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위 매물 줄어" vs "차값 오를 것"…중고차 시장 엇갈린 전망

정부, 대기업 중고차 판매업 허용

"신뢰도 있는 상품, 소비자 접근성 높아져"
"200개 항목 품질 검사로 '사기 매물' 감소"

"매물 쏠림 현상 나타나면 오히려 가격 올라"
"중고차 값 상승, 신차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수도"
서울 장안평중고차매매시장. 사진=연합뉴스
정부가 대기업의 중고차 판매업 진출을 허용하기로 하면서 국내 중고차 시장이 어떤 변화를 맞을지 소비자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동안 중고차 시장의 고질병으로 지적됐던 '허위·미끼 매물'이 줄어 시장의 신뢰도가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반면 자금력을 앞세운 대기업이 소위 '알짜 매물'을 끌어모을 경우 차 값이 오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고차, '신차' 처럼 믿고 살 수 있을 것"

25일 업계에 따르면 중고차 시장 진출을 공식적으로 선언한 대기업은 현대차와 롯데렌탈 등 2곳이다. 대기업 그룹에 속한 대표적인 제조사와 유통사가 한 곳씩 있는 셈이다.현대차는 빠르면 올 상반기, 늦어도 연내에는 사업을 시작할 계획이다. 기아는 이미 중고차 사업자 등록을 마쳤고, 사업 방향성 공개를 준비 중이다. 한국지엠(한국GM)·르노코리아(구 르노삼성) 등도 구체적인 사업 검토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대기업이 중고차 시장에 진입할 경우 신뢰도 있는 상품에 대한 소비자 접근성이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 7일 발표한 중고차 사업 전략에서 "구매 후 5년 이내이면서 주행거리 10만km 이내인 자사 브랜드 차량을 200개 항목 품질 검사를 거쳐 판매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현대차 인증중고차 가상 전시장의 오감정보서비스. 현대차 제공
현대차는 이 같이 확보한 매물을 온라인에 선보인 뒤 차량에 대한 정보를 소비자에게 최대한 공개할 계획이다. 우선 360도 가상현실(VR) 기능을 구축해 차량 상태를 실제로 보는 것처럼 자세히 보여줄 예정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초고화질 이미지로 시트의 질감과 타이어 마모도까지 보여줄 예정"이라고 했다.전국 거점에는 '무인 딜리버리 타워'도 세울 예정이다. 미국 카바나(Cavana)의 '중고차 자판기'와 비슷한 개념이다. 이곳에서 소비자는 차를 직접 시승해볼 수 있고 애플리케이션(앱)으로 구매하면 곧바로 출고도 할 수 있게 된다. 현대차는 소비자로부터 매입한 차량의 정밀 진단·정비·상품화를 위해 '인증중고차 전용 하이테크센터'도 세운다.

이미 렌터카 사업을 하고 있던 롯데렌탈은 장·단기 렌터카로 활용하던 차량에 대한 상품화 과정을 거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일반 소비자에게 판매하게 된다. 그동안은 직접 판매할 수 없어 법인 차량을 딜러들에게 경매로 판매해왔는데 앞으로는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소비자에게 직접 팔 예정이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 관계자는 "대기업이 뛰어들 경우 거래 관행이나 품질, 정보의 비대칭성 등이 개선돼 가격 산정 시 투명성이 높아질 것"이라며 "역량을 갖춘 제조사가 뛰어들면 지금보다 믿고 구매할 수 있는 매물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중고차 가격은 오를 전망"

지난 24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위치한 종로구 광화문 인근에서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 주최로 현대차·기아의 중고차 시장 진출 반대 집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대기업 진출이 결국 중고차 값 상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다. 자금력을 앞세운 대기업이 상태가 좋은 '알짜 중고차 매물'을 끌어모으게 되고, 이는 공급자 우위 시장으로 변할 수 있어서다. 그동안 중고차 시장은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는 차들이 대기하는 '소비자 우위' 시장이었다. 대기업들이 공급하게 되면 소비자들이 차를 기다리게 되고, 시장의 주도권을 대기업들이 쥐게 되면 가격 상승의 고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 관계자는 "매물 쏠림 현상이 나타나면 소비자 입장에선 오히려 저렴한 매물에 대한 선택의 폭이 좁아질 수 있다"며 "대기업이 불필요한 서비스까지 얹어 판매할 경우 기존보다 10~20%가량 비싼 값에 차를 구매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신차급 매물을 합리적 가격에 접근할 수 있어 소비자 선택지가 늘 것이란 주장도 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 관계자는 "일부 우량 매물의 경우 폭리를 취한다거나, 불량 매물을 속여 파는 문화를 없애는 데 대기업이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일부 딜러들에 의존해서 구매할 수 밖에 없었던 기존 중고차 시장에 소비자도 가격 산정 과정에 접근할 수 있는 '시스템'을 입히는 것"이라고 했다.

대기업이 매물을 확보해 정밀진단 후 정비와 내외관 개선 등을 진행해 잔존가치(특정 상품에서 남은 수명의 가치)가 높아지면 신차 가격이 덩달아 오를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중고차 시세가 오를 경우 신차 가격 책정에 영향을 줄 수 있어서다. 민주노총 경기도중고차딜러지회 관계자는 "대기업 인증 중고차 서비스로 등급(트림)별 대표 매물들의 가격이 오르면 이는 결국 신차 가격의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소비자 권익에 침해가 올 수 있다"고 했다.

대기업들은 이 같은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상생안을 지키겠다는 방침이다. 현대차의 경우 중고차 시장에서 올해 2.5%, 2023년 3.6%, 2024년 5.1%까지만 점유율을 제한하기로 했다. 현재 중고차 1위 기업 케이카의 시장점유율이 4% 수준임을 감안하면 기존 업계에서 우려할 정도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현대차는 또 중고차 매입 때 타사 브랜드나 연식이 오래된 차라도 인수해'인증 중고차'로 판매할 차만 남기고, 나머지는 경매 시장이나 기존 중고차 딜러들에게 넘길 계획이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