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필도 거부한 러 지휘자에…예술·정치 '양자택일' 강요 논란 [김동욱의 하이컬처]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공연이 무산된 러시아 지휘자 투간 소이예프/뉴욕타임스 홈페이지 캡처

"러시아 지휘자가 더는 뉴욕 필과 함께 할 수 없을 것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 음악계에서 러시아 음악가들의 '퇴출' 움직임도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뉴욕타임스 등에 따르면 미국을 대표하는 뉴욕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이달 라흐마니노프와 프로코피예프의 곡을 지휘할 예정이었던 러시아 지휘자 투간 소히예프(Туга́н Со́хиев)와의 공연이 무산됐다고 발표했습니다. 소히예프 대신 우크라이나인 아버지와 러시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지휘자 안나 라키티나가 지휘봉을 잡습니다.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뮌헨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와 로테르담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에서 해고되고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의 주요 공연이 취소된 데 이어 러시아 예술가들에 대한 '보이콧'가 확산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에 뉴욕필과의 공연이 무산된 소히예프는 러시아 볼쇼이극장 음악감독을 겸임하고 있는 인물로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로 프랑스 툴루즈캐피톨오케스트라( l’Orchestre du Capitole de Toulouse) 음악감독직을 물러나기도 했습니다.

러시아 예술가들의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한 입장 표명 문제를 다룬 니혼게이자이신문 기사/니혼게이자이신문 홈페이지 캡처

소히예프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입장을 표명하라'는 툴루즈시의 요구에 대해 "사랑하는 러시아 음악가들과 사랑하는 프랑스 음악가 중 하나를 고르라는 불가능한 선택을 강요당했다"고 반발하며 논란을 키우기도 했습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과 프랑스 20미누테 등에 따르면 장뤼크 무덴 툴루즈 시장은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발발하자 소히예프에게 "현재 상황에 대해 툴루즈 시민에게 입장을 밝혀달라"는 공개 편지를 보냈습니다. 툴루즈시가 우크라이나 키이우(키예프)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는 만큼, 시를 대표하는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있는 러시아인 지휘자의 입장이 중요하다고 봤던 것입니다.

이에 소히예프가 "어떤 형태라도 분쟁을 지지한 적은 없으며 앞으로도 (전쟁을 지지하지 않는 입장을)지속할 것"이라면서도 러시아와 프랑스 예술가 사이의 양자택일을 강요받았다며 음악감독직을 던지면서 파장이 확산됐습니다.

예술과 정치, 인류 보편의 윤리 간의 갈등과 간극을 살피는 계기가 됐다는 설명인데요. 러시아 정치권의 결정과 무관한 예술가에게 정치적 입장을 밝히라고 강권하는 게 올바른 일이냐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고 합니다.

전쟁의 불똥이 예술계 곳곳으로, 그리고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번지는 모습입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