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부자는 죽어서 '건물'을 남긴다 [강영연의 뉴욕부동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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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역사상 가장 부자가 남긴 록펠러 센터뉴욕의 크리스마스가 시작되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록펠러 센터입니다. 지난해에는 12월 1일 록펠러 센터 크리스마스트리 점등식이 열렸는데요. 유명 가수들의 공연이 어우러져 축제로 진행됐습니다.
100년 전 만들어낸 도시 속의 도시
록펠러 센터 앞의 트리는 명물입니다. 이 트리가 어디 자라던 나무인지. 이 나무가 언제 뉴욕으로 옮겨지는 지까지 실시간으로 뉴욕 지역 방송국에서 소개할 정도입니다. 트리 앞의 아이스링크도 유명하죠. 영화 '나 홀로 집에' 나왔던 스케이트장이 바로 여기입니다. 케빈이 가족을 만나게 해달라면서 기도하는 장소죠. 크리스마스 시즌 뉴욕을 찾는다면 꼭 방문하는 명소 중 하나입니다.록펠러 센터의 건축학적 의미는 이를 넘어섭니다. 록펠러 센터는 도시 속의 도시로 불립니다. 단순히 하나의 건물이 아니라 쇼핑, 문화, 방송 등을 한 번에 즐길 수 있는 복합 단지입니다. 기존에 소개해드렸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크라이슬러 빌딩 등 종전의 높이 경쟁만 하던 마천루들과는 큰 차이를 보입니다. 적당한 공간을 마련해 통풍, 채광, 차량 흐름까지 고려했습니다. 단순히 한 건물이 아니 한 지역을 종합적으로 계획해서 만들어냈다는 점이 이색적이라고 평가받습니다.
이 록펠러 센터를 만든 사람은 존 데이비슨 록펠러 시니어. 우리가 아는 바로 그 '석유왕' 록펠러입니다.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와 함께 대공항 이전 한 시대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업가들이었습니다.
록펠러는 미국의 사업가이자 역사상 가장 부유한 미국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얼마나 부자였을까요. 1937년에 록펠러가 추정한 14억 달러의 순자산은 미국 GDP의 1.5%에 해당했습니다. 이 측정 기준에 따르면 그는 미국 비즈니스 및 경제 역사상 가장 부유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1863년 클리블랜드에서 정유소를 설립한 것을 시작으로 그의 역사는 시작됐습니다. 그는 1881년 미국에서 생산되는 석유의 95%를 손에 쥐고 있었습니다. 이를 위해 그는 타 기업을 흡수, 통합하고 돈이 되는 일이면 무엇이든 했습니다. 이 때문에 록펠러는 당대에 비난을 많이 받기도 했지요. 그때는 노동권이라든지, 독점 금지라든지 지금은 당연해 보이는 자본주의의 원칙들이 정립되기 전이었습니다. 이를 활용해 록펠러는 큰돈을 벌었습니다.
시대는 변했습니다. 1911년 미국연방 최고재판소로부터 독점금지법 위반의 판결을 받았고, 회사는 해산돼 30개로 나뉘었습니다. 지금도 잘 알려진 회사죠. 엑손모빌, 셰브론 등이 모두 여기에서 나왔습니다.
이후 록펠러는 달라집니다. 지금 세대가 기억하는 록펠러의 모습으로 변했다고 할까요. 록펠러는 재계에서 은퇴하고, 자선가로 변신했습니다. 1913년 록펠러 재단을 설립했습니다. 록펠러 재단은 이후 자산을 관리하고, 자선활동을 이어갔는데요. 맨해튼의 록펠러 센터도 록펠러 재단이 자본을 대고 유명 건축가에 의해서 설립했습니다.1928년 록펠러는 컬럼비아 대학에서 부동산을 임대했습니다. 원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가 새 오페라 하우스를 지을 계획이었지만 너무 비싸서 포기했다고 하네요. 1930년 기존 건물들이 철거되고 1931년부터 공사가 시작됐습니다. 이 시기는 대공황으로 미국 경제가 매우 어려웠던 때입니다. 록펠러 센터는 대공황 시기에 뉴욕에서 지어진 유일한 대규모 상업용 건물이고요. 이 때문에 경기 침체로 일자리가 필요했던 지역 노동자들에게 수만개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가장 좋은 복지가 일자리라는 것을 고려하면 록펠러가 미국인들이 가장 힘들 때 큰 도움을 준 셈입니다.
처음 록펠러 센터는 지상 70층에 전망대가 있는 RCA빌딩(1988년 소유권이 바뀌면서 GE빌딩으로 불림)을 중심으로 주위 13동의 고층 빌딩이 세워졌습니다. 이것이 미국 최초의 13개의 식민지를 의미한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후에 2개 동이 더 늘어났고, 이후에도 몇 가지가 추가되면서 지금은 총 19개 건물로 구성돼 있습니다. 위치는 맨해튼 5번가와 7번가 사이로 남북으로는 51번 스트리트와 48번 스트리트 사이입니다.가장 유명한 건물은 RCA 빌딩입니다. 이곳에는 뉴욕 최고의 전망대 중 하나로 꼽히는 탑 오브 더 록이 있습니다. 뉴욕에는 몇 개의 전망대가 있는데요. 탑 오브 더 록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볼 수 있는 뷰로 유명합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전망대에 가면 건물을 볼 수 없기 때문에 탑 오브 록을 많이 찾는다고 합니다.) 미국 방송사인 NBC 스튜디오도 RCA 건물에 있습니다.이뿐 아닙니다. 록펠러센터 안에는 MTV 뮤직 어워드 같은 시상식이 열리기도 하는 라디오시티 뮤직홀도 있고, 특히 중앙의 로아플라자는 옥외 가든식 휴게 장소가 있는데요. 여름에는 레스토랑, 겨울에는 스케이트장이 됩니다. 뉴욕시민들에게 휴식처이자 여가의 장소가 되는 겁니다. 록펠러의 기부가 맨해튼의 중요한 상업지구를 만들었고, 동시에 시민들에게 쉴 곳을 만들어 준 겁니다. 100년 전에 만든 복합 센터가 여전히 맨해튼의 핵심 상업시설이자 사무실 등으로 쓰인다는 점도 인상적이죠.
예술적인 부분도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RCA 빌딩 로비에는 미국 역사를 묘사한 벽화가 있고요. 건물 입구마다 정교한 조각상이 있습니다. 록펠러 센터 근처를 지날 때면 미술관이 아니고 그냥 상업용 대중 건물에 이렇게 많은 조각이 있는 것에 매번 놀라움을 느끼는데요. 광장의 프로메테우스 동상이 가장 유명합니다.
록펠러 센터의 크리스마스트리로 돌아가 볼까요. 크리스마스트리를 세우는 전통은 1931년 철거 인부들이 집에서 만든 화환 등으로 장식했던 것에서 시작했습니다. 인부들은 경기 침체로 어려운 가운데도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기 위해 돈을 모았습니다. 이것은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미국의 끈기를 보여주는 상징으로 알려졌습니다. 어려운 시기에 미국인들에게 힘이 되는 뉴스였죠. 이에 록펠러 재단에서는 1933년부터 공식적인 연례행사로 만들었습니다. 다만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조명을 켜지 않고, 장식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1951년부터는 트리 점등식이 NBC에서 중계되면서 지금과 같은 행사로 발전했습니다.크리스마스트리 위에는 LED(발광다이오드)와 3백만개의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로 만든 별이 달립니다. 나무 앞으로는 발레리 클레어바우트(Valerie Clarebout)가 1969년 만든 천사 조각품도 늘 함께 진열되고요. 이 나무는 보통 70피트(약 21.3m) 이상으로 매우 큰데요. 크리스마스 시즌이 끝나면 해비타트 폴 휴머니티(Habitat for Humanity)에 기증돼 목재로 사용된다고 합니다.
뉴욕=강영연 특파원 yy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