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전쟁 본질 꿰뚫고, 뉴스 읽히고…지정학 알면 눈이 트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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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세부터 읽는 지정학지정학은 지리학과 정치학의 융합 학문으로, 지리적 환경이 국제정치 또는 국제 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다. 일본에서는 최근 들어 지정학 관련 책이 부쩍 많이 출간되고 있다. 어린이 지정학(こども地政)》 14세부터 읽는 지정학(14からの地政)》 세계사에서 배우는 지정학(世界史でべ! 地政)》 등 다양한 연령대가 읽을 수 있는 지정학 관련 책들이 주목받고 있다. 한국과 일본 간 역사 갈등, 미국과 중국 사이의 패권 다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등 국제 정치가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전개되고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거시적인 안목에서 세계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국제정치 일촉즉발 상황에 위기감 커져
거시적으로 보면 흐름 이해하기 쉬워
지난 2월 말 출간되자마자 일본 주요 서점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 13세부터 읽는 지정학(13からの地政)》은 최근 가장 인기를 끄는 지정학 책이다. 정치부, 경제부, 국제부를 거쳐 모스크바 특파원까지 지낸 20년 경력의 신문기자 다나카 다카유키(田中孝幸)는 다양한 국제정치 현장을 누비며 취재하는 동안 지정학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는 지정학을 이해하면 뉴스의 이면, 전쟁과 갈등의 역사, 역사 문제의 본질 등을 제대로 알 수 있다면서 ‘삶의 무기’이자 ‘미래를 위한 나침반’으로서 지정학을 공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청소년 대상의 책이지만 성인 독자들도 읽으면서 신선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고등학생, 중학생 오누이와 ‘가이조쿠’라고 불리는 노인 사이의 흥미로운 대화체로 이뤄져 있고, 1일째 ‘물건도 정보도 바다를 통과한다’부터 7일째 ‘우주에서 본 지구본’에 이르기까지 단 1주일 만에 읽을 수 있도록 구성돼 있다.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가이조쿠는 지구본을 요리조리 돌리며 호기심으로 가득한 형제의 질문에 답변한다. 우리에게 가장 흥미를 끄는 대목은 역시 ‘한·일 간 역사 인식 문제’에 대한 부분이다. “한국은 19세기부터 20세기 전반에 걸쳐 일본과 러시아 중국 간 세력 다툼의 무대가 되면서 여러 차례 외국 군대의 전쟁터가 됐어. 그전에도 중국 왕조에 지배당하거나 왕이 있었더라도 마치 중국의 속국처럼 취급받았단다. 가이조쿠는 지구본 위에 올려놓은 손가락을 중국과 한국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이렇게 자주 공격당하는 반도에는 주로 세 가지 특징이 있는데, 첫째는 큰 나라와 큰 나라 사이에 끼어 있는 것, 둘째는 다른 나라와의 경계선에 강이나 산 등 커다란 자연 장애물이 없다는 것, 그리고 세 번째는 풍부한 지하자원과 농산물 또는 드나들기에 편리한 항구처럼 다른 나라들이 탐낼 만한 것을 갖고 있다는 것이지.”가이조쿠는 한반도가 지정학적으로 자주 침략받을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다는 점을 반복해 강조하면서 마치 일본의 침략을 정당화하는 듯한 인상을 심어준다. 과거사 문제와 강제노역 문제에 대해서도 한·일 간 조약을 강조하면서 법률상으로는 해결됐다는 해석이 우세하다는 설명도 덧붙인다. 아울러 한국이 지정학적으로 어려운 환경에서 필사적으로 살아남기 위한 전략으로 해외 시장 공략에 집중했고, 그렇게 해서 음악, 영화, 드라마 등에서 세계에서 인정받는 콘텐츠가 탄생할 수 있었다고 해석한다. 지정학은 정말 중요하다. 하지만 자신이 위치한 곳에 따라 국제 관계를 제멋대로 해석하는 오류 역시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홍순철 BC에이전시 대표·북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