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온 고향에 바치는 연서…영화 '벨파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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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우리나라 가요 노랫말로 가장 많이 쓰인 단어가 '고향'이라고 한다.
그만큼 쫓기듯 고향을 떠나온 사람도, 고향을 그리워하는 사람도 많았던 시절이었다. 비슷한 시기 영국 북아일랜드인들의 처지도 그랬다.
개신교와 천주교 간 대립이 첨예해지고 실업률이 치솟으면서 많은 이들이 정든 고향과 작별했다.
특히 종교갈등의 중심지였던 수도 벨파스트의 주민들은 내전의 상흔을 안고 아일랜드나 잉글랜드 혹은 더 멀리 캐나다, 호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영화 '벨파스트'는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고향 벨파스트를 떠나야만 했던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이곳 출신인 케네스 브래나 감독이 유년 시절을 되짚어 고향에 얽힌 추억을 스크린에 펼쳤다. 9살 꼬마 버디(주드 힐 분)는 서로를 살뜰히 살피는 이웃들과 함께 벨파스트의 작은 마을에 살고 있다. 일상을 공유하는 것은 물론 내 아이 네 아이 할 것 없이 사랑을 듬뿍 주는 가족 같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1969년 8월 개신교도 무리가 천주교 신자들의 집을 습격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평화에 균열이 생긴다.
마을 입구에는 바리게이트가 세워지고 군인과 자경단은 주민들을 검문한다. 어린 버디에게도 달라진 마을 풍경이 낯설다.
아버지(제이미 도넌)의 친구는 자기 편에 서라고 협박하는 무서운 아저씨가 됐고, 목사는 천국으로 가는 길과 지옥에 떨어지는 길 둘 중 하나를 택하라며 겁을 준다.
부모님마저도 돈 때문에 싸우는 일이 잦아진다. 하지만 버디의 일상에서 그런 일들은 배경에 불과하다.
버디에겐 첫사랑 소녀의 옆자리에 앉기 위해 수학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는 게 가장 중요하다.
무슨 종교를 따르는지도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저 내일 아침 눈을 뜨면 위대한 축구 선수가 돼 있게 해달라고 기도할 뿐이다.
어른들의 세계는 다르다.
끝을 모르는 폭동과 빚 독촉에 시달리던 아버지는 잉글랜드로 이사를 하자고 어머니(캐트리오나 밸프)에게 제안한다.
어머니는 이방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미래가 두렵다.
그곳 사람들이 우리 말씨를 비웃고, 고향 얘기를 하면 손가락질을 할 거라며 눈물을 흘린다.
위험한 상황이 이어지며 가족은 결국 벨파스트를 떠나기로 한다.
버디는 가기 싫다 울며 떼를 쓴다.
축구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넓은 정원이 딸린 새집은 안중에 없다.
친구와 친척, 이웃이 있는 벨파스트가 그에겐 유일한 집이기 때문이다. 모든 기억은 세월이 흐르면서 윤색되기 마련이지만, 유독 고향에 얽힌 추억은 더 그런 듯하다.
브래나 감독 역시 살얼음판 같던 당시 벨파스트와는 달리 약간의 환상을 가미해 따뜻하게 고향을 그렸다.
마음속에 자기만의 '벨파스트'를 지닌 관객이라면 충분히 고개를 끄덕이며 향수에 젖을 만하다.
아이 눈에 비친 어른들의 잔학한 세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언뜻 '인생은 아름다워'(1997),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2008), '조조 래빗'(2019) 같은 영화가 떠오를 수 있겠지만, '벨파스트'는 역사적 사건을 비판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저 브래나 감독이 고향에 바치는 애정 어린 연서로만 느껴진다.
영화 말미에 나오는 '머문 이를 위해, 떠난 이를 위해 그리고 길을 잃은 모든 이를 위해'라는 메시지는 이런 감독의 의도를 뚜렷이 한다. 메시지가 가닿은 덕분인지 영화는 최근 열린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받으며 찬사를 들었다.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작품상, 감독상 등 7개 부문 후보에 올라 있다. 오는 23일 개봉. 상영시간 98분. 12세 관람가.
/연합뉴스
그만큼 쫓기듯 고향을 떠나온 사람도, 고향을 그리워하는 사람도 많았던 시절이었다. 비슷한 시기 영국 북아일랜드인들의 처지도 그랬다.
개신교와 천주교 간 대립이 첨예해지고 실업률이 치솟으면서 많은 이들이 정든 고향과 작별했다.
특히 종교갈등의 중심지였던 수도 벨파스트의 주민들은 내전의 상흔을 안고 아일랜드나 잉글랜드 혹은 더 멀리 캐나다, 호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영화 '벨파스트'는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고향 벨파스트를 떠나야만 했던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이곳 출신인 케네스 브래나 감독이 유년 시절을 되짚어 고향에 얽힌 추억을 스크린에 펼쳤다. 9살 꼬마 버디(주드 힐 분)는 서로를 살뜰히 살피는 이웃들과 함께 벨파스트의 작은 마을에 살고 있다. 일상을 공유하는 것은 물론 내 아이 네 아이 할 것 없이 사랑을 듬뿍 주는 가족 같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1969년 8월 개신교도 무리가 천주교 신자들의 집을 습격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평화에 균열이 생긴다.
마을 입구에는 바리게이트가 세워지고 군인과 자경단은 주민들을 검문한다. 어린 버디에게도 달라진 마을 풍경이 낯설다.
아버지(제이미 도넌)의 친구는 자기 편에 서라고 협박하는 무서운 아저씨가 됐고, 목사는 천국으로 가는 길과 지옥에 떨어지는 길 둘 중 하나를 택하라며 겁을 준다.
부모님마저도 돈 때문에 싸우는 일이 잦아진다. 하지만 버디의 일상에서 그런 일들은 배경에 불과하다.
버디에겐 첫사랑 소녀의 옆자리에 앉기 위해 수학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는 게 가장 중요하다.
무슨 종교를 따르는지도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저 내일 아침 눈을 뜨면 위대한 축구 선수가 돼 있게 해달라고 기도할 뿐이다.
어른들의 세계는 다르다.
끝을 모르는 폭동과 빚 독촉에 시달리던 아버지는 잉글랜드로 이사를 하자고 어머니(캐트리오나 밸프)에게 제안한다.
어머니는 이방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미래가 두렵다.
그곳 사람들이 우리 말씨를 비웃고, 고향 얘기를 하면 손가락질을 할 거라며 눈물을 흘린다.
위험한 상황이 이어지며 가족은 결국 벨파스트를 떠나기로 한다.
버디는 가기 싫다 울며 떼를 쓴다.
축구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넓은 정원이 딸린 새집은 안중에 없다.
친구와 친척, 이웃이 있는 벨파스트가 그에겐 유일한 집이기 때문이다. 모든 기억은 세월이 흐르면서 윤색되기 마련이지만, 유독 고향에 얽힌 추억은 더 그런 듯하다.
브래나 감독 역시 살얼음판 같던 당시 벨파스트와는 달리 약간의 환상을 가미해 따뜻하게 고향을 그렸다.
마음속에 자기만의 '벨파스트'를 지닌 관객이라면 충분히 고개를 끄덕이며 향수에 젖을 만하다.
아이 눈에 비친 어른들의 잔학한 세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언뜻 '인생은 아름다워'(1997),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2008), '조조 래빗'(2019) 같은 영화가 떠오를 수 있겠지만, '벨파스트'는 역사적 사건을 비판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저 브래나 감독이 고향에 바치는 애정 어린 연서로만 느껴진다.
영화 말미에 나오는 '머문 이를 위해, 떠난 이를 위해 그리고 길을 잃은 모든 이를 위해'라는 메시지는 이런 감독의 의도를 뚜렷이 한다. 메시지가 가닿은 덕분인지 영화는 최근 열린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받으며 찬사를 들었다.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작품상, 감독상 등 7개 부문 후보에 올라 있다. 오는 23일 개봉. 상영시간 98분. 12세 관람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