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아이오닉 5 ‘역발상’ 마케팅

한경 CMO Insight 「케이스스터디」

차량 보다 ‘전기차 전용 플랫폼’부터 알려
새 브랜드로 구매 욕구 자극
‘전기차=초대형 이동 배터리’ 장점 부각 마케팅
아이오닉 5(지난해 4월 출시)는 현대자동차에 의미가 남다른 차량이다. 미국이나 유럽 등에서 각종 상을 휩쓸어서가 아니다. 판매량이 다른 모델에 비해 압도적이어서도 아니다.

전기자동차 전용 플랫폼인 E-GMP를 기반으로 만든 현대차의 첫 차량이기 때문이다. 코나EV 등 예전에 나온 전기차는 모두 내연기관차 모델을 변형해 만들어졌다. 처음부터 전기차를 염두에 둔 설계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의미다.내연기관차 뼈대를 가지고 만든 전기차와 전용 플랫폼을 기반으로 만든 전기차는 차이가 크다. 전기차는 엔진과 변속기 등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이 공간을 탑승자가 활용하는 게 가능하지만, 내연기관차 뼈대를 기반으로 한 전기차는 그럴 수가 없다.

반대로 전기차에 필수적인 배터리 등을 장착할 곳을 미리 확보해두면 실내 공간이 줄어드는 일을 방지할 수 있다. 하나의 전용 플랫폼으로 여러 전기차를 생산할 수 있다면 장기적으로 개발 비용도 줄일 수 있다.

당장 아이오닉 5만 봐도 전장(차체 길이)은 4635㎜로 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싼타페와 비슷한 수준이다. 하지만 내부 공간 규모를 결정하는 휠베이스(앞뒤 바퀴 축 사이 간격)는 3000㎜로 대형 SUV 팰리세이드(2900㎜)보다 길다. 전용 플랫폼 전기차는 차량의 전력을 빼서 쓰는 것도 가능하다. 배터리 성능이 더 발전하면 차 안을 각종 가전제품이 있는 사무실로 활용하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는 의미다.

문제는 이러한 장점을 소비자들에게 설명하는 게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아이오닉 5와 코나EV의 차이점을 한 마디로 설명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아이오닉 5를 출시하면서 전기차 전용 플랫폼의 강점을 아무리 소개해도 결국 소비자들은 디자인이나 차량 사양에만 눈을 돌릴 가능성이 컸다.

현대차 마케팅 담당자들이 아이오닉 5가 출시되기 2~3년 전부터 고민에 빠진 것도 이 때문이다. 현대차의 선택은 ‘역발상’이었다. 차량보다 전용 플랫폼 전기차 자체에 대해 알리는 데 집중하자는 전략이었다.

상황 1 전기차 전용 플랫폼 낮은 인지도
도전 1 전용 플랫폼부터 알려라

현대차는 처음 전용 플랫폼 개발을 공식적으로 언급한 2017년 이후 꾸준히 이에 대한 설명을 해왔다. 2019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19’에서도 전용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전기차의 개념을 소개했다.

E-GMP라는 이름이 처음 공개된 것도 이때다. 아이오닉 5라는 차량 이름이 공개되기 2년 전의 일이다.당시 현대차는 E-GMP를 활용하면 궁극적으로 차량을 소비자가 원하는 대로 설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좌석의 위치나 개수를 조정하고 소형가전과 사무기기 등을 맞춤형으로 적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지금 양산되는 차에 바로 적용하기는 어려운 기술이지만, 전기차 전용 플랫폼의 강점을 알리는 데는 성공적이었다는 게 업계 평가다.

현대차는 약 2년 뒤인 2020년 12월 E-GMP의 구체적인 특성 및 사양을 공개했다. 역시 아이오닉 5가 출시되기 전의 일이다. 초고속충전 시스템이 적용된다는 사실이 공식적으로 밝혀진 것도 이때다.

800볼트(V) 고전압 충전을 활용하면 18분 만에 배터리 80%를 충전할 수 있는 기술이다. 1회 충전 시 주행거리는 500㎞ 안팎이고, 초고속충전을 활용하면 5분만 충전해도 100㎞를 주행할 수 있다.

현대차는 무선 충전 기술을 활용하겠다는 계획도 이때 발표했다. 무선충전기가 깔린 주차 공간에 차를 세워두면 자동으로 배터리가 충전되는 방식이다. 자동차에서 전력을 빼 쓸 수 있는 V2L(vehicle to load) 기능과 E-GMP를 기반으로 한 고성능 전기차 출시계획도 함께 공개됐다.

현대차가 차량인 아이오닉 5보다 이 차에 적용된 플랫폼인 E-GMP를 먼저 소개한 것은 당시만 해도 현대차 외 다른 자동차 회사들이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제대로 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테슬라 등 전기차만 만드는 회사를 제외하면 당시 대부분 기존 내연기관차를 기반으로 한 전기차만 내놓았다.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아이오닉 5 외 현대차그룹의 다른 브랜드가 내놓은 전용 플랫폼 전기차(기아 EV6, 제네시스 GV60 등)의 강점을 함께 알리는 효과를 거뒀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상황 2 전용 플랫폼 전기차 관심 부족
도전 2 새 브랜드를 만들어라

현대차는 E-GMP를 집중적으로 소개했지만, 그걸로 모든 게 해결되지는 않았다. 소비자에게 전기차 전용 플랫폼은 당장 와닿는 제품이 아니었다.

전용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전기차와 기존 전기차의 차이점을 이해한다고 해서 전용 플랫폼 전기차를 구매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무조건 이어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현대차는 이 간극을 전용 브랜드로 해결하기로 결정했다. ‘아이오닉(IONIQ)’ 브랜드가 태어난 배경이다.

현대차는 2020년 8월 E-GMP를 적용해 생산하는 차량 이름은 ‘아이오닉+숫자’ 체계로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아이오닉은 전기적 힘으로 에너지를 생성하는 ‘이온’과 현대차의 독창성을 뜻하는 ‘유니크’를 조합한 단어다. 아이오닉 1부터 아이오닉 9까지 다양한 이름의 차량을 내놓을 수 있다.

당장 아이오닉 5, 아이오닉 6, 아이오닉 7을 차례로 출시하겠다고 밝히면서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차량 이름에 일관성을 부여해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고, 차량 이름만 들어도 전용 플랫폼 전기차라는 사실을 알 수 있게 한다는 게 현대차의 전략이었다.

문자와 숫자를 결합한 ‘알파뉴메릭’ 체계를 도입해 글로벌 소비자가 직관적으로 차량을 이해할 수 있게 한 것도 특징이다. BMW를 비롯한 다수의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들이 이러한 차명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아이오닉 브랜드의 도입은 2016년 현대차그룹이 처음 내놓은 친환경 전용 자동차 모델인 아이오닉의 철학을 계승한다는 의미도 있다.

현대차는 “친환경차 시장에 본격 진출하면서 내놓은 아이오닉이 이젠 차세대 전기차의 대표 브랜드로 격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차는 2016년 제네바모터쇼에서 ‘이동의 자유로움’이라는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모빌리티 혁신 연구 활동을 시작하며, 그 활동의 이름을 ‘프로젝트 아이오닉’이라고 정했다고 발표했다.

현대차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모빌리티와 삶의 결합 △다양한 라이프스타일 충족 △전통적 모빌리티 제약 극복 등을 목표로 다양한 연구를 실행했고, 그 결과물로 같은 해 친환경차 전용 모델을 내놨다. 하이브리드, 플러그인하이브리드, 전기차 등을 모두 아이오닉이라는 이름으로 출시한 것이다.

현대차는 아이오닉 브랜드를 국내외 소비자에게 알리기 위해 영국 관광명소인 런던아이에서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한동안 운영이 중단됐던 런던아이를 회전시키고, 런던아이의 바퀴에 일부 장치를 더해 IONIQ의 ‘Q’를 시각화했다.

현대차는 “멈춰진 세상을 아이오닉이 다시 움직이게 한다는 의미를 담은 이벤트”라고 설명했다.

상황 3 전용 플랫폼 전기차 구매 망설임
도전 3 ‘전기차=초대형 이동 배터리’

현대차는 전용 플랫폼 전기차가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을 수 있도록 하나의 전략을 더 쓴다. 바로 기존 내연기관차에서는 불가능했던 V2L 기능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것이다. 차량 내 전력으로 외부로 끌어다 쓰는 기능이다.

대용량 배터리가 들어가는 전기차의 특성을 활용하면 언제 어디서나 노트북, 전기 포트, 전기밥솥, 전기 그릴 등 일반 가정용 전자기기를 차에 꽂아 쓸 수 있다.

아이오닉 5에는 차량 외부와 내부(선택사양)에 코드를 꽂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이 차량 V2L의 최고 출력은 3.5㎾로 일반 가정에서 쓰는 출력 한도와 비슷하다. TV나 냉장고, 세탁기 등 가전 기기도 돌릴 수 있다는 의미다.

현대차는 17평형 에어컨과 55인치 TV를 약 24시간 동안 가동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최근 인기가 많은 캠핑과 차박에 활용하기 쉽다. 차 안에서 빔프로젝터를 연결해 영화를 보고, 차 옆에서 전기레인지를 켜 요리를 하는 게 가능하다.

현대차는 이러한 장점을 부각한 다양한 마케팅 활동을 벌였다. 아이오닉 5에 전기를 연결해 러닝머신과 슈팅머신을 운영하는 장면을 촬영한 영상을 공개하거나 아이오닉 5를 활용해 스웨덴 외딴 오두막에 전력을 공급하는 프로젝트를 실시하는 게 대표적이다.

지금까지 아이오닉 5는 기대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4월부터 지난 2월까지 7만8000대 팔렸다. 올 상반기 내 글로벌 판매량이 10만대를 넘어설 전망이다. 독일 올해의 차와 영국 올해의 차 등 각종 상도 휩쓸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아이오닉 5 자체를 알리는 데만 집중했다면 마케팅 성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수도 있다”며 “전용 플랫폼 전기차의 개념과 그 의미를 집중적으로 소개하면서 오히려 아이오닉 5의 상품성이 글로벌 소비자에게 더 알려지는 효과를 거뒀다”고 분석했다.

도병욱 기자

■ 전문가 코멘트


□ 천성용 단국대 교수

마케터는 제품 특성에 따라 Market-driven(시장지향적) 전략과 Market-driving(시장주도적) 전략을 선택할 수 있다. 먼저 Market-driven 전략은 우리가 자주 경험하는 전통적인 마케팅 방식이다. 주로 일반 소비재의 경우에 해당하며, 이미 시장에 출시된 지 오랜 기간이 지난 제품에 적합하다.

이 때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은 다양하지만 명확하다. 분명한 것은 소비자들이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 대부분 잘 알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마케터는 철저한 STP 전략에 따라 소비자가 원하는 니즈를 잘 파악해내고, 이를 가장 잘 해결해 줄 수 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전달하면 된다.

그런데 매우 혁신적인 제품, 특히 기존에 없었던 “신제품(Really new product)”의 경우에는 소비자가 원하는 것이 대부분 명확하지 않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소비자들도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 그 제품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주로 하이테크 신제품이 이 경우에 해당하는데, 이 때 필요한 마케팅이 바로 “Market-driving 전략”이다. Market-driving 전략은 기존의 전통적인 마케팅 방식과 전혀 다르다.

Market-driven 전략이 소비자의 “이미 알려진 니즈”에 적절히 대응하는 것이라면, Market-driving 전략은 기업이 소비자들을 적극적으로 이끌고 나가 “니즈를 새롭게 형성해야” 한다. 필요하면 소비자를 교육시킬 필요도 있다.

아이폰이 처음 시장에 출시되었던 시절의 초기 광고들을 떠올려보자. 요즘 아이폰은 ‘감성’에 어필하는 광고를 주로 전달하지만, 출시 초기에는 스마트폰으로 할 수 있는 다양한 기능들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소비자를 교육하는 메시지 중심이었다.

예를 들어, TV화면에 가득 찬 아이폰 Home 화면이 등장하고, 손가락으로 아이폰이 할 수 있는 다양한 기능들(ex. 이메일도 보낼 수 있고, 사진도 첨부할 수 있고, 다양한 앱을 다운받을 수 있는 기능 등)을 알렸다. 즉 아이폰과 관련된 니즈가 만들어지도록 소비자들을 적극적으로 이끌었다.

현대자동차의 전기차 아이오닉5의 경우에도 Market-driving 전략을 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현대자동차는 기존 자동차 소비자들의 사고 방식에 애써 맞추지 않고, ‘전기차 전용 플랫폼’이 무엇인지, 아이오닉5로 할 수 있는 새로운 것, 그리고 아이오닉5로 소비자의 삶이 어떻게 바뀔 수 있는지 적극적으로 먼저 알리며 관련 니즈를 형성해가고 있다.

이처럼 Market-driving 전략은 고객의 니즈에 수동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먼저 고객의 니즈를 적극적으로 만들고 고객을 이끌고 나가야 한다. 이후 시장에 새로운 니즈가 성공적으로 형성되면, 이를 해결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제품이 바로 우리 제품이라는 점을 어필해야 한다.

□ 최현자 서울대 교수

신제품을 구분하는 방식은 매우 다양하다. 단순하게는 점진적 신제품과 혁신적 신제품으로 구분한다.

점진적 신제품은 기존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는 제품이 시간 경과에 따라 진화된 것으로 연비가 개선된 자동차나 무게가 가벼워진 노트북컴퓨터 등을 꼽을 수 있다.

혁신적 신제품은 획기적인 신기술이 적용된 제품으로 자율주행 자동차나 가상현실(VR) 헤드셋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러한 구분을 소비자 관점에서 생각해보자. 점진적 신제품은 기존 제품의 기능이 다소 개선된 것이라서 소비자가 새롭게 사용방법을 익혀야 할 필요가 거의 없다. 하지만 혁신적 신제품은 기존 제품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기술이 적용된 탓에 소비자로서는 신기술에 익숙해지려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한 연구에 따르면 소비자들은 신기술에 익숙해지는데 필요한 시간과 노력 보다 해당 기술의 우수성과 그 기술이 주는 이점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기차에 사용된 플랫폼(뼈대)이 어떤 것인지를 구분할 수 있는 소비자가 얼마나 될까. 많은 소비자는 전기차 ‘전용’ 플랫폼이라는 개념 자체를 낯설게 느낄 것이다. 전기차는 휘발유나 경유가 아니라 전기로 움직이는 자동차라는 정도의 인식을 가진 소비자가 대다수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현대차는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적용한 아이오닉 5를 출시하기 전에 전용 플랫폼 전기차를 알리는데 집중했다. 내연기관차 뼈대가 아닌 전용 플랫폼을 적용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장점을 적극적으로 알린 것이다. 내연기관차에서는 불가능했던 V2L(vehicle to load) 기능을 ‘차박’과 연결시켜 알리기도 했다.이런 전략은 혁신적 신제품이라 할 수 있는 전용 플랫폼 전기차가 가진 기술의 우수성과 그 기술이 주는 이점을 부각시켜 소비자에게 어필했다는 점에서 매우 적절했다고 평가할만하다.

제 아무리 좋은 기술과 신제품이더라도 소비자에게 어떻게 접근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점을 재확인할 수 있었던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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