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침공] 러 '생방송 시위' 언론인 "푸틴위한 선전 부끄러워"

국영TV 앵커 등 뒤에서 '전쟁 반대' 피켓 들어…33만원 벌금형
젤렌스키 "감사"…푸틴 정적 나발니 측 "벌금 대신 내주겠다"
러시아 TV 생방송 도중 우크라이나 침공에 반대하는 돌발 시위를 벌인 언론인이 그간 침묵을 지켰던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웠다며 시위를 결심한 이유를 밝혔다.15일(현지시간) dpa통신·월스트리트저널(WSJ)·가디언 등에 따르면 전날 러시아 국영 채널1 TV 편집자인 마리아 오브샤니코바(44)는 시위 직후 공개한 영상에서 수년간 크렘린궁의 선전을 위해 일해오면서 침묵을 지켰던 것이 부끄럽다고 고백했다.

그는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범죄"라며 "우리 힘으로만 이를(전쟁을) 멈출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시위하러 가자"면서 "겁먹지 마라. 그들은 우리를 전부 체포할 수 없다"고 촉구했다.그는 특히 "러시아인을 좀비로 만드는 것을 묵인했던 게 부끄럽다"면서 "우리는 이런 비인도적 정권을 목도하면서도 잠자코 있었다"고 돌아봤다.

이어 그는 자신의 아버지는 우크라이나인이고 어머니는 러시아인이라고 덧붙였다.

오브샤니코바는 전날 시위 직후 체포돼 연락이 닿지 않았고, 이튿날 저녁에서야 법정에 모습을 드러냈다.오브샤니코바는 14시간 넘게 심문을 받은 뒤 러시아 시위법을 위반한 혐의로 3만루블(약 33만원)의 벌금형을 받고 풀려났다.

이날 법원 밖으로 나온 오브샤니코바는 "내 인생에서 매우 힘든 날들이었다"며 "거의 이틀간 잠을 못잤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가족 등 주변 사람과 연락하거나 법적 도움을 받는 게 차단됐다고도 주장했다.다만 이 벌금형은 생방송 시위 때문이 아니라 후속 영상에서 당국의 사전 허가 없이 반전 움직임을 촉구한 데 따른 것이라고 변호인 측이 설명했다.
생방송 시위에 대한 혐의도 인정되면 처벌이 커질 가능성도 있다.

이날 타스통신은 러시아 연방수사위원회가 오브샤니코바가 러시아군에 대해 허위 정보를 유포했는지와 관련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변호인 측은 오브샤니코바에 대한 조사가 진행 중이라며 추가 기소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대로 사건이 마무리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러시아 인권단체 아고라 관계자는 "오브샤니코바를 상대로 형사사건이 개시될 위험성이 남아있지만 그가 오늘 벌금형을 받으면서 그럴 가능성은 급격히 낮아졌다"고 내다봤다.

앞서 오브샤니코바 사건에서 러시아 군에 관한 '가짜뉴스'를 퍼트리는 행위를 처벌하는 법이 적용되면 최고 징역 15년형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 바 있다.

러시아 언론은 우크라이나 침공을 '전쟁' 대신 '특수군사작전'으로 칭하고 있다.

오브샤니코바의 시위 이후 그를 지지하는 목소리가 잇따라 나왔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오브샤니코바와 진실을 전달하는 모든 러시아인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전날 러시아 야권 인사인 알렉세이 나발니의 보좌관은 트위터를 통해 오브샤니코바를 대신해 기꺼이 벌금을 내겠다며 지지의 뜻을 밝히기도 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대사관 보호나 망명 등을 통해 (오브샤니코바를) 보호하는 외교적 노력을 시작할 것"이라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이를 제안해보겠다고 밝혔다.

반면 러시아 크렘린궁의 드미트리 페스코프 대변인은 '훌리건' 같다고 폄하했다.오브샤니코바의 시위 이후 일부 언론인은 해당 방송사를 그만뒀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