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직접 생산 추진...현지 시설 확보에 열 올리는 바이오 기업들

바이오 기업들의 미국 진출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 국내 생산된 제품을 수출하는 게 아니라 현지에 생산시설을 직접 세우는 쪽으로 사업 전략을 바꾸고 있다. 현지 규제기관과의 협상력과 임상 속도를 끌어올리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바디텍메드는 미국 플로리다주 주정부와 진단키트 생산시설을 현지에 구축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최근 업무 협약을 맺었다. 바디텍메드는 코로나19 자가진단키트 등 일부 진단제품이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사용 승인을 받는 대로 현지법인을 설립해 미국 생산시설 착공을 준비하기로 했다.코로나19 진단키트 공급을 우선 제안 받았지만 이후 심혈관, 암, 호르몬, 감염질환 등 다른 진단제품으로 생산 품목을 확대하겠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바디텍메드는 올 상반기 긴급사용승인(EUA)을 목표로 코로나19 자가진단키트의 미국 임상을 진행 중이다.

진단업체의 미국 생산시설 구축은 이례적이다. 그간 대부분의 업체들은 미국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현지 임상을 따로 진행하되 생산은 국내에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 때문에 임상이나 품목 허가 절차를 놓고 연구시설, FDA 등과의 의사소통에 애를 먹는 경우가 많았다.

아직 미국에서 코로나19 자가진단키트로 허가를 받은 국내 업체는 셀트리온뿐이다. 미국에 본사를 뒀던 코스닥 상장사 엑세스바이오가 지난해 8월 자가진단키트로 FDA에서 EUA를 받으며 미국에서 발빠르게 성과를 냈던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바디텍메드 관계자는 “생산과 임상, 허가 작업 등을 현지에서 한 번에 해결하면 빠른 품목 허가와 유통사 확보가 성패를 가르는 진단키트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며 “플로리다주 의료기관 공급을 시작으로 미국 전역으로 공급망을 넓히겠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중화항체 진단키트로 국내 승인도 준비하면서 항원·항체 진단시장 양쪽에서 풍토병화된 코로나19에 대한 검사 수요를 잡겠다는 구상이다. 여기에 SD바이오센서도 미국·유럽 등에서 생산시설을 갖춘 진단 업체 인수를 검토하고 있는 상황이다.

신약 개발사들도 앞다퉈 미국 생산시설 확보에 나서고 있다. 메디포스트는 창업자인 양윤선 대표가 최대주주 자리를 내놓으면서까지 생산시설 투자금을 유치했다. 이 회사는 지난 17일 국내 사모펀드인 스카이레이크에쿼티파트너스와 크레센도에쿼티파트너스 컨소시엄에서 1400억원을 투자 받기로 했다. 투자금 1400억원 중 850억원을 미국 세포·유전자치료제 위탁개발생산(CDMO) 업체 투자에 쓸 예정이다.
생산시설 가동을 눈앞에 둔 업체들도 있다. 진원생명과학은 올 2분기 중 미국 DNA 생산시설을 가동할 계획이다. 차바이오텍도 미국 텍사스 세포·유전자치료제 CDMO 시설 가동을 앞두고 있다. 지놈앤컴퍼니는 자회사 리스트바이오를 통해 미국 인디애나주에 마이크로바이옴 생산시설을 구축 중이다. 2024년 상반기 완공이 목표다. 여기에 삼성바이오로직스도 미국 바이오시밀러 공장 설립안을 검토 중이다.

바이오 기업들의 미국 CDMO 사업 진출은 임상 속도 가속과 매출 증대라는 두 가지 효과를 보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미국 CDMO 사업을 추진 중인 한 업체 관계자는 “미국 본토에 생산시설을 두면 현지 임상에 쓸 시료를 자체 공급할 수 있어 임상 관리가 더 용이하다”며 “신약이 상용화되기 전까지 CDMO 사업을 통해 수익원을 확보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미국 생산시설 확보에는 상당한 자금이 투입되는 만큼 신약 임상에서 난관에 봉착하게 되면 이러한 투자가 부담으로 돌아올 가능성도 있다. 헬릭스미스는 유전자치료제로 개발 중인 엔젠시스의 미국 상용화를 고려해 2018년 130억원을 들여 우수의약품 제조 및 품질 관리(GMP) 수준을 충족한 미국 DNA 생산시설을 구축했다. 하지만 임상 3상에서 유효성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상용화 일정이 늦어지자 결국 생산시설을 지난해 독일 바커에 1억2000만달러(약 1320억원)에 매각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