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말고 새 먹거리"…주총서 엿보는 건설사 신사업 행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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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L이앤씨·DL건설·HDC현산 등 '정관 변경'건설사들이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벗어나 새 먹거리를 찾고 있다. 단순한 주택 건설로는 경쟁력을 갖추기 어려워졌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신사업을 사업목적에 추가하기 위해 정관 변경에 나선 곳도 적지 않다.
탄소포집·IT·금융업 등 신사업 행보 강화
중대재해법·원자재값·침체기 등 건설업 부담 커진 탓
22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DL이앤씨는 오는 24일 주주총회에서 정관을 변경할 예정이다. '탄소 포집 및 활용‧저장 기술(CCUS)' 사업을 사업목적에 추가하기 위함이다. CCUS는 공장에서 배출된 탄소를 포집해 저장하거나 화학제품 원료, 바이오연료 등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전환하는 친환경 기술이다.관련 시장도 탄소배출권 가격과 탄소세 도입이 이슈로 떠오르며 성장하기 시작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인 인더스트리아크는 2026년 글로벌 CCUS 시장 규모가 253억 달러(약 30조8400억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DL이앤씨는 발전소·철강·정유·시멘트 등 제조업 분야에서 수요가 빠르게 증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를 통해 올해부터 2024년까지 국내외 누적 수주 1조원 달성하고 2030년부터는 CCUS 사업에서만 연간 2조원의 매출을 달성한다는 구상이다.
준비 작업도 한창이다. DL이앤씨는 서해그린에너지와 MOU를 맺고 폐기물 처리시설에서 발생하는 탄소를 포집하는 국내 최초의 탄소 네거티브 공장 건설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2024년 운영이 시작되면 이 공장에서만 연간 약 6만 톤의 이산화탄소를 포집할 것으로 예상된다.
탄소 포집부터 금융·IT까지 전방위 사업 확장
DL건설은 올해 주주총회에서 △소프트웨어와 정보 처리 개발 및 공급업 △전자 상거래 및 기타 통신 판매업, 통신 판매 중개업 등을 정관에 추가한다. 프롭테크 기술을 적용한 토지 솔루션 플랫폼 '랜드테크컴퍼니'를 운영하기 위해서다. 해당 플랫폼에 토지 정보를 등록하면 사업성을 분석해 매매 체결까지 지원, 토지 비지니스를 위한 전반적인 솔루션을 제공한다는 구상이다. 해당 사업은 DL건설의 사내벤처에서 추진하게 된다.이미 아이파크몰을 통해 유통업에 발을 담근 HDC현대산업개발은 올해 정관 변경을 통해 유통업·도소매업·판매시설운영업·물류업·운수업 등을 사업목적에 추가할 예정이다. 기업 대 소비자(B2C) 영역을 넘어 기업 대 기업(B2B) 사업까지 외연을 확장하기 위해서다. 코오롱글로벌도 △건설 기계 및 물류 장비(중고 포함) 판매업·정비업·부품 사업 △금융 상품 중개업 등을 추가하기로 했다.이들보다 한발 앞서 움직인 건설사들도 있다. SK에코플랜트는 기존 SK건설에서 사명까지 바꾸며 환경사업자로 거듭나고 있다. 2020년 종합 환경 플랫폼 기업인 '환경시설관리'를 인수하며 환경사업에 진출했는데, 지난해에만 6곳의 환경기업을 추가로 인수했다. 사업장 폐기물 소각 1위, 의료폐기물 소각 2위, 폐기물 매립 3위 등 업계 지위도 높아졌다. 전기‧전자 폐기물(E-폐기물) 전문 처리기업 테스사를 인수하며 기존 폐기물 소립‧매각에서 리사이클 영역까지 사업 범위를 넓혔다.
SK에코플랜트는 미 블룸에너지와 함께 고체산화물 연료전지(SOFC) 사업도 추진한다. 올해 SOFC를 탄소배출 없이 생산하는 고체산화물 수전해기(SOEC) 실증사업을 시작하고 '그린수소' 생산에도 나선다는 방침이다. GS건설도 자회사 GS이니마를 통해 역삼투압(RO) 방식의 담수화 프로젝트와 공업용수, 산업용수 등 수처리 분야에서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높아진 건설업 부담에 침체기도 우려 요소
건설사들이 사업목적까지 추가하며 신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드는 데는 주택 건설만 의존할 수 없다는 불안감이 작용했다. 올해 1월27일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은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경영책임자(CEO)를 처벌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산업재해로 노동자 1명 이상 사망하면 1년 이상의 징역과 10억원 이하의 벌금을, 2명 이상의 노동자가 중상을 입으면 7년 이하의 징역이나 1억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건설사들은 안전관리 부서를 강화하는 등 대비에 나섰다. 올해 주주총회에서도 이러한 여파를 엿볼 수 있다. 현대건설은 오는 24일 주주총회에서 황준하 최고안전책임자(CSO)를 신규 사내이사에 선임할 예정이다. HDC현대산업개발도 29일 주주총회에서 정익희 CSO를 사내이사로 기용할 계획이다. 다만 건설 현장의 특성상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는 점은 부담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삼표산업 채석장 토사 붕괴 사고, 판교 엘리베이터 설치 작업자 추락 사고 등이 발생했고, 이달에도 대전 아파트 신축 공사장과 천안 근린상가 공사장에서 각각 근로자 1명이 추락해 사망했다. 고용노동부는 중대재해법 시행 한 달 동안 발생한 재해 사망자가 42명에 달한 것으로 집계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원자재 가격도 급등하고 있다. 시멘트를 만드는 데 쓰이는 유연탄(역청탄) 가격은 이달 톤당 400달러를 넘어섰다. 2020년 톤당 50달러 수준이던 것이 2년 만에 8배 이상 올랐다. 알루미늄 가격도 이달 톤당 4000달러에 육박하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유연탄과 알루미늄을 비롯해 각종 자재의 가격이 급등하면서 지난 2일에는 전국 32개 현장에서 계약 단가 인상을 요구하는 파업도 벌어졌다.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10대 건설사 대부분은 전체 매출의 약 70%를 주택사업에 의존하고 있다"며 "주택사업은 호황기 뒤에 침체기가 찾아오는 데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과 원자재 가격 급등 등 건설업의 부담도 높아진 탓에 지속 성장을 위해서는 사업 다각화를 추진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