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 호건의 기적, 마스터스서 우즈도 만들어낼까 [조수영의 골프 단짠단짠]

'황제' 타이거 우즈, 오거스타 GC서 연습라운드
자동차사고 14개월만에 첫 정규대회 출전할지 '주목'

'전설' 벤 호건도 교통사고로 전신부상 뒤 극적으로 부활
사고 뒤 커리어 그랜드슬램 달성하며 '불굴의 아이콘' 떠올라
호건의 기적 우즈가 이어갈 지 기대
지난해 12월 PNC챔피언십에 나선 타이거 우즈. /사진=로이터
1942년 2월,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피닉스 오픈 연장전에서 패배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차를 몰던 벤 호건(1912~1997)은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됩니다. 반대편에서 앞차를 추월하려 차선을 넘어온 버스와 정면으로 충돌한 것입니다.

부인을 보호하려 핸들을 급히 꺾은 탓에 골반과 목뼈, 무릎, 갈비뼈 등 온몸이 부러지는 중상을 입은 그에게 의사는 "다시 걷기 어려울 것"이라는 진단을 내놨습니다.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던 골퍼로서의 인생이 저무는 듯한 순간이었습니다.
교통사고로 인한 전신 부상을 딛고 일어나 커리어그랜드슬램을 달성한 '골프전설' 벤 호건. /사진=한경DB
하지만 호건은 불굴의 투지로 다시 일어섰습니다. 사고 1년 만인 1950년 다리를 절뚝이며 출전한 LA오픈을 시작으로 메이저대회인 US오픈에서 우승하며 완벽한 부활을 알렸습니다. 이듬해에는 마스터스와 US오픈에서 잇따라 우승했고 1953년에는 마스터스, US오픈, 디오픈 등 3대 메이저대회를 모두 휩쓸었습니다. 디오픈에서 우승하고 미국으로 돌아온 호건을 뉴욕 시민들은 색종이 카퍼레이드로 환영했죠.

호건이 만들어낸 기적이 2022년 다시 한번 일어날지 골프팬들의 시선이 쏠리고 있습니다. 다음달 7일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내셔널 GC에서 열리는 올해 첫 메이저 대회 마스터스 토터너먼트가 무대입니다.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47·미국)가 전용기로 오거스타에 도착해 연습라운드를 했다는 보도가 현지 언론을 통해 속속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지요.

우즈는 지난해 2월 자동차 전복사고로 다리를 크게 다쳤습니다. 다리를 절단해야 한다는 진단이 나왔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죠. 하지만 그는 플로리다 자택에서 치열하게 재활에 집중했고 사고 10개월만인 지난 연말 연습장면을 공개하며 부활을 예고했습니다. 그가 SNS를 통해 공개한 3초짜리 스윙 영상에 세계가 들썩였죠. 이어 이벤트 대회 PNC챔피언십으로 공개행보를 시작했습니다. 아들 찰리와 출전한 이 대회에서 비록 카트를 타고 이동하긴 했지만 첫날 10언더파, 최종일 무려 15언더파를 합작해내며 "역시 황제"라는 감탄을 자아냈습니다.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자신과 싸운 재활의 결과물이었을 겁니다. 올해 마스터스에 우즈가 출전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나오는 것은 그에게 마스터스가 각별한 의미를 갖는 대회라는 점도 있습니다. 우즈는 1997년, 2001년, 2002년, 2005년, 2019년 등 총 다섯번 마스터스 그린재킷을 입었습니다. 2009년 11월 성 추문 폭로 이후 잠시 투어를 떠났던 그가 이듬해 복귀무대로 선택한 것도 마스터스였고 교통사고 전 마지막 출전한 공식대회도 2020년 11월 마스터스였지요.

우즈는 마스터스 평생 출전권을 갖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오거스타측에 불참의사를 밝히지 않은 상태죠. 대회 사전 행사로 열리는 챔피언스 디너에는 참석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우즈의 이번 오거스타 행에는 캐디 등 그의 팀 전체가 함께했다는 점도 대회 참가 기대감을 키우는 대목입니다.
타이거 우즈가 지난 9일 세계 골프 명예의 전당에 입회하며 감격스러워하고 있다.
이미 우즈는 극적인 재기를 이뤄낸 바 있습니다. 2019년 허리 디스크를 모두 긁어내고 철심으로 허리뼈를 고정시키는 수술을 받은 뒤 극적으로 우승컵을 들어올린 대회가 바로 마스터스였습니다. 그해 우즈는 미국골프기자협회(GWAA)가 부상을 이겨내고 재기한 선수에게 주는 '벤 호건 상'을 받기도 했죠. 그는 지난해 첫 공식 기자회견에서 "예전처럼 정규시즌 내내 투어를 뛰는 것은 불가능하다. 호건이 그랬듯 1년에 몇차례 정도 대회를 골라 출전하게 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지난 9일 세계 골프 명예의 전당에 입회하던 우즈의 걸음걸이는 아직 다소 불편해보였습니다. 그 역시 지난달 타이거 우즈 재단이 개최한 PGA투어 제네시스 인비테이셔널 기자 회견에서 "언제 다시 출전할 수 있을지 알게 되면 좋겠다. 칩샷이나 퍼트, 짧은 아이언은 괜찮지만 아직 그 이상 거리에는 어려움이 따른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마스터스 토너먼트가 열리는 오거스타 내셔널 GC는 라운드 한번에 약 10km를 걸어야합니다. 이벤트대회였던 PNC챔피언십과 달리 정규대회에서는 카트를 탈 수 없죠. 경사가 상당한 산악지형이라는 점도 아직 다리가 성치않은 우즈에게 적잖은 부담이 될 것입니다. 그래도 황제가 다시 우뚝 서 희망을 보여주길, 골프팬의 한 사람으로서 기대해봅니다. 호건의 골퍼로서의 '화양연화'는 교통사고 복귀 뒤 만들어졌다는 점을 우즈가 더 잘 알고있을 겁니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