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송금 실명제…받는 사람 이름도 등록, 틀리면 못 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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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블룰 시행…달라지는 것은이른바 ‘코인 거래 실명제’로 불리는 트래블룰(travel rule)이 지난 25일 전면 시행됐다. 트래블룰은 이용자가 100만원어치 이상 가상자산 입출금을 요청하면 거래소가 송·수신자 정보를 반드시 확인하도록 한 제도다. 은행에서 돈을 부치면 송금인과 수취인 이름이 남지만 ‘익명성’을 강조한 암호화폐엔 그런 장치가 없었다.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는 2019년 코인을 악용한 돈세탁을 막기 위해 트래블룰 도입을 권고했다. 한국은 특정금융정보법에 따라 세계 최초로 의무화했다.
한국 세계 첫 의무화
암호화폐 거래소
100만원 이상 입출금
송수신자 정보 확인해야
수신자 이름·지갑 주소
확인후 일치해야 송금
일부 거래소 출금 중단
자유거래 내달부터 가능
업비트→바이낸스 출금 ‘일시정지’
코인을 A거래소에서 샀다가 A거래소에서 파는 정도의 단순한 거래만 하는 투자자라면 트래블룰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여러 거래소와 개인 지갑으로 코인을 옮겨가며 거래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금융당국으로부터 가상자산사업자(VASP) 자격을 획득한 국내 주요 거래소는 25일 0시부터 해외 거래소와 개인 지갑으로의 송금 제한을 강화했다. 하지만 거래소마다 세부 규정이 제각각인 데다 준비 상황도 전반적으로 미흡해 한동안 투자자 혼란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업비트에선 100만원 이상의 암호화폐를 고팍스, 프로비트 등 8개 국내 거래소와 업비트 브랜드를 빌려 쓰는 3개 아시아 거래소, OKX, FTX, 바이비트로 송금할 수 있다. 빗썸, 코인원, 코빗 등으로는 코인을 보낼 수 없는 상태다. 바이낸스에서는 업비트로 입금만 가능하다. 양방향 송금은 순차적으로 이뤄질 예정이다. 개인 지갑은 메타마스크만 등록할 수 있다.
빗썸에선 당분간 국내 모든 거래소로 송금이 불가능하며 다음달 초부터 단계적으로 열린다. 해외 거래소는 바이낸스, 코인베이스, 크라켄, FTX 등 14곳에 한해 사전 등록한 본인 계정(화이트리스트)으로 송금이 허용됐다. 개인 지갑은 메타마스크, 페이코인 월렛, 카카오 클립을 등록할 수 있다.
100만원 미만 소액 송금은 예외
트래블룰을 적용하는 금액은 거래소마다 다르다. 업비트, 코인원, 코빗은 100만원 이상 코인 입출금이 대상이다. 100만원에 못 미치는 소액이면 과거처럼 제약 없이 송금할 수 있다. 그렇다고 여러 차례 잘게 쪼개 보내면 거래소에서 ‘수상한 시도’로 찍혀 제지당할 수 있다. 빗썸은 일단 금액에 관계없이 트래블룰을 전면 도입했으나 조만간 100만원 이상으로 대상을 축소할 계획이다.국내 4대 거래소(업비트·빗썸·코빗·코인원) 간 자유로운 코인 이동은 다음달에야 가능해진다. 업비트는 ‘베리파이바스프’, 빗썸·코인원·코빗은 ‘코드’라는 솔루션을 따로 개발했는데 연동이 제때 이뤄지지 않은 탓이다. 이들은 “4월 24일까지 연동을 마무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수수료가 더 들고 번거롭다는 단점이 있지만 개인 지갑을 경유하는 우회로가 있긴 하다. 예컨대 업비트에서 메타마스크로 코인을 보낸 뒤 다시 빗썸으로 옮기는 식이다. 거래소 관계자는 “업체마다 입출금 가능 거래소를 확대하는 중”이라며 “시간이 지나면 혼란이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국내·해외 가격 차 벌어질 수도”
이젠 코인을 보낼 때 ‘받는 사람 이름’을 입력해야 한다는 점도 눈에 띄는 변화다. 정보가 일치하지 않으면 전송이 불가능하다. 업계 관계자는 “오입금 등의 위험이 적어지는 것은 트래블룰의 분명한 장점”이라고 했다. 다만 해외 거래소와 개인 지갑을 활용한 디파이(탈중앙화금융), 대체불가능토큰(NFT) 등의 투자가 위축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복잡한 송금 절차가 이용자에게 진입장벽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다.암호화폐 정보업체 쟁글은 “트래블룰 시행으로 국내외 거래소 간 가격 차이(김치프리미엄)가 커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코인값이 국가마다 다를 때는 싼 곳에서 사다가 비싼 곳에서 파는 재정거래가 일어나며 가격이 맞춰지곤 했다. 특정 거래소만 입출금이 허용되면 이게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쟁글은 또 “시가총액이 작은 암호화폐는 유동성 부족으로 가격 차이가 크게 벌어질 수 있다”며 “투자자들은 ‘가두리’ 피해에 주의해야 한다”고 했다.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