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재난적 의료비 지원 확대해 치료 사각지대 해소해야

글 백민환 한국다발골수종환우회 회장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 중 하나가 재난적 의료비 지원사업 확대다.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을 경감하는 차원에서다. 재난적 의료비 지원사업은 말 그대로 재난처럼 느껴질 만큼 과도한 부담이 되는 의료비의 일부를 정부에서 지원해 주는 제도다.

이 제도는 2016년 도입된 이후 질병을 겪으며 의료비가 부담돼 고통받는 취약계층 환자들의 든든한 안전망이 될 것이란 기대를 모았다. 특히 희귀 혈액암인 다발골수종처럼 중증·희귀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로선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신약들이 고가인 데다 보험 급여마저 적용되지 않는 애로사항을 겪는다. 그래서 적게는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수억 원까지 자비로 부담하거나 이마저도 불가능하면 아예 치료를 포기해 버려 사각지대로 전락하는 환자들이 적지 않다. 이에 따라 비급여 의료비까지 지원해 주는 재난적 의료비 지원사업의 필요성은 점점 커져 왔다.

하지만 환자들의 기대가 무색하게끔 재난적 의료비 지원사업은 지금까지 반쪽짜리 제도로 운영되고 있다. 지난해 서울시 실태 조사 결과 및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2018년까지 의료비 지원 건수는 점차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중도 탈락하거나 포기하는 건수는 2배 이상 증가했다.

다발골수종은 치료 기간이 긴 데다 고령 환자들이 대다수다. 신청 절차가 복잡하고 관련 요건이 까다롭기 때문에 신청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거나 지원 금액이 부족해 실질적인 혜택이 없다고 호소하는 환자들이 많다. 지원 제도가 있지만 이를 활용할 수 없는 현실은 마치 질병 치료에 적합한 신약이 있지만 보험 급여가 안 돼서 적시에 치료를 받을 수 없는 취약계층 환자들의 어려움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이 같은 상황에서 대통령 당선인이 약속한 재난적 의료비 확대는 가뭄의 단비 같은 소식이다. 제대로 실현만 된다면 그동안 비싼 비급여 치료를 받다가 빈곤층으로 전락하거나 치료를 아예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취약계층 중증·희귀질환자들에게 새로운 기회와 희망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재난적 의료비 사업이 환자들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려면 어떻게 개선돼야 할까.

일단 재난적 의료비 지원사업의 재원이 충분히 마련돼야 한다. 현재 재난적 의료비 사업 예산은 연간 약 500억 원 규모이다. 실손보험조차 가입할 수 없는 소득 하위분위 환자들에까지 혜택이 제공되기 위해서는 최소 1조원이 필요하다. 윤 당선인은 사업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건강보험공단의 출연금 상한선을 기존 전년도 보험료 수입의 1000분의 1에서 100분의 1로 상향 조정하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상한선은 말 그대로 지원 가능한 한도를 규정하는 것이지 실제로 지원을 하겠다는 금액을 뜻하는 건 아니다.

게다가 보장성 확대 정책의 증가로 건강보험 재정의 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공단의 출연금을 무한정 늘릴 수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재난적 의료비 지원을 위한 별도의 재원 마련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위험분담제의 제약사 환급금이나 보건의료 관련 법률 위반에 대한 징벌적 과징금 등을 재난적 의료비로 활용한다면 건보 재정에 부담을 주지 않고도 재원 마련이 가능할 것이다.둘째로 암 등 중증·희귀질환에 대한 지원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현재 재난적 의료비 지원은 입원 시 모든 질환과 외래 시 6대 중증질환을 대상으로 한다. 윤 당선인은 이를 입원 및 외래 구분 없이 모든 질환으로 확대할 것을 공약했다. 재난적 의료비 지원사업을 보다 보편적인 제도로 운영하려는 취지 자체는 바람직하다. 하지만 중증·희귀 질환에 대한 지원조차 충분하지 않은 현재 상황에서 대상질환 확대로 인해 기존 환자들에 대한 지원이 후순위로 밀려서는 안 된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긴급도입의약품 지정에 따라 한국희귀·필수의약품 센터에서 구매가 가능한 의약품에 대해서는 재난적 의료비 지원을 폭넓게 인정해줘야 한다. 혁신적인 치료 효과를 지닌 신약들에 대한 신속한 보험 급여가 가장 먼저 이뤄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보험 급여 과정이 지연되더라도 재난적 의료비 지원으로 환자들의 비급여 본인부담금을 낮출 수 있다면 의료비 부담 때문에 치료를 포기하는 비극적인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세 번째로 사업 관련 지원 한도를 상향하고 신청 절차를 대폭 간소화해야 한다. 윤 당선인은 지원 한도를 1인당 연간 5000만원으로 상향하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이는 환자들이 필요한 수준에 미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치료 기간이 긴 다발골수종 질환의 특성과 표적항암제를 비롯해 1회 치료로 완치까지 기대할 수 있는 원샷 항암제(CAR-T) 등 혁신 신약의 도입까지 고려한다면 환자 1인당 연간 최대 1억 원까지 지원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공단의 엄격한 심사 때문에 상한 금액인 2000만~3000만 원을 전부 지원받는 환자는 30여 명에 불과하다. 이 같은 점에서 지원한도 상향은 크게 문제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환자 또는 보호자가 작성하기에 지나치게 어렵고 복잡한 신청서류 대신 의료기관에서 필요한 자료를 공단에 전달하는 등 신청 절차를 대폭 간소화하고 효율화해야 한다. 의료기관의 사회사업과 담당자가 환자 또는 보호자를 대상으로 제도에 대해 안내하는 등 재난적 의료비 지원사업을 적극적으로 홍보함으로써 보다 많은 환자들이 이 제도를 이용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것도 중요하다.

과거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를 모색했던 보장성 확대 정책은 경증 질환까지 급여의 영역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중증·희귀질환자들에 대한 보장 형평성 문제를 야기했으며 이는 건강보험 재정 악화로 이어졌다. 앞서 강조했듯이 재난적 의료비 지원사업은 재원만 잘 확보된다면 보장성 강화 및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 문제를 모두 해결하면서 환자들의 생명과 직결된 신약에 대한 접근성을 개선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환자들이 대통령 당선인의 재난적 의료비 지원사업 확대 공약에 거는 기대는 매우 크다. 윤 당선인이 약속한 공정과 상식의 대한민국이 질병과 의료비 부담으로 치료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취약계층 환자들에게도 새로운 삶의 기회와 희망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 국민이 건강해야 경제가 원활하게 돌아가고고 나라도 발전할 수 있다. 재난적 의료비 지원 확대는 꼭 이뤄져야 한다. 새 정부의 결단이 필요하다.
<저자 소개>
백민환 한국다발골수종환우회 회장
백민환
연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보건학 석사를 취득했다. 한국 암치료 보장성확대 협력단 위원, 무진장포럼 고문 등을 역임했으며 2010년부터 한국다발골수종환우회(Korea Myeloma Patient Group) 회장을 맡고 있다. 한국다발골수종환우회는 다발골수종으로 투병 중인 환우와 가족, 후원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환우 중심의 의료환경 문화를 만들기 위해 2010년 설립된 국내 최대 다발골수종 관련 비영리 환자단체이다. 주요 추진 사업으로는 △필요 고가 의약품 보험급여 △암환자 산정특례제도 개선 △투병정보 제공 및 상담 지원 △다발성골수종 환우의 권익 보호 △환우의 자조모임 및 지역모임 지원 활동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