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의 미래를 바꾸는 키 체인저 ‘아레나 싱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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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의 경쟁사는 델타항공 아닌 줌”[브랜드 인사이트]
기존 산업 구분을 뛰어넘는 아레나 관점 중요해져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뜻의 고사성어다. 인류는 3000년 전부터 생존을 위해 경쟁사를 분석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인터브랜드는 비즈니스에 위태로움이 없도록 하고 미래 경쟁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21세기의 지피지기 백전불태, ‘아레나 싱킹(arena thinking)’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전제 조건은 소비자의 본질적인 니즈 파악
아레나 싱킹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전통적으로 같은 산업군에 자리하며 동일한 유형의 제품·서비스·경험을 제공하는 브랜드만을 경쟁사라고 지칭해 왔지만 삶의 모습이 변화됨에 따라 경쟁 구도에 대한 관점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이제 우리는 브랜드의 모든 관점을 업의 형태로 구분하는 ‘섹터(sector)’, ‘인더스트리(industry)’, ‘카테고리(category)’가 아니라 ‘아레나(arena)’로 재구성해야 한다.
대한항공의 경쟁사를 떠올리면 대부분 아메리칸항공·델타항공 등의 항공사를 먼저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화상 회의 서비스나 전자 문서 결재 기업도 경쟁사가 될 수 있다면 어떨까. 실제로 출장을 떠나는 기업 고객은 항공사의 주요 수입원 중 큰 파이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가 집중해야 할 부분은 이 고객들은 단순히 ‘이동’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거래처와의 계약서 작성과 같은 ‘관계 형성’을 목적으로 항공사를 이용한다는 사실이다.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유행) 이후의 비대면 트렌드 활성화는 앞서 살펴본 기업 고객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활로를 확장했고 화상으로 거래처를 만날 수 있는 줌이나 전자 계약 체결을 가능하게 하는 도큐사인이 항공사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따라서 항공사에서 경쟁사 분석을 진행할 때는 ‘에어라인’이라는 카테고리를 넘어 이동에 초점을 맞춘 ‘무브’ 아레나에 대한 관점이 필요해진 것이다.
대한항공의 경쟁사로 줌을 고려하게 될 만큼 현재 산업간 경계가 빠르게 허물어지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서 브랜드의 관점을 아레나로 재구성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전제 조건이 있다. ‘소비자의 니즈 혹은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가’다.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최고경영자(CEO)는 자사의 경쟁 상대로 인간의 수면 시간을 얘기한 바 있다. 사람들이 흥미로운 콘텐츠를 보고 싶다는 욕구가 있다면 밤을 새워서라도 본다는 것이다.
이런 아레나 싱킹에 따라 넷플릭스는 빅데이터를 활용해 소비자들이 흥미로워할 주제와 전개의 콘텐츠를 제작하고 나아가 한 편씩 공개하던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시즌 하나를 통째로 업로드했다.
소비자들은 넷플릭스의 방식에 열광하며 말 그대로 ‘밤을 새워 몰아 보기’라는 새로운 콘텐츠 소비 트렌드를 만들어 냈다. 사람들이 잠을 포기하면서까지 보고 싶어 하는 콘텐츠를 만들고 유통하는 데 집중하는 넷플릭스처럼 브랜드 성장에 어려움을 겪거나 미래 성장 동력을 구축하기 위해 고민하는 많은 브랜드에 카테고리가 아니라 고객 경험 과정에서 일어나는 소비자의 니즈를 충족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솔루션이 내려지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더더욱 소비자가 가지는 본질적인 니즈를 파악하고 그 니즈를 충족하는 제품과 서비스·경험을 제공하는 브랜드가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인터브랜드는 사람들이 가지는 기본적인 니즈와 욕구를 기반으로 아레나를 분류한다. 플레이(play), 익스프레스(express), 무브(move), 커넥트(connect), 런(learn), 테이스트(taste) 등 아레나의 범주는 다양하다. 이는 놀고 표현하고 물리적인 이동을 넘어 심리적인 거리를 좁히기 위해 행동하고 타인과 연결되고 배우고 맛보는 등 사람들이 가지는 기본적인 니즈와 맞닿아 있다.
핵심은 한계를 두지 않는 것
대표적인 아레나 중 하나는 플레이 아레나다. 플레이 아레나는 브랜드가 소비자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가장 대표적인 영역 중 하나다.
이탈리아의 유서 깊은 프로 축구 클럽인 유벤투스는 전 세계를 무대로 더 많은 팬과 소통하길 원했다. 지금까지 팀에 충성하고 있는 서포터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축구에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도 유벤투스의 브랜드 가치와 역사를 알리는 방안을 마련하고자 했다.
인터브랜드 밀란 오피스는 유벤투스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서는 새로운 포지셔닝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아레나 싱킹에 따라 인터브랜드는 유벤투스를 스포츠 브랜드가 아닌 사람들과 플레이할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이자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새롭게 정의했다. 유벤투스는 브랜드 콘셉트부터 비주얼 아이덴티티, 운영 전략까지 다방면에서 큰 변화를 맞이했다.
오랜 역사를 지닌 브랜드인 만큼 대대적인 변화에 나서기까지 유벤투스에는 큰 결심이 필요했다. 실비오 비가토 유벤투스 최고브랜드책임자(CBO)는 새로운 유벤투스의 모습에 대해 “축구의 미래에 대한 우리만의 비전을 담아냈다”고 말했다. 다양한 채널에서 팬들을 만나고 그들을 즐겁게 하는 데 집중하겠다는 포부를 담은 발언이다.
실제로 유벤투스는 연고지인 이탈리아 토리노에 ‘J 뮤지엄’, ‘J 호텔’ 등의 오프라인 접점을 만들어 일상에 즐거움을 주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플레이 아레나의 접근으로 기존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글로벌 관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사례로 삼성바이오에피스를 들 수 있다. 인터브랜드 서울 오피스는 확대되는 바이오 의약품 시장에서 차별화할 수 있는 삼성바이오에피스만의 패키지 아이덴티티를 플레이 아레나적 접근을 통해 수립했다.
고객의 본질적인 즐거움을 되찾아 준다는 브랜드 콘셉트 ‘퓨어 조이(pure joy)’를 기반으로 헬스케어 산업의 한계를 벗어나 아트 테라피의 요소를 적용한 패키지 디자인을 선보였다. 세계적 권위의 iF 디자인 어워드, 레드닷 어워드 등 여러 디자인 어워드에서 수상하며 우수성을 인정받기도 했다.
물론 브랜드가 한 가지 아레나에 국한된 접근을 할 필요는 없다. 이미 여러 아레나에서 활발한 행보를 보이는 브랜드도 있다. 이탈리아 스쿠터 브랜드 베스파는 오토모티브 산업을 대표해 왔다.
하지만 베스파는 브랜드의 명맥을 잇는 데 그치지 않고 순수 전기 스쿠터, 에이즈 퇴치를 위한 자선 단체와의 협업 에디션 출시 등 도전적 행보를 보이며 무브·플레이·익스프레스 아레나에서 두각을 보였다.
최근에는 가수 저스틴 비버와의 협업을 예고하기도 했다. 음악을 통해 사람들의 일상 속에 즐거움을 부여하며 함께 플레이하는 브랜드로 자리 잡고자 하는 열망을 나타낸 것이다. 여러 아레나 싱킹을 통해 브랜드를 재정의하고 고객들의 본질적 니즈를 충족시킨다면 브랜드는 더욱 입체적인 성장 활로를 얻게 될 것이다.
오늘날의 소비자는 제품이나 서비스의 질적인 측면만 살펴보고 브랜드를 선택하지 않는다. 그 브랜드를 사용함으로써 자신이 어떤 사람으로 비쳐지는지 브랜드가 자신의 가치관을 표현하고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 꼼꼼히 살핀다.
이에 따라 브랜드는 기존의 산업 구분을 넘어 경쟁 지형을 다르게 바라보는 아레나를 이해하고 변화를 모색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새로운 기회를 포착하고 소비자의 니즈를 충족시키는 경험을 제공하는 플레이어의 역할을 수행하며 브랜드의 미래를 바꾸는 발걸음을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