귀멸의 칼날 등 인기 애니메이션과의 협업상품을 내놓기도 했다. 3위 하마스시는 평일 초밥 1접시 가격을 90엔까지 내리기도 한다.

코로나19 대응 전략도 한층 진화했다. 가게에 들어와서 계산을 하고 나갈 때까지 종업원과 한 번도 마주치지 않는게 가능하다.
구라스시는 각자의 핸드폰으로 매장의 터치패널 메뉴판을 사용하는 것과 똑같이 주문할 수 있는 스마트 주문 시스템을 도입했다. 앱을 다운로드할 필요없이 QR코드만 찍으면 된다. 4명이 방문한다면 제각각 4대의 스마트폰으로 주문할 수 있다.

불특정다수가 사용하는 터치패널을 꺼리는 고객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연인끼리도 더치페이를 하는 일본에서는 특히 유용한 주문방식이다.
고객이 다 먹은 접시를 테이블 옆의 틈으로 집어넣으면 흐르는 물로 주방까지 옮기는 워터슬라이스 방식도 개발했다. 테이블마다 얼마치를 먹었는지까지 자동으로 계산된다. 접시 5장을 넣으면 게임이 시작되고 맞추면 테이블 위의 구멍을 통해 장난감이 나온다. 어린이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마케팅 전략이다.

직원이 일일이 접시를 세어 가격표를 계산하고, 치우는 시간과 수고를 덜어줬다. 고객은 종업원과 접촉을 피할 수 있고 테이블에 접시를 수북히 쌓아두지 않아도 된다.
셀프 계산 시스템은 기본이다. 앞뒤 테이블의 손님들이 보이지 않도록 칸막이의 높이를 높이고, 아크릴판이 주는 딱딱함을 없애기 위해 일본 전통의 천으로 프라이빗 공간을 보장한 것 등도 코로나시대를 맞아 진화한 회전초밥집의 고객응대법이다.
쓰지 아키히로 구라스시 매니저는 "회전초밥집이 싸고 맛있는 초밥을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공간인 것은 당연해 졌다. 이제는 고객이 가게에 오고 싶게 만드는 즐거움까지 갖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세계에서 인스타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초밥집을 콘셉트로 한 하라주쿠점 역시 이자카야 프랜차이즈의 눈물겨운 차별화 전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현장이다.

얼마나 경쟁이 심한지 사장이 직접 상대방의 매출 정보를 훔치는 일까지 있었다. 하마스시는 작년 6월 다나베 고키 갓파스시 사장이 자사의 매출 데이터 등을 부정입수했다며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혐의로 고소했다.
다나베 사장은 7개월 전 경쟁사인 하마스시의 모회사인 젠쇼홀딩스에서 갓파스시로 이적한 인물인데 전 직장 동료로부터 내부 정보를 몰래 입수해 왔다는 것이다.

코로나 이후 경쟁업체들이 급성장하는 가운데 기업형 회전초밥의 원조인 갓파스시만 실적이 지지 부진하다. 이 때문에 2014년 이후 거의 매년 사장이 교체되고 있다. 다나카 사장도 어떻게든 결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친정을 배신한게 아닐까 업계 사람들은 추측하고 있다.

초밥의 인기에 다른 외식업체들도 군침을 흘리고 있다. 일본 최대 이자카야 프랜차이즈 가운데 하나인 와타미는 12월9일 도쿄 긴시초에 1호점을 내고 초밥 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와타미는 초밥 전문점을 5년내 100호점까지 늘릴 계획이다.
와타나베 미키 와타미 사장은 “회전초밥 시장의 규모는 7000억엔을 넘는다”며 “회전초밥 고객을 3번에 1번만 와타미의 초밥집으로 모셔와도 2000억엔의 시장을 창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와타미가 초밥시장을 넘보는 이유가 있다. 이자카야는 코로나19의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외식업이다.

도쿄상공리서치에 따르면 14대 프랜차이즈 이자카야의 점포수는 코로나 직전인 2019년 12월 7200개에서 2021년 12월 5844개로 18.9% 줄었다. 휴업 명령, 영업시간 규제 등으로 생존이 어려워지자 이자카야 체인들은 닭꼬치 전문점, 야키니쿠(일본식 고기구이) 전문점, 햄버거 프랜차이즈로 변신을 시도했다.
와타미는 이자카야가 다양한 해산물을 전문적으로 취급하고, 매장과 종업원의 운영 노하우가 풍부하다는 점에 착안했다. 기존의 자산을 결합하면 초밥 전문점으로 변신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자카야의 객단가가 2500엔인 반면 초밥집은 3000엔이라는 점도 와타미가 초밥 시장을 눈독 들이는 이유다.
회전 초밥 프랜차이즈들은 이자카야 운영 노하우만으로 ‘1접시 100엔’의 가격 경쟁력을 갖추기는 어렵다고 예상한다, 와타미도 처음에는 회전초밥집을 검토했지만 컨베이어 벨트 대신 종업원이 직접 초밥을 나르는 일반 초밥 전문점으로 업태를 바꿨다.살아남기 위해 초밥 시장에 뛰어든 이자카야 프랜차이즈와 100엔 짜리 초밥 한 접시를 놓고 극한의 고객유치 경쟁을 벌이는 4대 회전초밥 전문점의 승부가 시작됐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