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그대의 절망을 비추다, 뭉크[김희경의 7과 3의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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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이 그림을 알고 좋아합니다. 노르웨이 출신의 화가 에드바르 뭉크(1863~1944)의 '절규'라는 작품이죠. 인기가 높은 만큼 패러디도 숱하게 이뤄졌습니다. 사람들은 대체 왜 절망과 공포만이 가득한 이 그림에 열광하는 걸까요. 생각해 보면 살면서 저런 표정을 한 번쯤은 지어봤던 것 같습니다. 겉으로 비명을 지르진 않았어도, 속으로는 크게 좌절하면서 소리를 지르고 싶었던 순간도 정말 많았죠. '절규'를 보면 '아, 내 마음도 그랬지'라며 그 순간이 떠오르는 것만 같습니다. 어쩌면 당시의 고통과 절망을 오랫동안 깊이 묻어둔 채 외면해 온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뭉크는 달랐습니다. 자신의 불안과 매일 마주하며, 그 감정 안으로 지독히 파고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화폭에 고스란히 담아냈죠. 뭉크의 그림에 왠지 공감하게 되고, 위로받게 되는 건 이 때문인 것 같습니다. 뭉크의 흔들리는 초상이 곧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초상인 셈이죠.
뭉크의 몸도 많이 허약했습니다. 잦은 병치레로 학교도 제대로 가지 못했죠. 다행히 뭉크는 우울함을 달래기 위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본격적으로 화가의 길을 가게 됐습니다.
한결같은 고집과 철학 덕분이었을까요. 뭉크는 갈수록 유명해졌습니다. 1892년 뭉크는 독일 베를린에서 처음 개인전을 열었는데요. 예상대로 많은 독일 매체와 비평가들이 혹평을 쏟아냈습니다. 그런데 큰 논란에 오히려 뭉크를 눈여겨보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독일의 일부 예술가들이었죠.
그들은 뭉크가 신화나 역사가 아닌, 오롯이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들의 감정과 감각에 집중했다는 점을 주목했습니다. 인습이나 전통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한 형상과 표현에도 강렬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를 계기로 뭉크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큰 돈도 벌게 됐습니다. 훗날 독일 표현주의의 선구자로도 평가받게 됐죠.
그는 '절규'를 그린 과정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어느 날 저녁, 나는 두 친구와 함께 길을 걷고 있었다. 피곤하고 지친 느낌이 들었다. 해가 저물고 있었고 구름은 피처럼 붉게 변했다. 나는 자연을 뚫고 나오는 절규를 느꼈다. 그 절규는 마치 실제처럼 들렸다."
시적 비유처럼 들리기도 하고, 상상 속 장면을 묘사한 것 같기도 한데요. 하지만 이 극한의 감정은 실제 뭉크가 느낀 것이었습니다. 뭉크의 심연에서 절망과 불안이 솟구쳐 나오고, 그 감정으로 온 세상이 핏빛으로 물든 듯한 기분이 들었던 거죠.
바로 눈 앞까지 죽음이 찾아온 듯한 공포도 그를 집어삼키고 있었습니다. 뭉크는 어머니와 누나에 이어 20대에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30대엔 남동생마저 세상을 떠났죠. 가족들을 연이어 떠나보낸 괴로움과 슬픔, 자신도 곧장 죽음에 이를 것만 같다는 불안에 얼마나 무섭고 힘들었을까요.
하지만 다행히도 뭉크는 오래오래 살았습니다. 81살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죠. 그는 평생 총 2만여 점에 달하는 그림을 그렸는데요. 끊임없는 작품 활동 덕분에 노년엔 조금씩 안정을 되찾기도 했습니다. 세상을 떠날 땐 자신의 모든 작품과 재산을 오슬로 시에 기증하고 평화롭게 눈을 감았습니다.
그의 어두운 작품들이 오래도록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이유는 누구보다 자신의 감정을 충실하게 들여다보고, 표현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건 아마도 스스로를 매우 아끼고 사랑했기에 가능했겠죠.
뭉크의 작품들을 보며 지금 이 순간 우리들의 마음을 떠올려 봅니다. 자신도 알게 모르게 좌절감과 불안, 공포를 품고 있진 않으셨나요.오늘만큼은 그 감정들을 직시하고, 스스로에게 토닥토닥 위로를 건네는 건 어떨까요. 그렇게, 그럼에도 이 잔인하고 찬란한 하루를 거뜬히 살아내야 하니까요.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