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정 "난, 나로 살다 죽을 것"…진하 "나의 마스터" [인터뷰+]

애플TV+ '파친코' 윤여정·진하 인터뷰

윤여정 "아들 생각나 선택한 작품, 사람 마음 돈으로 못 사"
진하 "아시아계 미국인인 제 이야기 할 수 있어 기뻤죠"
'파친코' /사진=애플TV
"아카데미 수상 후 달라진 건 하나도 없어요. 똑같은 친구하고 놀고, 같은 집에 살고 있죠. 하나 감사한 건 30, 40대의 나이에 아카데미를 탔더라면 둥둥 떠다녔을 거예요. 늙은 거 싫어하는 사람인데, 내 나이에 감사해보긴 처음이죠."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 체류 중인 윤여정은 18일 '파친코'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배우 진하와의 온라인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아카데미 상을 받는 순간은 기쁘지만 그 상이 나를 변화시키지는 않는다"라며 "봉준호 감독이 노크했고, '미나리'가 우여곡절 끝에 올라갈 수 있었고, 거기에 이상한 할머니로 상을 받았다. 운이 좋았다. 난 나로 살다가 죽을 것"이라고 했다.윤여정은 1917년 영화 '화녀'를 통해 처음 카메라 앞에 선 후 50여년 동안 80편이 넘는 드라마, 30편에 가까운 영화에 출연했다. 워쇼스키 자매의 '센스8'을 통해 할리우드에 진출하더니 영화 '미나리'로 한국 배우 최초 오스카 수상이라는 기록을 세웠고, 이번엔 애플TV+에서 1000억 여원에 달하는 제작비를 들인 대작 '파친코'로 전 세계 시청자를 만난다.

'파친코'는 이민진 작가의 동명의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도서를 원작으로 한국 이민자 가족의 희망과 꿈을 4대에 걸친 연대기로 풀어낸다. 총 8편으로 이루어진 이 웅장한 연대기는 한국과 일본, 그리고 미국을 오가며 약 70년에 걸쳐 펼쳐지는 한국 이민자 가족의 희망과 꿈에 대한 이야기를 섬세하고 따뜻하게 담아낸다.

'미나리'에 이어 또다시 '이방인'의 삶을 그린 작품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윤여정은 한국계 미국인으로 살아온 아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라고 했다."제가 미국에서 살 때는 인종차별을 많이 느끼지 못했어요. 우리 아들, 진하 나이 때 애들이 그런 걸 많이 느끼더라고요. 한국어를 못하니 한국에 와도 이상하고 미국에서도 룩이 다르니까…저는 얘네들을 보고 국제고아라고 해요. 인터뷰하면서 느끼게 된 건데, '미나리' 때는 아이작 감독을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이 컸어요. 제 사비를 들여 비행기를 타고 촬영장에 갔죠. 얘네들이 다 우리 아들과 똑같은 상황인데… 사람 마음은 돈으로 살 수 없잖아요. 그런 마음 때문에 하는 것 같아요. 글로벌 프로젝트 그런 건 전 몰라요."
'파친코' /사진=애플TV+
이번 작품에서 윤여정은 남편과 함께 일본으로 이주한 뒤 50년 후 1989년에도 일본에 살고 있는 노년의 선자 역을 연기했다. 유년의 선자는 전유나가, 젊은 시절의 선자는 김민하가 각각 연기했다. 선자는 16세에 임신하고 아이의 아버지와 결혼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걸 알게 된 후 싱글맘으로 김치를 팔며 생계를 이어가는 캐릭터다.

그는 1975년 가수 조영남과 결혼한 후 배우 생활을 쉬고 미국에서 생활했다. 결혼 13년 만에 이혼한 뒤 윤여정은 슬하의 두 아들을 양육하기 위해 한국 연예계로 복귀했다."그동안 인터뷰를 통해 잘못 알려졌는데 이번 기회에 정정할게요. 전 미국에서 일은 안 했고, 이혼 후에 살기 위해 일을 했죠. 살려고 일을 할 때는 내가 힘든지 아닌지 몰라요. 선택할 수 없으니까, 이것밖에 할 일이 없어 하는 상황이죠. 선자가 할 수 있는 일도 김치를 만들어 어딘가에 파는 것이었어요. 그렇게 생각하고 연기했죠."

윤여정은 한국이 일제 강점으로부터 해방된 1945년 8월 15일로부터 2년 후 태어났다. 그는 직접 일제강점기를 경험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어머니가 시대의 산증인이라고 했다. 그는 "우리 엄마가 이 시절 사람이라 그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저는 47년, 해방 후 태어난 것"이라고 했다.

윤여정은 이번 작품에 대해 "애플이 아니었으면 못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독립되자마자 6.25 전쟁이 있었다. 이 사람들은 국적도 잃고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그 세월을 표현하려고 생각하니 잘해야 하는데 큰일 났다 싶었다"고 털어놨다."이번 작품을 하면서 너무 많이 배웠어요. 처음엔 '자이니치'(재일 동포)가 나쁘게 이야기하는 건가? 하고 물어봤는데 아니더라고요. 자이니치의 프라이드가 있다고 해요. 역시 역사는 배우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자이니치는 재일 동포지만 한국인으로 산다는 것을 뜻한다고 해요. 그 사람들이 산 세월에 미안했고 찍으면서도 가슴이 아팠죠."


진하 "윤여정 연기 보고 배우려 노력…운 좋았죠"

'파친코' /사진=애플TV
선자의 손자 솔로몬 백 역을 연기한 진하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해밀턴'에서 애런 버 역으로 열연한 배우이기도 하다. 그는 자이니치 캐릭터를 위해 한국어, 일본어, 영어 대사를 모두 소화해야만 했다.

"아시아계 미국인으로 살면서 연결되는 경험이 있어요. 저희 할머니가 돌아가셨지만 1911년에 태어나셔서 일제를 겪었죠. 아버지는 일본어를 유창하게 하시고, 꼭 일본어를 해야만 했던 가족도 있어요. 그런 역사를 미국 TV쇼에서 보여줄 수 있다는 게 영광이라고 생각해요. 언젠가 제 역사와 가족의 이야기를 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빨리 기회가 올 거라곤 생각 못해서 기뻤습니다."

진하는 윤여정을 시종일관 '마스터'(Master)라 칭하며 함께 호흡해 영광이라고 했다. 그는 "좋은 연기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은데 운이 정말 좋았다"며 "윤여정을 많이 보고 배우려고 노력했다. 선자와 손자로 관계를 맺을 수 있어 너무나도 좋았다"고 애정을 드러냈다.

윤여정은 진하에 대해 "굉장히 똑똑하고 철학적"이라면서도 "그래서 말이 길다"며 농을 쳤다. "참 재미있었던 부분은 우리 아들에게 진하가 누구냐고 물어봤어요. 미국 TV 쇼가 있는데 그 연속극에서 진하 하나만 잘했다고 하더라고요. 첫 신을 찍는데 한국 사람들은 배우 하면 핸섬하고 이민호 같이 생겨야 하고 그런 편견이 있잖아요. 저도 나이가 많은데 얼마나 편견이 많겠어요. 애플에서 몇 달을 오디션 봤다는데 '쟤를 뽑으려 그랬나' 싶었죠. 그런데 배우들은 알아요, 연기를 하는 순간 '쟤 잘한다'고 느꼈죠."

윤여정은 진하에게 "마스터라고 부르지 말아 달라"며 "연기엔 마스터가 없다"고 쑥스러워했다. 이에 진하는 "그럼 굿 스튜던트(good student)"라며 치켜세웠다.

1915년 영도의 허름한 하숙집에서부터 1989년 북적이는 인파와 화려함으로 가득한 뉴욕까지 서로 다른 세 시대를 살아가는 ‘선자’의 시각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파친코'는 오는 25일 애플TV+에서 전 세계 최초 공개된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