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 내리느니 집 비워둡니다"…잠실 '엘리트'서 벌어진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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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주인·세입자 간 벌어진 가격 눈높이"대단지 아파트 가운데 빈집이 꽤 있어요. 집주인이 원하는 가격에 월세를 내놨지만, 실수요자들이 찾지 않으면서 빈 상태로 유지되고 있는 겁니다."(서울 송파구 잠실동에 있는 한 부동산 공인 중개 대표)
"수개월째 비어있는 집도 있어"
부작용 많은 임대차 3법
인수위 "폐지·축소 등 검토"
서울 송파구 잠실동에 있는 대장 아파트 ‘엘리트’(엘스·리센츠·트리지움)에 집주인도, 세입자도 살지 않고 있는 빈집이 꽤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집에 문제가 있어 살지 않는 게 아니다. 집주인이 원하는 가격에 월세를 받고 싶어 하고, 세입자는 임대료로 더 저렴한 가격을 원하다 보니 벌어진 현상이다.집주인들은 보유세 부담을 전가할 세입자를 기다리고 있다. 한 번 계약을 체결하면 4년가량의 임차를 줘야 하는 '임대차 3법' 탓에 임차인을 골라 들이는 셈이다. 빈집이 늘어나다 보니 '임대차 3법만 아니면 매물이 더 나올 것'이라는 얘기가 심심찮게 나온다.
29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송파구 잠실동에 있는 ‘잠실엘스’ 전용 84㎡는 지난 19일 보증금 10억원에 월세 70만원에, 지난 17일엔 같은 면적대가 보증금 5억원에 월세 160만원에 체결됐다. 이 면적대는 지난 1월 보증금 5000만원에 월세 400만원으로 올해 들어 가장 높은 수준의 월세 계약을 맺었다.
이달 들어 '잠실엘스'에서 체결된 계약 중 공개된 내용은 총 15건인데 이 가운데 조금이라도 월세를 낀 계약은 8건으로 전체 계약의 절반 이상을 기록했다. '리센츠'나 '트리지움'도 비슷하다. '리센츠'에서 맺어진 월세 계약은 24건으로 공개된 전체 계약 총 44건의 54.44%를, '트리지움' 월세 계약은 모두 9건으로 전체 계약(12건)의 75.00%를 차지했다.‘잠실엘스’를 보유한 한 집주인 A씨도 수개월째 집을 비워두고 있다. 원하는 가격에 세입자를 찾고 싶은데 아직 입주를 희망하는 세입자가 나타나지 않아서다. 그는 "당장 자금이 급한 게 없고 보증금이 필요한 게 아니라 월세가 필요한 부분"이라며 "‘언젠가 계약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집을 비워주고 있다"고 말했다.
잠실동에 있는 B 공인 중개 관계자는 “수요와 공급이 맞아떨어져야 거래가 되는데 집주인들이 제시하는 가격과 실수요자들이 원하는 가격이 맞지 않으니 빈집으로 있는 경우가 꽤 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전세 계약갱신청구권이 끝나는 오는 7월 전셋값 폭등으로 월세 물건도 소화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깔려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C 공인 중개 관계자는 "당장은 집이 비어있어도 오는 7월 계약갱신청구권이 끝나면 전셋값이 폭등할 텐데 그때는 전셋값을 충당하지 못하는 실수요자들이 월세를 찾을 가능성이 높다"며 "집주인들도 이런 점을 고려하고 굳이 가격을 내리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한편 이런 현상은 문재인 정부가 내놓은 부동산 정책 가운데 하나인 ‘임대차 3법’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세입자들의 부담을 덜기 위해 시행된 임대차 3법은 전셋값 상승, 월세 거래 폭등 등의 부작용을 낳았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이번 정부가 들어선 2017년 5월 이후 지난 21일까지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10.80% 올랐다. 평균 월세도 같은 기간 89만3000원에서 125만2000원으로 40.20% 뛰었다.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도 늘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전체 아파트 매매에서 월세 거래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7년 26.07%에서 지난해 37.64%로 11.55%포인트 늘어났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임대차 3법이 시장에 상당한 혼선을 주고 있다며 폐지·축소 등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 원일희 인수위 수석부대변인은 전날 통의동 인수위 사무실 정례 브리핑에서 "경제2분과의 국토교통부 업무보고에서 임대차법 개선 검토가 다양하게 이뤄졌다"며 "임대차 3법 폐지부터 대상 축소까지 다양한 의견이 제시된 상태"라고 설명했다.그러면서 "임대차 3법이 시장의 혼란을 주고 있다는 문제의식과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방향은 맞고 시장 상황과 입법 여건을 고려해 단계적으로 추진할 방침이라는 해당 분과의 설명"이라고 부연했다.
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