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이석준·김소영…학현학파 지고 정운찬사단 뜨나 [김익환의 BOK워치]

사진=연합뉴스

"변형윤 교수님과 조순 교수님은 평생 경쟁했습니다. 두 분 모두 구순(九旬)이 넘었지만 지금도 서로를 비교하는 이야기가 나오면 예민해집니다."

서울대 경제학부의 한 교수는 변형윤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와 조순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의 경쟁의식이 여전히 무뎌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변 명예교수와 조 명예교수는 서강학파와 함께 한국 경제학계 3대 학파로 분류되는 학현학파(변형윤 교수의 아호인 학현(學峴)에서 비롯함)와 조순학파를 이끌며 경제학계의 풍성한 담론을 끌어냈다. 이들은 '상아탑'에만 머물지 않고 경제정책에도 깊숙이 관여했다. 학현학파는 문재인 정부 소득주도성장을 설계했다. 하지만 이 정부 들어서 학현학파의 자리를 조순 교수의 정운찬 전 국무총리의 제자 그룹이 채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후보자의 경제정책을 좌우하는 인물들 가운데 정운찬 전 국무총리 인맥이 눈길을 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와 윤석열 당선인의 특별고문인 이석준 전 국무조정실장 등이 제자 그룹에 속한다. 이 후보자의 경우 정운찬 전 국무총리와 서울대 경제학과 제자들이 정운찬 전 국무총리가 1989년 결성한 한국금융연구센터(금융연구회의 후신)의 창립멤버로 참여했고, 정운찬 전 총리와 2008년 '외환위기 10년, 한국 사회 얼마나 달라졌나'라는 책을 같이 쓰기도 했다. 이 후보자는 정 총리의 영향을 받아 거시경제학과 경제위기론 등 연구 분야도 비슷했다. 윤석열 당선인 경제 정책 설계에 관여하는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와 국민의힘 경제통으로 꼽히는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도 한국금융연구센터에서 활동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 정책에 깊숙이 관여한 학현학파의 자리를 정운찬사단이 메울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분배를 중시하는 학현학파는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인 '소득주도성장'을 주도했다. 현 정부 인사 가운데 홍장표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전 청와대 경제수석),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전 카카오뱅크 공동대표), 박복영 전 청와대 경제보좌관, 강신욱 전 통계청장, 장지상 산업연구원장, 주상영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등이 학현학파로 분류된다. 학현학파는 소득불평등 축소와 분배에 초점을 두고 연구했다. 케인스주의자로 통하는 정운찬 전 총리는 구조개혁과 정부 주도 성장의 역할을 지지한다.

하지만 학현학파와 정운찬사단의 경계가 옅다는 평가도 많다. 학현학파와 정운찬사단에 모두 속하는 인물도 많고, 성향도 비슷하다는 것이다. 정운찬 전 총리는 학현학파가 주축인 서울사회경제연구소가 매년 여는 봄·가을 심포지엄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등 학현학파 인사들과 넓게 교분을 쌓았다. 이달에 한국금융연구센터 연구소장에 취임한 원승연 명지대 경영학과 교수(전 금융감독원 부원장)는 학현학파로 분류된다. 학현학파와 밀접하고 현 정부 실세로 통했던 장하성·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도 정운찬 전 총리의 제자들이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