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맘대로 이야기 못 하던 4·3…다신 이런 일 없길"

올해 4·3 평화인권교육 명예교사 수업 62개 학교서 진행

"지금은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예전에는 이런 얘기를 마음대로 하지도 못했습니다. "
제주4·3 74주년을 닷새 앞둔 29일 제주시 남광초등학교 5학년 교실에서는 4·3 평화·인권교육 명예교사인 양신하(84) 씨가 '진상을 알자, 상대방을 이해하자'는 주제의 수업을 통해 4·3 당시 자신의 가족이 겪은 참상을 학생들에게 설명했다.

양씨는 "살아남은 제가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후손들에게 알리기 위해 역사를 추적하고, 기록하고, 알리고 있다"며 "조사해보니 사촌 형제 17명 중 11명이 4·3과 한국전쟁 시기에 희생되거나 행방불명된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고향인 서귀포시 대정읍에서 1950년 8월에 있었던 섯알오름 집단학살의 참상에 관해서도 소개했다.

그는 "시신이 한데 묻혀 유골이 섞여버리자 '백여 할아버지가 한날한시, 한 곳에서 죽어 뼈가 엉키어 하나가 됐으니 자손들은 모두 한 자손'이라는 뜻으로 백조일손(百祖一孫) 묘역을 만들었다"며 학생들에게 설명해줬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2년 후보 시절 백조일손 묘역을 참배한 뒤 '대통령이 되면 억울함을 해소해주겠다'고 했는데, 이후 약속대로 4·3 특별법 제정과 진상조사가 이뤄졌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수업 말미에는 2020년에 해병대 장병들이 섯알오름 학살터를 찾고 위령제단을 참배한 일 등을 소개하며 이제는 화해와 상생의 길로 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2017년부터 명예교사로 활동해왔다는 양씨는 "4·3을 체험한 세대로서 오랜 세월 말 못 하던 역사를 왜곡되지 않게 잘 알려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수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남광초에서는 양씨를 비롯해 부혜영·문덕숙·김정순 씨 등 4·3 명예교사로 위촉된 유족 4명이 5학년 8개 반을 찾아가 평화인권교육을 진행했다. 학생들은 "오늘 수업으로 4·3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가족이 돌아가셔서 슬프실 텐데도 이렇게 저희에게 이야기를 전해주셔서 감동했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올해 명예교사 수업은 지난 24일 제주북초등학교를 시작으로 수업을 희망하는 62개 학교에서 총 89회, 261시간 운영된다.

명예교사들은 학교급별 학생 눈높이를 고려해 4·3 당시 마을이나 가족의 경험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구성해 수업한다.

학교 현장에서 일어나는 작은 일이라도 서로 협력하는 것이 4·3의 아픔을 넘어서는 일이고 평화와 인권으로 가는 길임을 전달한다. 김용관 교육청 민주시민교육과장은 "명예교사들은 제주의 아픈 역사만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평화·인권은 우리 주변에 있고, 서로 돕고 협력해나가는 화해와 상생이 중요하다는 점을 교육할 것"이라고 전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