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 "북, 존재감 드러내려 우크라 전쟁중 ICBM 발사"

"핵보유 인정·유리한 대미 협상 노려…한반도 긴장 고조될 것"
북한의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에 미국과 유럽의 주요 외신은 24일(현지시간) 북한이 세계 이목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쏠린 틈을 타 존재감을 드러내려 한 것이라며 한반도 긴장이 더욱 고조될 것으로 전망했다.미국 뉴욕타임스(NYT)는 북한이 2017년 이후 처음으로 장거리 탄도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다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거부권을 가진 국가 간 관계 악화를 이용해 긴장을 고조시킬 드문 기회로 여겼을 것으로 해석했다.

미국 CNN은 북한의 잇따른 미사일 시험은 김 위원장이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요동치는 세계의 힘과 영향력 싸움에서 북한의 존재감을 보여주려 시도한 것으로 본다는 전문가들의 견해를 전했다.

이화여대 국제학부 리프 에릭 이즐리 교수는 "북한은 무시당하는 것을 거부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에 세계 관심이 쏠린 것을 이용해 핵보유국 지위를 기정사실로 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이어 "북한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처럼 공격할 정도는 아니지만 자기방어를 넘어 전후 아시아 안보 질서를 뒤엎으려는 게 북한의 야심"이라고 해설했다.

그러면서 "북한은 경제, 기술적 어려움 속에서도 미사일 능력을 계속 향상해 왔다"며 "국제사회 정책결정자들이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전쟁 대응에 주력하는 동안 북한의 미사일 위협을 뒷전에 둘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면 실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가디언은 북한이 올해 들어 전례 없이 자주 미사일을 시험 발사하는 것은 김 위원장이 핵강국의 지위를 확고히 한 후 더 강한 위치에서 미국과 핵 협상에 나서고자 한다는 뜻을 보여주는 명백한 신호"라고 보도했다.NYT는 북한 ICBM 시험 발사로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곤경에 처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고 해설했다.

대북 강경 노선으로 북한이 한반도를 전쟁 직전 상황으로 몰고 가도록 할지 아니면 결실 없이 끝날 수 있는 김 위원장과의 대화에 다시 나서야 할지를 결정해야 할 시점에 직면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바이든 대통령은 북한에 대해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유사한 정책을 펴왔다.대화의 문은 열어 놓되 협상 테이블로 나오게 하려고 유인책은 제공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이 신문은 북한의 무기 프로그램은 바이든 대통령 이전 4명의 미국 대통령에게 모두 골칫거리였고, 각기 다른 유인책 또는 제재를 통해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 중단을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했다고 소개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핵확산 전문가 비핀 나랑은 북한은 냉전 이후 ICBM과 자칭 수소폭탄 시험을 모두 시행한 유일한 미국의 적대국이라고 말했다.

NYT는 북한이 지난 1월부터 단거리 미사일 발사를 반복해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에 집중하는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 우선순위에서 북한의 위치를 끌어올려 왔다며 이번 ICBM 발사는 대미 관계에서 북한이 내놓은 도발적인 강수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북한의 ICBM 시험 재개로 김 위원장이 미군 기지가 있는 서태평양 괌 인근의 '불의 고리'(ring of fire)에 탄도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다고 위협한 과거 사례처럼 더욱 긴장을 고조시킬 가능성도 제기된다고 전망했다.

CNN은 미국 국방부가 이달 초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관련해 정보, 준비태세, 감시 수집 활동을 강화한다고 발표했다며 이는 바이든 행정부가 미국과 한국·일본 같은 우방을 북한 미사일에서 보호하기 위해 군사태세를 강화해야 한다고 본다는 신호라고 전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NYT에서 "북한은 올해 잇따라 미사일을 시험 발사해 긴장을 고조해 미국에 더 나은 제안을 가지고 대화에 나서도록 압박했다"며 "하지만 미국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이어 "북한은 ICBM 유예 약속을 깸으로써 대화를 뒤로 밀어두고 미국과의 힘 대 힘 대립으로 돌아가고 있다"면서 "북한이 핵 능력을 고도화시키며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는 악순환을 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