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독립 외치는 유럽…'원전 유턴' 속도낸다

'러 의존도 줄이기' 사활

'脫원전' 앞장섰던 벨기에·영국
원전 수명 10~20년 연장 검토
핀란드에선 40년 만에 첫 가동

세계 원전 수요 급증하자
우라늄값 11년 만에 '최고'
러시아발(發) 에너지 위기에 맞닥뜨린 유럽 국가들이 원자력발전소 수명을 연장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독일과 함께 탈원전에 앞장섰던 벨기에와 20년 넘게 원전 건설을 중단한 영국이 대표적이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의 천연가스에 더 이상 의존할 수 없게 되자 유럽 국가들이 원전으로 회귀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원전 수명 연장 검토하는 벨기에

로이터통신은 17일(현지시간) “벨기에가 원전 수명을 늘려 2025년까지 모든 원전을 폐쇄하기로 한 계획을 연기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반 데르 스트라텐 벨기에 에너지장관은 전날 핵심 각료들에게 ‘원전 2기의 수명을 최대 10년 연장한다’는 내용의 법안이 이달 말까지 통과될 수 있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원전 운영사인 엔지가 안전성과 경제성을 보장할 수 있는 한 벨기에는 (원전 수명 연장에)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벨기에는 지난해 12월 격렬한 토론 끝에 2025년까지 원전 7기를 모두 폐쇄하기로 합의했다. 벨기에 전력회사 일리아에 따르면 이들 원전은 벨기에 전력 생산량의 52.4%(작년 기준)를 담당한다. 다만 벨기에는 에너지 공급이 불안정해질 수 있다고 판단될 경우 원전 2기의 수명은 연장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겨뒀었다. 현재 수명 연장이 검토되는 원전 2기는 각각 1038㎿, 1039㎿급이다.

두 달 사이 벨기에가 탈원전을 재검토하고 나선 것은 유럽에서 급속도로 악화하고 있는 에너지 위기 탓이다. 유럽은 전력 생산과 난방에 필요한 천연가스의 40%를 러시아로부터 공급받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수급 불안이 퍼지면서 천연가스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러시아는 자국에 경제 제재를 가한 유럽 국가들을 향해 일부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을 차단할 수 있다고 위협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원전을 폐쇄하는 대신 천연가스 발전을 늘리려고 했던 벨기에가 탈원전 계획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이다.

○우라늄 가격도 급등

영국도 원전 수명 연장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영국 정부는 동부 해안가에 있는 사이즈웰B 원전 수명을 20년 늘려 2055년까지 운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영국은 원전 수명 연장을 포함해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다양한 계획을 다음주 발표할 예정이다.

친원전 국가들의 행보도 빨라지고 있다. 지난 12일 핀란드에선 40년 만에 첫 원전인 올킬루오토 3호기가 시범 운영에 들어갔다. 유럽에서 신규 원전이 가동되는 것은 15년 만이다. 1.6GW(기가와트)짜리인 이 원전은 당초 2009년부터 가동될 예정이었으나 기술적 문제로 인해 13년간 지연됐다. 체코는 최근 신규 원전 건설 사업의 본입찰을 개시했다. 이번 사업은 체코 남부 두코바니 지역에 1200㎿ 이하 가압경수로 원전 1기를 짓는 것이다.

이처럼 원전을 향한 기류가 우호적으로 변하면서 최근 우라늄 가격은 11년 만에 최고치로 치솟았다. 투자 전문매체 배런스에 따르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전까지 파운드당(1파운드는 약 0.45㎏) 43달러 수준에서 거래되던 우라늄 가격은 현재 40%가량 뛰어올랐다. 우라늄 시장 조사업체 UxC의 조너선 힌제 회장은 “유럽 몇몇 국가가 러시아산 천연가스에서 벗어나 에너지 다각화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원전 수명을 늘리는 등 기존 입장을 바꾸려는 조짐이 있다”고 진단했다.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