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용 페트, 활용 범위 넓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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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식품업체들이 재활용 소재를 활용한 식품 용기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정부가 식품 용기에 활용할 수 있는 재활용 페트 범위를 '물리적 재활용'으로 확대하면서다. 포장재로만 사용했던 재활용 소재를 식품 용기로 활용하는 기업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한경ESG] ESG NOW국내 식품업체들이 재활용 페트(PET)를 사용한 플라스틱 용기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정부가 식품 용기에 활용할 수 있는 재활용 페트 범위를 확대하면서 생긴 변화다. 포장재로만 사용하던 재활용 소재를 식품 용기로 활용하는 기업이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다.삼다수, 재활용 페트 개발 완료
업계에 따르면 제주삼다수를 생산하는 제주특별자치도개발공사는 최근 재생 페트 용기 개발과 안전성 테스트를 마쳤다. 지난 2월에는 화학적 재활용 페트병 시제품 2만 병을 홍보용으로 제작해 배포했다. 회사 관계자는 “정부 고시 개정을 통해 식품 용기로 활용할 수 있게 된 물리적 재활용 페트도 함께 사용할 계획”이라며 “이미 물리적 재활용 페트병을 만들 수 있는 설비도 갖춘 상태”라고 설명했다.
풀무원은 현재 포장재 등에만 사용하는 재활용 플라스틱을 식품 용기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물리적 재활용 페트의 안전성을 테스트하고 언제, 어떤 제품에 활용할지 등을 결정할 계획이다.식품업계에서 재활용 페트를 활용한 식품 용기 도입에 관심을 갖는 것은 환경부가 지난 2월 24일 투명 페트병을 재활용해 식품 용기로 만들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식품 용기 재생원료 기준’을 확정, 고시했기 때문이다. 물리적 재활용 페트는 폐플라스틱 회수, 색상 선별, 파쇄, 세척, 건조 과정을 거쳐 만든 재생 원료 플레이크에 열을 가해 생산한 제품이다. 플라스틱의 화학적 구조를 바꾸는 방식의 화학적 재활용 페트에 비해 생산공정이 비교적 단순하다는 장점이 있다. 물리적 재활용 방식으로 제작한 페트병 제품의 생산 단가는 일반 페트병 제품의 1.5배 수준이다.
화학적 재활용 플라스틱은 플라스틱의 화학구조 자체를 변화시켜 원료로 재생하는 방법으로 제작한 제품으로, 재활용 플라스틱의 품질이 일정하게 유지되고 오염된 플라스틱도 사용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공정이 까다롭고 기술력과 설비를 갖추기 위한 자본력이 뒷받침돼야 하므로 중소기업보다는 대기업 등을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되는 경향이 있다.
정부는 지금까지 물리적 재활용 페트를 식품 용기로 사용하는 것을 막아왔다. 물리적으로 재활용할 수 있는 소재가 제한적인 데다 플라스틱에 묻은 오염물질을 제거하는 작업도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수를 담은 투명 페트병의 수거가 원활하게 이뤄지면서 상황이 바뀌었다.환경부 관계자는 “품질 면에선 화학적 재활용 페트가 한 수 위지만, 설비를 갖추기 위한 초기 투자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며 “재활용 식품 용기의 확산을 위해 물리적 재활용을 허용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물리적 재활용이 확대되면 재활용 페트에 대한 수요가 늘어 장기적으로는 규모의 경제를 형성해 현재 일반 페트병 제작보다 비싼 재활용 페트병 생산 단가가 다소 안정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해외에서는 재생 페트 의무화
해외 기업은 이미 재생 플라스틱을 식품 용기나 음료병 등으로 활용하고 있다. 코카콜라는 2030년까지 모든 포장재에 재생 원료를 50% 이상 사용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코카콜라의 라이벌인 펩시코도 2030년까지 플라스틱 포장재에 재생 원료를 절반까지 사용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글로벌 식품 제조기업 네슬레는 2023년까지 재생 페트 사용량을 기존보다 50% 이상 늘리기로 했다.유럽이나 미국처럼 재활용 플라스틱 사용을 제도적으로 의무화한 곳도 있다. 유럽연합(EU)은 2025년까지 음료병 생산 시 재생 원료를 25% 이상 사용하는 것을 골자로 한 법안을 마련했다. 2030년에는 이 비중을 30%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도 올해부터 음료병 생산 때 재생 원료 사용을 의무화하고, 2030년에는 재생 원료를 50% 이상 쓰도록 규제를 강화할 방침이다.
유엔이 플라스틱 재활용과 관련한 국제협약 마련에 착수하면서 재생 플라스틱 사용을 의무화하는 나라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유엔 회원국은 지난 3월 2일 폐막한 환경총회에서 2024년까지 플라스틱 재활용 등 순환 경제와 관련한 국제 협약을 마련한다는 데 합의했다. 정부 간 협상위원회를 구성해 올해 구체적 조항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계획이다.[돋보기] 커피 찌꺼기, 순환자원으로 인정커피 전문점에서 생활 폐기물로 버려지는 커피 찌꺼기가 앞으로 간소한 절차를 거쳐 순환자원으로 인정받게 된다. 재활용 허가 없이도 커피 찌꺼기를 자유롭게 활용할 길이 열린 셈이다.
지난 3월 1일 환경부 발표에 따르면, 정부는 커피 찌꺼기를 순환자원으로 인정하는 개선 방안을 마련해 2월 15일부터 적용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커피 찌꺼기는 그동안 생활 폐기물로 분류돼 종량제 봉투에 담아 배출하면 소각·매립 처리됐다. 퇴비, 목제품, 바이오연료 등으로 재활용할 수 있음에도 현행 폐기물관리법상 규제가 적용돼 별도로 허가받거나 신고한 업체만 수거·처리할 수 있는 등 절차가 복잡했다. 국내 커피 찌꺼기 발생량은 커피 소비가 늘면서 2012년 9만3397톤에서 2019년 14만9038톤으로 1.6배가량 늘었다.
이에 환경 당국은 순환자원 신청 대상을 사업장 폐기물뿐 아니라 생활 폐기물로 확대해 커피 찌꺼기를 순환자원으로 인정하도록 했다. 커피 찌꺼기가 바이오연료로 사용되는 경우에도 순환자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했다.그뿐 아니라 정부는 재활용환경성평가를 통해 환경부 장관의 승인을 받은 유형으로 재활용하는 경우는 물론, 커피 찌꺼기가 배출자로부터 유통업자를 거쳐 재활용업자 등에게 간접적으로 공급되더라도 ‘자원순환기본법’에 따른 순환자원 인정 기준을 충족한 것으로 간주하기로 했다.
환경부는 관련 내용을 ‘순환자원 인정 절차 및 방법에 관한 고시’ 일부 개정안에 담아 지난 3월 15일부터 행정예고를 진행 중이다. 행정예고를 거쳐 관련 규정이 마련되기 전에도 환경부의 적극행정제도를 활용해 개선 방안을 곧바로 적용, 제도를 시행할 계획이다.
김소현 한국경제 기자 alp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