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도 공들인 회사 CEO 폭탄 발언에…삼성 '날벼락'

ASML CEO "EUV 장비 부족 불가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20년10월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위치한 ASML 본사를 찾아 EUV 장비를 살펴보는 모습. 왼쪽부터 마틴 반 덴 브링크(Martin van den Brink) ASML CTO, 이재용 부회장, 김기남 부회장, 피터 버닝크 ASML CEO. 2020.10.14 [사진=삼성전자 제공]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 회사 ASML의 피터 버닝크 최고경영자(CEO)가 향후 2년 동안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lithography)를 비롯한 반도체 제조 장비가 부족할 것으로 전망했다.

22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버닝크 CEO는 최근 영국 경제 매체 파이낸셜타임즈(FT)와의 인터뷰에서 "반도체 제조장비를 지난해보다 올해 더 많이, 올해보다 내년에 더 많이 출하할 예정"이라면서 이같이 말했다.그는 다만 "수요곡선을 보면 (생산량 증가가) 충분치 않으며 생산 능력을 50% 이상 끌어올려야 하지만 그러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면서 "ASML의 생산 능력을 확대할 방안에 대해 검토했지만 아직 필요한 투자 규모에 대해 확정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버닝크 CEO는 또 "독일 칼 자이스(Carl Zeiss) 렌즈가 ASML 장비에 들어가는데 칼 자이스도 더 많은 렌즈를 만들려면 허가를 받고 새 공장을 지어 클린룸을 확보해야하고 사람도 고용해야 하기 때문에 1년 이상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울러 "반도체 제조사가 공사하면 최소 2년은 걸린다"며 "결국 장비를 들이는 시점은 3~4년 뒤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ASML의 새 공장이 2024년 전에 가동되지 않을 것이므로 EUV 노광 장비를 만드는 데에도 시간이 더 많이 걸릴 것이라는 뜻을 우회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반도체 EUV 리소그래피용 광원 [사진=ASML]
버닝크 CEO의 전망은 ASML의 EUV 노광 장비를 한 대라도 더 유치하려 애쓴 파운드리 업체들에게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ASML은 세계적인 반도체 장비 회사로, 을의 입장이지만 갑보다 힘이 세다는 뜻에서 '슈퍼 을'로 불린다.

ASML은 세계 반도체 노광 장비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노광 장비는 실리콘 웨이퍼(둥근 원판)에 빛을 쏴 회로를 새겨주는 기계다. 회로 선폭이 좁고 가늘수록 칩 크기가 작아져 웨이퍼 한 개에서 더 많은 반도체를 만들어낼 수 있다. 즉 전력 소비량도 적어지고 성능은 높아진다는 말이다. 신용 평가사 무디스 보고서(2020년 12월)에 따르면 ASML은 매출 기준 전 세계 노광 장비 시장 점유율 80% 이상을 지배한다.

기술 수준에 따른 여러 종류의 노광 장비 중에서도 EUV 노광 시스템은 ASML 점유율이 100%다. 전 세계에서 ASML만 유일하게 EUV 노광 장비를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EUV 노광 시스템은 7nm 이하 초미세 회로를 새기는 공정에 필수적인 기술이다. 이 장비가 없으면 초미세 공정에서 기술력을 다투는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 대만 TSMC도, 2위인 삼성전자도 초미세 공정 반도체를 대량 생산할 수 없다. 막대한 비용을 들여 초미세 공정 기술을 개발해도 이를 구현해 낼 EUV 장비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다.문제는 ASML이 1년에 생산하는 EUV 노광 장비는 불과 45대 안팎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물론 미국 인텔과 대만 TSMC도 ASML의 EUV 노광 장비를 사기 위해 선납금까지 지급하며 대기하는 상황이다.

특히 지난해 반도체 쇼티지(공급 부족) 사태를 겪으며 반도체 제조업체들이 잇따라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 생산시설을 짓겠다고 하면서 해당 장비 확보가 파운드리 업체의 경쟁력을 좌우할 정도로 무게감이 커졌다.
ASML EUV 노광장비 [사진=ASML]
올해 미국와 유럽 등에 공장 건설 계획을 발표한 인텔의 팻 겔싱어 CEO는 장비 확보가 생산능력 확대를 발목잡는 요소라는 점을 인정하면서 버닝크 CEO에 직접 연락을 해 ASML 본사에 전문가들을 파견하기도 했다.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2020년 10월 ASML의 네덜란드 본사를 찾아가 버닝크 CEO에게 EUV 장비 공급을 직접 요청하기도 했다. 당시 삼성전자는 "EUV에 최적화된 첨단 반도체 소재를 개발하기 위해 초기부터 ASML과 협력했다"고 말하며 공을 들이는 모습을 보였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