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발칵 뒤집은 기술 유출 시도…대만 TSMC선 '간첩죄' [강경주의 IT카페]

[강경주의 IT카페] 42회

삼성전자, 파운드리서 기술 유출 시도 발생해 '초비상'
일본 기시다 내각, '경제안전보장 추진법' 제정 속도
대만, 기술 유출 범죄 '경제 스파이'로 규정하고 엄벌
2019년 9월 삼성전자가 도쿄 시나가와 인터시티 홀에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의 로드맵과 신기술을 소개하는 '삼성 파운드리 포럼(SFF) 2019 재팬'을 개최한 가운데 거래 회사들이 포럼장 주변에 모여 있는 모습. 2019.9.4 [사진=연합뉴스]
삼성전자 현직 직원이 반도체 핵심 기술을 유출하려다 적발돼 산업계의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다. 해외 사례에 비춰볼 때 기술 유출에 대한 국내 당국 처벌이 약해 이 같은 문제가 끊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등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말이 나온다.

삼성전자 "보안 위배 사안 발생…현재 조사 진행 중"

26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부 A직원이 최근 반도체 핵심 기술 유출을 시도한 정황이 드러나 조사를 받고 있다. 이달 초 해킹으로 곤욕을 치른 삼성전자가 또 보안 문제에 휘말린 셈이다.회사 측이 A직원을 붙잡아 진상 조사를 진행하는 가운데 열람 자료의 정확한 범위와 기밀·유출 여부 등은 확인되지 않았다. 유출을 시도한 A직원은 재택근무 중 회사 보안 서버에 있는 대외비를 하루 동안 수백 개 이상 열람해 의심을 샀다. 삼성전자의 원격업무시스템(RBS)은 캡처가 불가능해 A직원은 모니터에 기밀 파일들을 띄워 이를 스마트폰으로 찍은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는 "보안 위배 사안이 발생한 게 맞고 현재 조사를 진행 중"이라며 "초기에 징후를 발견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정확한 것은 더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삼성전자가 미래 먹거리로 적극 육성 중인 파운드리에서 기술 유출 시도가 나와 충격이라는 분위기다. 파운드리는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가장 성장성이 높고 경쟁이 치열한 분야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서초사옥 [사진=연합뉴스]
삼성전자는 지난해 주요 고객사 공급 확대로 최대 매출을 달성했지만 선단 공정 초기 비용 증가 등으로 수익성은 소폭 하락했다. 최근에는 수율(양품 비율)이 고객사 요구에 못 미쳐 퀄컴 등은 경쟁사 TSMC에 생산을 위탁한 것으로 전해져 고객사 이탈에 대한 우려도 높아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글로벌 반도체 매출 2위 인텔이 파운드리 시장에 재진출을 선언하고 투자를 늘리는 것도 삼성전자 상황을 복잡하고 만들고 있다. 업계에선 인텔과 삼성전자 간 첨단 공정 기술 격차가 크지만 인텔이 성공적으로 파운드리에 안착할 경우 TSMC보다 삼성전자에 위협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처럼 경영 환경이 녹록지 않은 가운데 기술 유출 우려까지 불거진 것이다.

"핵심 기술 유출 시도는 국가적 손실…처벌 강화해야"

핵심 분야의 기술 유출 시도는 국가적 손실을 불러오는 만큼 업계에선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해외 주요국들은 각자의 원천 반도체 기술을 지키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전략을 세우고 있다. 중국의 반도체 자립을 견제해 국가 경쟁력에 치명타를 주는 전략을 들고 나온 미국이 대표적이다. 미국은 2020년 중국을 겨냥해 반도체 수출 시 국가 안보 허가를 받도록 했다. 반도체는 미국산 장비·소프트웨어 기술 없이는 사실상 제조가 어려운 형편이다.

지난해 7월에는 네덜란드 정부까지 압박해 ASML이 중국에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 수출을 하지 못하도록 저지했다. EUV 장비는 반도체 초미세 공정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설비로, ASML이 독점 공급하고 있어 사실상 중국의 반도체 첨단화를 막은 것이나 다름없다.

반도체 왕국 재건을 꿈꾸는 일본도 기술 유출 단속에 적극적이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내각은 첨단 기술 유출자를 2년 이하 징역형으로 처벌하는 내용의 경제안전보장 추진법 제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일본은 1976년부터 일본 기술자 1000명 이상이 한국·중국·대만 기업으로 이직한 탓에 반도체 산업 주도권을 뺏겼다고 판단하고 있다.
TSMC를 보유한 대만 정부는 더 강력한 정책을 수립하고 있다. 대만 행정원은 지난달 17일 국가안전법 개정안을 통과시켜 경제 부문 스파이 혐의를 받는 이들에 대해 최장 12년의 징역형과 약 43억원 수준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한 '국가안전법과 양안관계조례 개정안'을 동시에 통과시켰다.

법안에는 국가핵심기술 유출에 대한 '경제 간첩죄'와 '영업비밀 국외유출죄'가 추가됐다. 이번 개정안은 국가의 핵심 기술을 빼돌리는 일명 '경제 스파이'에 대한 범죄 구속력을 강화하고, 해외에 근무하는 국가 핵심 기술 업무자들 중 규정 위반자에 대한 처벌 수준을 높이는데 집중했다.

뤄빙청 대만 행정원 대변인은 "하이테크 산업은 미래의 대만을 이끌 주요 분야"라며 "최근 몇 년 간 대만 신기술 유출을 노린 검은 손의 접근은 매우 심각한 수준으로 보고됐다"고 진단했다. 이어 "의도적으로 대만의 첨단 기술 인재를 영입하고 이를 통해 대만의 핵심 기술을 훔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기술을 악용해 역으로 대만 경제에 불법 침투하거나 대규모 자본으로 대만 경제를 흔들려는 사건이 다수 목격됐다"고 지적했다.

한국, 반도체·배터리 등 국가핵심기술 지정

한국도 기술을 유출한 경우 산업기술보호법을 적용해 3년 이상의 징역 또는 15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다만 대만 등과 비교할 때 처벌이 경미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된다.

이번 사례에서 보듯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밀정보 탈취전은 심각하다. 각국 정부의 핵심기술 육성 지원과 인재 쟁탈전이 치열해지면서 기밀정보 탈취·유출 가능성도 더 높아졌다.

경찰청에 따르면 국내 산업기술 유출 건수는 지난 5년 간(2017~2021년) 45건에 달했다. 이후 2019년 산업기술 유출 근절 대책과 함께 유출 시 처벌 수준을 높이는 내용의 처벌이 뒤따르면서 2019년과 2020년 각각 6건, 7건을 기록해 한 자릿수로 내려갔다가 지난해 다시 10건으로 늘어났다. 유출된 기술 유형을 산업 기술 외에 영업 기밀까지 확장하면 피해는 확 늘어난다. 같은 기간 유출 사건 발생건수와 피해 규모는 총 593건, 22조원에 달한다.
삼성전자 반도체 화성 사업장 [사진=삼성전자]
정부는 뒤늦게 지난해 말 반도체·디스플레이·배터리 등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국내 주요 기술들을 국가 핵심기술로 추가 지정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리고 관련 작업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올 상반기 안으로 추가 지정될 국가핵심기술에는 반도체 분야가 대거 빠졌다.

오는 8월 '국가첨단전략산업 경쟁력 강화 및 보호에 관한 특별조치법' 시행을 앞두고 있어 법안 시행 이후에야 반도체 분야 국가핵심기술 추가가 가능하다. '반도체특별법'이라고도 불리는 이 법안은 하위법령 제정안이 오는 5월2일까지 입법예고된 상태로 이제 막 의견 수렴에 들어간 상황이다.업계 관계자는 "당국이 산업 기술 유출 사범을 근절하기 위한 대응책 마련에 나서는 등 기술 차이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가 됐다"며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역시 핵심 기술 유출 대응 강화를 공약으로 내건 만큼 이제부터라도 직업 윤리 강화와 기술 책임에 대한 교육을 본격적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