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노조에 쓴소리 쏟아낸 삼성전자 주주들

경영진 아닌 노조 질책 이례적
"무리한 요구 수용 안돼" 한목소리

박신영 산업부 기자
“국민들에게 ‘귀족 노조’라는 인상을 주지 않아야 합니다. 회사의 다른 한 축에 주주가 있음을 잊지 말아주세요.”

지난 16일 경기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삼성전자 주주총회에서 중년의 여성 주주가 경영진에게 한 말이다. 이 주주는 수많은 사람 앞에서 말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그는 “삼성 노조에서 기본급 15%를 올려주지 않으면 파업하려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노조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타당한 요구로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 주주의 발언이 끝나자 호응하는 목소리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또 다른 주주도 노조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경영진은 온 힘을 바쳐서 세계적인 기업으로 선도하기 위해 노력하는데 노조는 무리한 요구와 생떼를 부리는 모습밖에 보이지 않는다”며 “미국 애플 시총은 2800조원인 데 비해 삼성전자는 아직 500조원이 안 되는 만큼 노조에 발목이 잡혀선 안 된다”고 촉구했다. ‘나는 노조가 정말 싫어요’라는 손팻말을 만들어 온 주주도 눈에 띄었다.

삼성전자 주주들이 주가 하락, 실적 부진, 배당금 축소 등을 이유로 경영진을 질책한 경우는 많았지만 노동조합을 타깃으로 삼은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주총장에서 노조에 대한 불만이 쏟아진 것은 전국삼성전자노조를 필두로 한 삼성전자 노조 4곳 때문이다. 이들은 기본급을 1000만원 이상 인상하고 영업이익의 25%를 성과급 재원으로 마련할 것 등을 요구하고 있다. 노조 대표들은 18일 경계현 사장 등 경영진과 만나 노조 측의 주장을 전달할 예정이다.

삼성 안팎에선 소액주주들의 평균 연령이 내려가면서 노조에 대한 질타의 목소리가 거세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취업난과 부동산 가격 급등 등으로 박탈감을 느끼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주주들이 국내 대기업 가운데 최고 수준의 연봉을 받고 있는 삼성 노조원들의 행태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는 얘기다. 반도체사업부 임직원이 지난해 연말 기본급의 200%에 해당하는 특별격려금을 받아간 것을 놓고도 ‘과한 것이 아니냐’는 여론이 적지 않다.삼성전자 노조가 대표성이 있는지를 놓고도 갑론을박이 거세다. 삼성전자 노조 4곳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전국삼성전자노조의 조합원은 4500여 명이다. 전체 임직원 11만여 명 중 4%에 불과하다.

젊어진 주주들이 본격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삼성전자의 부담이 한층 더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과도한 연봉=주주에 대한 배신’이라는 공식이 만들어질 수 있어서다. 삼성전자 가 주주와 노조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점을 찾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