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 경계에 선 병원생활…15세 소년의 선택은

2022 한경 신춘문예 당선작 '방학' 출간

슈퍼결핵에 걸린 주인공 건수
냉소적이고 되바라진 캐릭터
소년의 말에 어른들은 당황

작가 최설 자전적 경험 녹여내
결핵병원의 디테일 살려
"10년 묵은 숙제 털어내 홀가분"
2022 한경 신춘문예 장편소설 부문 당선자인 최설 작가가 결핵에 걸려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자신의 경험을 반영해 쓴 작품 《방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영우 기자
“오늘 방학이 끝났다. 하지만 나는 학교에 가지 않았다. 대신 아빠가 살고 있는 병원에 왔다. 아빠가 보고 싶어서 온 것은 아니다. 나는 아빠와 같은 병에 걸렸고, 단지 그 이유 때문에 온 것이다.”

2022 한경 신춘문예 장편소설 부문 당선작인 최설 작가의 《방학》(마시멜로)은 이렇게 시작한다. 첫 문장부터 궁금증을 유발하며 책을 펼쳐 든 자리에서 끝까지 읽게 만드는 흡입력을 지녔다. 소설의 주인공은 중학교 2학년 건수. 그는 어떤 약도 듣지 않는 슈퍼결핵(광범위 약제내성 결핵)에 걸렸다. 그래서 따뜻한 남쪽에 있는 국립결핵병원에 입원하게 된 것이다.

‘18일’이란 제목의 두 번째 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새엄마는 아침 7시쯤 왔는데 건우는 데려오지 않았다. 그리고 8시쯤 아빠를 차에 넣고 나를 따로 불러서는 만원짜리 세 장을 쥐여 주었다. 그러다 엉엉 울기 시작했고, 그래서 이번에는 내 쪽에서 그녀의 손에 티슈를 왕창 쥐여 주어야 했다.” 자신이 입원한 지 18일 만에 아빠가 사망했다는 뜻이다. 소설은 이렇게 범상치 않은 문장들로 가득하다. 같은 말을 뻔하지 않게 전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천부적인 재능이 아니라면 작가가 오랜 시간 공들인 결과물일 것이다.

소설의 의외성은 캐릭터에서도 나타난다. 열다섯 살 주인공의 시선은 냉소적이며 삶에 대해 심드렁하다. 또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해맑고 순수한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새엄마의 “건강해라”는 말에 소년은 “그럴 수 없는 거 아시잖아요”라고 답한다. 결핵 환자를 차가운 눈으로 보는 세상에 대해선 “스스로를 올바른 예수쟁이라 여기는 순진해 빠진 사람들을 빼면 다들 멀어지려고만 할 뿐 누구도 가까이서 따뜻한 숨을 주고받으려 하지 않으니까”라고 생각한다. 1차 약도, 2차 약도 듣지 않고 주변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것을 본 소년에게 세상은 곧 작별해야 할 세계였다. 어찌 되든 상관없었다. 세상이 하찮다고 생각해야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었기 때문에 나타난 냉소다.

범상치 않은 문장과 캐릭터의 만남은 곳곳에서 웃음을 자아낸다. 냉소적이고 되바라진 소년의 말에 어른들은 당황하면서 말을 잇지 못한다. 조금의 꾸밈도 없이 진실을 그대로 말해버리기 때문이다. 친해지고 싶은 신부가 본관 산책로가 좋다고 말하자 건수는 “그걸 누가 모르나요. 내가 내려가면 균 날린다고 거기 사람들이 싫어하니까 그렇지”라고 무안을 준다. 친엄마가 쓰러져 있던 것을 어떻게 집주인이 발견했느냐는 물음에 “그거야……뭐, 집세가 많이 밀렸나 보죠”라고 말해버린다.

신춘문예 심사를 맡았던 김형중 문학평론가(조선대 교수)는 “가장 참담한 처지에 빠진 주체가 그 상태를 도저히 역전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전제하고 뱉은 말이 유머가 된다”며 “그런 점에서 주인공 건수는 매력적인 악동 유머리스트”라고 설명했다.건수는 비슷한 처지의 소녀 강희를 만나게 되면서 마음이 끌린다. 결핵으로 엄마를 잃은 강희는 그 자신도 같은 병에 걸려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 어느 날 ‘자이복스’라는 신약이 개발되고, 병원 환자 몇 명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진행하면서 두 사람은 갈림길에 서게 된다.

소설에는 실제 결핵병원에서 지내본 사람이 아니면 묘사하기 어려운 디테일이 살아있다. 결핵환자로서 실제로 병원에서 지낸 최 작가의 경험 덕분이다. 그는 스물세 살에 이 작품에서처럼 약이 듣지 않는 슈퍼결핵에 걸려 죽을 고비에 놓였다. ‘이렇게 죽기는 아쉬우니 책이라도 한 권 남겨놓자’라는 마음으로 쓴 것이 ‘소년의 일생’이라는 단편이다. 그는 이 단편을 묵혀두다 지난해 완전히 새로 써 장편 《방학》을 완성했다. 최 작가는 “첫 문장부터 모든 문장을 새로 썼는데 10년 묵은 숙제를 털어낸 것 같아 홀가분하다”며 “앞으로 더 좋은 작품을 쓰겠다”고 말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