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머 요청으로 탄생한 베스트셀러

중세 기사문학 '롤랑의 노래'
출간 첫 주에 알라딘 10위 올라
중세 프랑스 기사문학의 정수로 꼽히는 11세기 서사 시집인《롤랑의 노래》(휴머니스트·사진)가 국내 번역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순수문학 고전이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에 오른 것은 이례적이다. 게임 이용자들이 대거 구매한 덕분이라는 게 출판사 측 설명이다.

30일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 따르면 《롤랑의 노래》가 출간 첫 주에 종합 베스트셀러 10위에 올랐다.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13위), 무라카미 하루키의 《오래되고 멋진 클래식 레코드》(14위)보다 높은 순위다.작자 미상의 이 작품은 4002행의 무훈시(武勳詩)로 현존하는 프랑스 문학 가운데 가장 오래됐다. 최강의 기사 롤랑이 이교도와 배신자의 계략에 빠져 장렬히 순교하자 황제 샤를마뉴가 이교도 군대를 격파하고 배신자를 처형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촘촘한 서사와 기운찬 문체를 통해 롤랑의 담대한 순교와 샤를마뉴의 처절한 복수를 생생하게 되살린다. 이 작품이 국내에서 중세 프랑스 원전 번역으로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준한 고려대 불어불문학과 교수가 번역했다.

대중서와 거리가 먼 이 작품이 국내 번역 출간되고 베스트셀러로 직행한 데는 게임 이용자들의 힘이 크게 작용했다.

시작은 2020년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휴머니스트 출판사는 2005년 처음 출간했던 《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 개정판을 냈다. 15년 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이 책이 돌연 알라딘 종합 베스트셀러 3위에 올랐다. 돌풍의 배경은 ‘페이트 그랜드 오더’라는 게임이었다. 게임 속 길가메쉬 캐릭터가 실제 신화 속에서 어떤 인물이었는지 궁금했던 이용자들이 책을 줄지어 구매했던 것. 책은 1만 부 넘게 팔렸다. 더 나아가 게임 이용자들은 출판사에 게임의 배경이 되는 시대와 관련된 고전들을 출간해 달라고 요청해 왔고, 그중 하나가《롤랑의 노래》였다. 각종 게임에 성기사(聖騎士)를 뜻하는 ‘팔라딘’이 자주 등장하는데, 《롤랑의 노래》등 초기 무훈시에 처음 발견된 단어다.

하빛 휴머니스트 편집자는 “게임 이용자들이 출간을 요구했던 책을 몇 권 더 준비 중”이라며 “다음달에는 수메르 신화 속 여신인 ‘인안나(이슈타르)’를 다룬 《최초의 여신 인안나》를 펴낼 예정”말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