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사용후핵연료, 원자력발전 가로막지 못한다

'효율적 관리' 선택 문제, 절차 합의 가능
EU 택소노미에 원전 포함 참고해야

이찬복 한국원자력학회 고급정책연구소장
기후변화를 완화하고, 국가 경제 및 에너지 안보에 기여하는 원자력의 역할을 인정하는 새 정부에 원자력계는 기대와 함께 책임감을 갖고 있다. 지난 2월 유럽연합(EU)은 기후변화를 완화하는 경제활동 분류체계인 택소노미에 원전을 포함시켰다. 원전을 택소노미에 포함하면서 2050년까지 사용후핵연료 처분시설을 운영할 계획을 수립할 것을 명시했다. 핀란드가 현재 사용후핵연료 지하처분시설을 건설하고 있고, 프랑스가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해 그 양을 줄이고 있는 현황을 고려해 다른 나라들도 책임감을 갖고 따르라는 것이다.

사실, 사용후핵연료 관리는 가능 불가능의 문제가 아니라 각 나라가 상황에 따라 언제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선택의 문제다. 사용후핵연료는 부피가 크지 않고,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방사능은 자연적으로 감소하는 특성이 있기에 원전보다 훨씬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 사용후핵연료 관리 과정에서 방사선으로 인해 인명이 손실된 사례는 없다.사용후핵연료 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1월 제2차 고준위방사성폐기물관리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2016년 발표한 기본계획에서 주민 의견을 보다 충분하게 수렴하는 절차를 추가했다. 기본계획은 사용후핵연료를 원전 부지에 임시 저장한 뒤, 중간저장시설로 이송해 일정 기간 저장한 다음, 지하 처분장에 처분하는 계획이다.

지난 30여 년 동안 여야가 정권 교체로 서로 바뀌었지만, 정부와 집권 여당은 사용후핵연료를 관리하기 위한 계획과 법안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다. 그동안의 정부 계획과 여야 법안 내용을 보면 사용후핵연료의 저장, 처분, 그리고 재활용 방안 연구 등 사용후핵연료 관리의 기술적 실행 방법은 모두 같다. 여야 법안의 차이점은 사용후핵연료 관리를 주관하는 기관의 정부 내 소속과 관리부지 선정을 위한 주민 의견 수렴 절차 등에 있다. 이는 사용후핵연료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절차와 관련된 것으로 협의를 통해 충분히 합의안을 도출할 수 있다.

EU가 원전을 택소노미에 포함시킨 과정을 참고하면 도움이 될 것 같다. EU는 유럽연합공동연구센터(JRC)에 원전의 위해성 평가를 의뢰했고, 상세보고서가 2021년 3월 발표됐다. 보고서는 “원전이 다른 전력생산원과 비교해 인체와 환경에 더 큰 피해를 준다는 과학적인 근거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그 후 EU는 건강, 환경 및 신흥 위험도에 대한 과학위원회(SCHEER)에 독립적으로 이 보고서를 평가하도록 의뢰해 2021년 6월 그 결과를 발표했다. 6개월간 여론과 다양한 그룹의 의견을 수렴한 뒤 올해 1월 원전을 택소노미에 포함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제기된 문제들에 대한 상세한 답변도 문서로 함께 발표했다. 즉, 과학기술 전문가들이 상세한 보고서를 발표하고, 독립적인 과학기술 전문가가 그 보고서를 평가하고, 일정 기간 여론을 경청한 뒤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동안 제기된 다양한 문제에 대한 답변을 법안과 함께 발표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사용후핵연료 관리도 이런 절차로 수행하면 효과적일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국민들이 계속 문제를 제기할 것이기에, 정부는 이에 바로 답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그리고 원자력발전이 국가에 기여하는 점을 고려해 부지 유치에 동의한 지역과 주민에게 충분한 지원을 해주는 것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