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제품’은 모두 믿을 만할까

환경 규제가 생산 공정 중심에서 제품 중심으로 옮겨가면서 친환경 제품 개발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친환경 제품 구별은 쉽지 않다. 재생·재활용 제품이라도 다량의 화학물질과 물을 사용한다면 환경성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렵다
[한경ESG] 환경경영 ABC ⑨
무림의 플라스틱·비닐 대체 친환경 종이 제품. 사진=무림 제공
기업의 환경 이슈가 생산공정에서 제품 중심으로 옮겨감에 따라 환경경영에서도 제품의 환경성에 더 많은 전략적 관심을 갖게 되었다. 정부, 소비자, 환경단체 등 주요 이해관계자의 제품 환경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기업으로서는 친환경 제품으로의 전환이 시급한 과제가 된 것이다. 친환경 제품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된 배경으로는 제품에 대한 환경규제 강화, 기업 경쟁력 제고, 소비자의 제품 환경정보 요구 등을 들 수 있다.환경규제, 공정에서 제품으로

1990년대부터 환경 성과를 개선하고 기업의 경쟁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공정 중심에서 제품 중심으로의 전략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점차 확산했다. 이는 곧 여러 국가의 환경정책에도 반영되기 시작해 유럽을 비롯한 선진국의 환경규제가 공정 중심에서 제품 중심으로 폭넓게 변화해왔다. 대표적 제품 환경규제로는 EU의 에너지 관련 제품 친환경 설계 규정(ErP), 전기·전자 장비 폐기물 처리 지침(WEEE), 유해 물질 사용 제한 지침(RoHS), 폐차 처리 지침(ELV) 등이 있다. 이러한 제품 중심의 환경규제는 특히 자동차·전자 등 주요 산업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며, 관련 기업이 친환경 제품 개발을 핵심 경영 전략으로 삼게 되었다.

친환경 제품 개발은 비용 절감이나 매출액 증대 등 경쟁력 향상에도 필수 요소가 되고 있다. 부품 수를 줄이거나 재활용 가능한 부품 사용, 유해 물질을 사용하지 않는 제품 생산 등으로 생산원가를 절감하고, 친환경 제품 개발·출시로 소비자의 적극적 구매 유도 및 친환경 이미지 제고, 선제적 제품 환경규제 대응으로 새로운 시장 선점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여기에는 소비자의 변화도 한몫한다. 과거에는 제품 구매 시 디자인·품질·가격 등을 주로 고려했으나, 이제는 환경까지 생각하는 소비자가 많아졌다. 제품 환경성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제품의 환경정보 공개에 대한 소비자의 요구도 늘고 있다. 각국에서 시행하는 환경마크 제도는 소비자에게 제품의 환경성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친환경 소비 확산에 일조하고 있다.친환경 제품은 ‘전통적 또는 경쟁 제품에 비해 환경성이 현저하게 우수한 제품’으로 정의할 수 있다. 따라서 친환경 제품은 절대적 개념이 아닌, 상대적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 즉 제품의 재활용 가능성, 에너지 효율, 사용 및 폐기 과정에서의 안전성, 내구성, 포장 및 원재료의 환경영향 등 다양한 측면에서 환경성이 비교적 우수한 제품이란 뜻이다. 제품의 환경성은 원료 구매부터 폐기에 이르는 전과정에 대한 평가로 차별화가 가능하며, 친환경 제품은 전과정에 걸쳐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은 제품이라고 할 수 있다.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제품의 환경성은 전과정의 각 단계에 연계된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 평가해야 한다.
서울 성동구 LAR 매장에서 직원이 폐페트병 소재로 만든 운동화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종이 빨대, 과연 친환경적일까하지만 이처럼 다양한 요소를 모두 고려해 친환경 제품을 구별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흔히 재생·재활용품은 친환경 제품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과정에서 다량의 화학물질과 물을 사용한다면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을 수도 있다. 플라스틱과 종이를 두고도 논란이 많다. 플라스틱 빨대의 대안으로 제시된 종이 빨대가 기능성은 물론 환경 측면에서도 결코 우수하지 않다는 것이 한 예다. 환경 인프라에 따라서도 판단이 다를 수 있다. 생분해성 플라스틱이라 할지라도 폐기물 처리를 주로 소각에 의존하는 지역에서는 환경적 우수성을 보장받기 어렵다.

따라서 기업이 제품의 환경성을 분석·평가해 전략적 의사결정을 하려면 평가 요소에 대한 과학적 근거와 환경 이슈에 대한 국제적 논의 동향, 정부의 환경정책 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또한 제품의 환경성과 경제성을 동시에 향상시키고자 할 때 제품 전과정에서 단계별 환경영향의 편차가 심하거나 그 기준이 상충할 수도 있는 만큼 주의가 필요하다.

국제표준화기구(ISO)는 제품이나 서비스의 환경에 대한 영향을 줄이는 동시에 경제성을 확보하는 데 필요한 사항을 담은 ‘제품 디자인에서의 환경 측면 통합’이라는 TR(Technical Report)을 발표한 바 있다. 이에 따르면 우선 제품 설계 및 개발의 시작 단계에서 환경성을 충분히 고려하는 것이 효율적이므로 초기 대응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또한 제품 환경성 향상은 전과정에 걸친 환경영향 감소를 의미하므로 제품 설계 단계부터 전과정에 걸친 환경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는 점과 환경성 향상을 위한 새로운 방안이라도 제품 본래의 기능에 부정적 영향을 초래해서는 곤란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 외에도 제품의 기본 성능, 품질, 가격 등과 함께 다양한 환경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다중 기준(multiple‐criteria) 적용의 필요성, 환경영향의 범주, 환경성과 경제성 및 사회성, 환경성과 기술 및 품질 등의 조화를 주요 내용으로 한다.

이병욱 전 환경부 차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